[반구대] 분홍 원피스

2020-08-10     김병길 주필

 

 

“음식은 자신이 즐겁도록 먹어라, 그러나 옷은 남의 눈에 즐겁도록 입어라.”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이다. “못 입어 잘난 놈 없고, 잘 입어 못난 놈 없다.”는 우리 속담도 있다. 버나드 쇼는 그 시절 예술가들이 입는 비로드 잠바를 즐겨 입었다. 어느날 파티 석상에서 종업원이 옆에 오더니 귓속말로 말했다. “그런 복장으로는 이 곳에 계실 수 없는데요.” “비로드 잠바 때문인가?” “네.” “그렇다면 기꺼이 벗지.” 쇼는 잠바를 벗고 내의 바람이 됐다. 그 후 부터 쇼의 옷에 대해서는 누구도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부산 국제영화제 개·폐막식에 검은 정장이 아니면 입장하지 못한다 하여 시비가 벌어진 적이 있다. 격식과 권위를 과시하는 행사나 클럽·레스토랑·골프장에서도 정장을 요구한다. 차별화를 위해 복장을 달리하기도 했다. 정승 판서 옷이 다르고, 당상·당하관의 옷이 다르며, 아전과 백성들의 옷을 다르게 하여 차별화했다.

영국에서 노동자를 블루칼라, 사무직을 화이트칼라라 한 것이며, 대중 술집인 퍼브에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가 드나드는 문과 좌석을 각각 달리하고 같은 술에 값을 달리한 것도 선민(選民)의식을 자족시키는 차별화 문화다. 미국의 강의실에도 교수에 따라 청바지 차림이나 머리를 염색한 학생의 입실을 거부하는 예가 있다. 집단의 의향이나 논리 질서보다 개개인의 의사나 취향에 비중을 실어온 민주주의는 집단의 논리가 저항을 받아왔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의 국회 본회의장 ‘분홍 원피스’가 충돌을 일으켰다. 17년 전 유시민 의원의 ‘백바지’ 논란을 상기시키면서 당시 ‘백바지’가 ‘어울리지 않음’에 대한 반응이었다면 ‘분홍 원피스’ 는 ‘너무 잘 어울림’에 대한 반응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국회 본회의장 내 별도 복장 규정은 없지만 그동안 관례상 ‘재킷과 넥타이는 필수’라는 보수적인 관행이 이어져 왔다. 2003년 여름에서야 강창희 당시 국회의장 권고로 본회의 장 내 ‘노타이’가 처음 허락 됐을 정도다. 류호정 ‘분홍 원피스’ 충돌을 계기로 국회의 오랜 남성 중심적 문화가 얼마나 바뀔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