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대] ‘가짜 농부’

2021-03-18     김병길 주필

 

연암 박지원의『열하일기』에 ‘가짜 서화’ 이야기가 나온다. 촌뜨기 벼락부자와 벼락감투를 쓴 벼슬아치들이 가짜를 사놓고 희희낙낙 했다. 예로부터 가짜서화는 흔했다. 추사(秋史)가 살아있을때에도 ‘가짜 추사’는 나돌았다. 1970년대 이후 한때 위조범들이 곳곳에서 수억대의 ‘가짜 추사’를 팔아넘겨 줄줄이 검찰에 구속된 사건도 있었다. 그때 압수된 재고(?)중엔 ‘추사’ 뿐만 아니라 단원, 청전, 이당 등의 몇천만원 짜리 ‘가짜’가 수두룩했다. 

위조범들의 ‘밥’은 주로 ‘복부인’들이었다. 당시 증권에 몰리던 복부인들이 부동산 투기에 몰려들어 투기억제책에 걸리자 고미술품이 솔깃했다. 그래서 고미술품값이 몇 곱씩 껑충 뛰었다. 심지어 아파트 한 채 값이 넘는 서화·골동품이 날개 돋친 듯 팔리기 시작했다. 그때 ‘복부인들을 속여먹기는 누워서 떡먹기’라는 말이 위조법들사이에 나돌았다.

서화의 경우 가짜들이지만 모두 어엿한 낙관이 찍혀 있었으니 일종의 보증서로 여겼다. 또 피해자들이 수 없이 많았으나 말썽이 없었던 것은 신고를 안했기 때문이었다. 소문이 새어나가지 않기를 바라는 약점이 있었다. 

LH직원들의 부동산 투기에도 가짜가 판을 쳤다. 이들은 일반은행 부동산 대출을 받지 않고 땅매입 희망 지역의 농협조합원으로 들어가 자금을 조달, 농부로 위장, 꿩 먹고 알 먹었다. 원주민들은 “평생 농사 지은 우리만 바보 됐다”며 한숨을 쉬었다. 

토지 보상을 노린 ‘가짜 농부’ 행세는 보상금 외에 부수적 혜택도 쏠쏠했다. 조합원이 되면 출자배당금과 이용 배당금을 받을 수 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58억원을 대출 받았다면 이에 따른 배당금이 1,000만~5,000만원 수준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연히 실제 농사여부를 검증하는 절차가 허술하다는 지적이 따른다. 이에 농촌의 새로운 인력 유입과 신산업 육성을 위해 농지 보유 규정을 완화해 온 것이 사실이다. 지역 사정에 밝은 농협이 가짜 농부들의 대출을 승인한 배경에는 지방 농협의 대출 경쟁까지 한 몫했다니 스스로 가짜를 키워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