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이야기] 약한 마음 강한 마음

2021-10-25     오세재 글로벌마인드교육원장
오세재 글로벌마인드교육원장

상처 자라 마음의 병 돼…우울증으로 발전
칭기즈칸 등 실패 없이 성공하는 사람 없어
자식이 험한 세상 역경 이길 마음 길러줘야

 

사람들은 살면서 상처를 받기 마련이다. 그 상처는 대부분 대인관계에서 생긴다. 어려운 환경을 이겨낸 기성세대도 사람과의 관계는 쉽지 않다. 사람들은 항상 자신이 원하는 말을 듣거나 대접을 받을 수는 없다. 어떤 때는 억울한 말, 가혹한 말, 무시하는 말, 왕따, 온갖 행태의 행동을 통해 마음의 상처가 생긴다. 마음의 상처는 점점 자라서 마음의 병이 되고, 그것이 타인을 향한 가혹행위, 우울증, 자살 등으로 발전한다. 미국 질병관리 예방센터 2017년 보고서에 의하면 매년 4만 명의 미국인이 자살로 생명을 잃고 있다고 한다. 한국 역시 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단의 자료에 의하면 정신분열증, 알코올 중독, 우울증 환자들이 해마다 계속 증가하고 있다. 
로봇다리 김세진 군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지난 2009년 방송된 ‘로봇다리 세진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된 김세진 군은 선천성 무형성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오른쪽 다리는 무릎 아래가, 왼쪽 다리는 발목 아래가 없으며, 오른손은 엄지와 약지 손가락만 있다. 보육원에 맡겨진 세진 군은 자원봉사자였던 양정숙 씨의 아들로 입양이 된 후에 지금은 대한민국을 이끌 4명의 청소년 영웅에 뽑히기도 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009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19세 미만 세계장애인 수영선수권 대회 3관왕 출신인 김세진 군이 2012년 성균관대학교 스포츠과학과에 만 15세로 합격했고 지금은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IOC 위원의 꿈을 향해 공부 중에 있다. 
김세진 군의 삶은 이렇다. 처음엔 원망도 해봤다고 한다. ‘왜 장애인으로 태어났을까’하며 수없이 되뇌었고,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보육원에 버려진 것도 자신의 몸뚱이 때문인 듯싶었다. 다리가 자라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수영을 하게 된 계기는 재활을 위한 훈련이었다. 재활을 위해 엄마와 함께 타이어를 메고 걸어 다니고, 거실에 매트를 깔아 놓고 매일 넘어지는 훈련을 했다. 그 혹독한 훈련을 통해 수없이 넘어져야 했던 그에게 엄마는 “세진아, 걷는 건 중요하지 않아.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게 중요한 거야.”라고 했다. 결정적으로 수영에 도전하게 된 것은 닉 부이치치와의 만남을 통해서였다. 그렇게 수영을 접한 세진 군은 150개의 메달을 수영에서 획득했고,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 봉송까지 하게 됐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환경을 탓하고, 사람들을 탓한다. 결국은 무기력한 자신을 탓하는 것이다. 양정숙 씨의 말처럼 걷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것이 정말 중요하지 않을까? 암에 걸려도 나을 수 있다면 아무 문제가 안 되고, 사업에 실패를 해도 다시 재기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패의 왕이었던 발명가 에디슨, 끊임없이 실패를 딛고 일어선 링컨 대통령, 아무것도 없이 최고의 제국을 이룬 칭기즈칸, 생각해 보면 실패 없이 성공한 사람은 없다. 
우리나라는 가난한 시절을 보내었다. 1970년대 동네 동네마다 쓰레기차가 다니면서 ‘잘 살아 보세’ 노래를 불렀다. 너무나 배가 고파서 잘 사는 것이 소원이었다. 이제 밥을 먹고 살만해지면서 우리 자식만큼은 배고프고, 기죽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못 입는 비싼 옷을 사주고, 신발을 사주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었다. 그런데 놓친 것이 있었다. 부모가 자식의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 없다. 대신 역경을 당해 줄 수도 없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거센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오는 바다와 같은 이 험한 세상에서 역경을 이길 마음을 길러 주어야 한다. 다음은 칭기즈칸의 어록이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적(敵)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깡그리 쓸어 버렸다.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칭기즈칸이 됐다.” 

오세재 글로벌마인드교육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