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론] ‘육식과 채식’ 이분법에서 벗어나자!
채식주의 문화 ‘육식 섭취=환경파괴’로 죄책감 느껴
환경 문제 유발은 ‘소 관리 방식’…자연 순환 방식을
‘무엇을’ 보다 ‘어떻게’로 채식·육식 공존할 수 있길
채식주의가 트렌드이며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고기를 먹는 행위는 어느덧 식탐, 살생, 힘, 권력의 상징이 돼 버렸다. 고기를 많이 먹으면 건강이 안 좋아지는 것은 물론, 환경을 파괴하고 생태계의 질서를 어지럽히는데 일조한다는 죄책감마저 들게 한다. 반면 채식주의는 건강, 교양, 순수함을 의미하고 나아가 윤리적인 선택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과연 채식만 하는 사람이 육식을 하는 사람보다 더 오래 살까? 고기를 먹으면 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질까? 고기를 먹지 않고도 식물에서 필요한 영양소를 모두 얻을 수 있을까?
독자 여러분은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 가장 많이 먹는 음식이 무엇인가? 십중팔구 고기 종류다. 특히 소고기다. 달궈진 불판 위에 마블링이 잘된 소고기 한 점을 올려놓는다. 고기가 익어가는 냄새는 코를 자극한다. 지글지글 소리는 덤이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하지만, 소고기가 식탁에 오르려면 소를 도축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소는 고통을 겪는다. 소가 내뿜는 메탄은 환경파괴의 주범으로 지목된다. 이를 알게 된 이들은 채식주의자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주변에서 채식만 선택하거나 육식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과연 고기는 얼마나 건강과 환경에 악영향을 미칠까? 육식은 무조건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식습관일까? 이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우선 채식을 통해 필수 영양소를 섭취하려면 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동물성 식품은 사람에게 필요한 아미노산을 함유하고 있으나 식물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필수 아미노산이 모두 들어 있는 콩은 소화장애를 일으킬 수 있고, 날것으로 먹으면 탈이 난다. 많은 채식주의자들이 비타민 보충제 섭취로 영양 균형을 유지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채식 식단을 제대로 설계할 수 없다면, 동물성 식품을 함께 섭취하는 게 건강에 더 좋을 듯하다.
소는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으로 지목돼 왔다. 하지만 이는 목장과 같은 한정된 사육장에서 키울 때 얘기다. 목초지를 옮겨 다니며 소를 키우면 토양이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줄 수 있으므로 순 온실가스 배출량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소의 배설물이 토양의 수분 함량과 미생물의 다양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뿌리를 깊이 내린 식물이 더 많은 탄소를 땅 밑으로 보내기 때문이다. 풀을 먹은 소가 떠나면 그 자리의 풀은 다시 자라며 뿌리 역시 깊어진다.
결국, 환경 문제를 유발하는 건 소 자체가 아니라 소를 관리하는 방식이다. 인간과 지구의 건강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는 건 산업적으로 대량생산되는 식품이다. 대규모 생산을 위해 농약을 사용해 자연의 순환을 해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젠 ‘육식과 채식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자연과 공존하는 식량 생산체계를 고민해야 한다. ‘소고기를 먹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지속가능한 식량 생산구조를 마련하려면 소는 필수적이다. 정확하게는 방목한 소다. 즉, 자연의 순환에 맞춘 방식을 택해야 한다.
육식보다 채식이 더 친환경적이고 윤리적인 선택이란 주장은 일견 맞아 보인다. 하지만 꼭 그럴까? 영양학적 관점에서 육식이 암, 당뇨병, 심장질환 등 만성질환을 유발한다는 주장은 인과관계와 상관관계가 혼동돼 부풀려지거나 왜곡된 건 아닌지. 한 사례를 보자면, 옥수수 재배에 들이붓다시피 하는 제초제와 살충제는 고스란히 지하수로 들어가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또한, 개발도상국 입장에선 선진국의 부유한 엘리트들이 추구하는 채식 위주의 식단을 강요하는 것은 그들에겐 상당히 비현실적이고 이기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은 순환하기 마련이다. 인간은 먹이사슬로 이뤄진 피라미드의 가장 높은 층이 아니라, 모든 것들이 포함된 네트워크 속에 산다는 점을 잊지 말자.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존재는 아무도 없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먹을 수 있고 없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생산하고 먹어야 하는가?’이다. ‘무엇을 먹을까?’는 다를 수 있지만, ‘어떻게 먹을까?’라는 논점에서 접근하면 채식과 육식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전문연구위원·RUPI사업단장·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