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울산 강타한 태풍 힌남노, 곳곳에 피해 속출

2022-09-06     신섬미 기자
강한 바람과 많은 비를 몰고 온 11호 태풍 '힌남노'가 울산을 강타한 후 곳곳에서 크고 작은 피해가 속출했다. 해안가는 거센 파도로 아수라장이 됐고, 일부 지역은 침수로 주민들이 긴급 대피했다. 그나마 다행으로 6년 전 태풍 차바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는 태화시장이 철저한 대비 덕분에 큰 피해를 피할 수 있었다.



울산 중구 태화시장 한 상인이 젖은 가판대를 닦으며 태풍 잔해를 정리하고 있다.

울산 중구 태화시장 상인이 태풍에 터진 모래주머니의 젖은 흙을 쓸어담고 있다.

#예상보다 적은 강수량에 태화시장 '안도'

태풍이 지나간 태화시장. 한쪽에는 제 역할을 다한 모래주머니가 한가득 쌓여있었고, 상인들은 큰 피해 없이 지나간 태풍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비에 젖은 물건을 닦고 잔해를 정리하는 등 장사 준비에 분주했다.

기계에 감쌌던 방수비닐을 걷고 장비를 점검하던 방앗간 주인 A(49)씨는 "추석 대목 장사를 제대로 못 할 것 같아 걱정되지만 태풍 차바와 오마이스 때 비하면 천만다행"이라며 "사전대비를 철저히 해 잘 넘어간 것 같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가판대를 복구하던 건어물 가게 주인 B(69)씨 역시 "가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번에 대용량 포방사 시스템까지 배치해 훨씬 든든했다"며 "올해 침수는 안 돼 추석 장사를 조금이라도 할 수 있겠다"고 기대했다.

중구는 앞서 지난 5일 태화시장이 침수될 경우를 대비해 빗물을 1분당 4,500ℓ가량 퍼내 인근 태화강으로 내보내는 대용량 포방사시스템 1대와 양수기 7대, 공무원 17명 등을 배치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강수량이 적어 침수가 발생하지 않아 시스템은 가동하지 않았다. 또 물이 넘어 오지 않도록 각 가게마다 모래주머니도 배부했는데, 이에 대한 아쉬운 목소리도 있었다.

분식집 주인 C(29)씨는 "20kg은 넘어 보이는 모래주머니를 받아 쌓았는데 포대가 너무 얇아 다 터졌다. 장사 준비하기에도 바쁜데 비에 젖은 모래를 치우는 게 일"이라며 "흙을 다시 포대에 퍼 담고 수거해가는 곳까지 옮겨야 하는데, 혼자 끌기 힘든 수레를 몇 번을 옮기고 있는 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날 상인들은 무엇보다 근본적인 침수 대비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생선가게를 7년째 운영 중인 D(60)씨는 "이번엔 이렇게 넘겼지만, 비 올 때마다 이래서는 제 명에 못 살겠다"며 "하루빨리 배수펌프장, 배수터널 등이 완공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영길 중구청장은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신속하게 각종 복구 작업을 마무리 하겠다"며 "앞으로도 태화배수펌프장 설치 등 각종 재난 예방 사업에 박차를 가하며 재난대비 체계를 탄탄하게 구축하겠다"고 전했다.







울산 동구 '슬도'를 영문으로 옮긴 'SEULDO' 조형물이 강한 파도와 비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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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도공원과 성끝마을 인근의 바닷길이 파도를 맞아 부서져 내렸다.

태풍 '힌남노'가 일으킨 강한 파도에 울산 동구 방어동 남진미니비치에 설치된 목조데크가 내려앉아 버렸다.

#동구 해안가 피해 집중...수백억 규모 사업부지 '엉망'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특성상 동구는 해안가에 태풍 피해가 집중됐다. 특히 높은 파도와 강풍으로 인해 각종 쓰레기와 토사, 돌덩이 등이 섞인 부유물이 떠밀려와 도로변 을 점령했으며, 각종 시설물 파손도 이어져 동구청이 진행 중인 해안 중심 사업들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6일 오전 9시께 찾은 울산 동구 방어동 1177번지 일원의 남진미니비치. 이곳은 남·상진항 옆에 자연적으로 조성된 길이 100m가량의 모래해변으로, 동구가 만든 목조데크와 콘크리트 구조물이 설치돼 있다.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만든 이 시설물들은 안타깝게도 태풍 '힌남노'의 영향을 그대로 받아 곳곳이 부서지거나 금이 간 상태였다.

해변과 가까이 붙어있는 목조데크는 바닥이 내려앉았고 안전손잡이는 부서져 하늘과 땅을 향해 팔을 뻗고 있었다. 튼튼한 콘크리트 데크도 파도의 위력을 견디지 못하고 이곳저곳 금이 간 상태였다. 파도의 위력은 비단 이 해변과 데크에만 국한되지 않고, 인근 남·상진항의 시설물도 무력화시켰다.

100억원 규모 '꽃바위 바다소리길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상진항에 지어진 어구어망창고 4개와 공중화장실이 이용해보기도 전에 파손됐고, 해녀들이 창고로 쓰던 컨테이너 박스도 구멍이 뻥 뚤려 파도가 칠 때마다 바닷물이 안으로 튀고 있었다.

시설물 파손뿐만 아니라 일반 사업부지 자체에도 피해가 이어졌다.

방어동 1073번지 일원 역시 '꽃바위 바다소리길 조성사업'에 포함, 동구가 캠핑장 사업부지로 활용하기 위해 성토를 해 평탄화 작업을 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이 무색하게도 성토한 흙 절반 가량이 파도에 휩쓸려 대부분 자갈만 울퉁불퉁하게 튀어올라와 있었다.

방어동 주민 F(57)씨는 "구청에서 평탄화 작업한다고 몇날 며칠을 씨름하더니 태풍 한방에 절반이 날아갔다"며 "올라온 자갈 치우고 다시 평탄화하려면 돈 깨나 들지 않을까 싶다"고 우려했다.

73억원 규모 '주전 보밑항 해양연안 체험공원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동구가 주전 보밑항 일원 해안가에 조성 중인 산책로도 파도에 파손된 상태였다. 동구는 산책로 조성을 위해 해안가에 인공돌을 쌓아 돌담을 만들었는데, 일부 구간에서 돌담이 파도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고, 산책로에 파도가 밀려와 이곳저곳 침식한 것. 심한 곳은 깊숙이 패여 땅밑에 매설한 배수관이 드러날 정도였다.

인근에서 숙박업을 하고 있는 한 상인은 "콘크리트를 덜 섞었는지 부실공사인진 모르겠는데, 돌담 돌이 바다로 휩쓸려 가더니 가게 인근까지 파도가 몰아쳤다"며 "다행히 가게 안쪽에는 피해가 없었지만 다음에 태풍이 오면 또 저렇게 무너질까 불안하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동구 관계자는 "피해 현장점검은 완료했고, 방어동 캠핑장 사업부지는 내일부터 바로 자갈 제거 작업을 실시할 계획"이라며 "재건 작업인 만큼 더 튼튼하고 안전하게 공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울산 울주군 언양읍 무동마을이 태풍으로 침수됐다.



울산 울주군 언양읍 반천현대아파트 야외에 주차된 차량이 침수되면서 바퀴에 나뭇가지가 뒤엉켜 있다.

울산 울주군 언양읍 반천현대아파트 입구에 수십년된 나무가 태풍 영향으로 뿌리째 뽑혀 절단 된 후 옮겨지고 있다.

울산 울주군 언양읍 무동마을 박순택 이장이 불어난 태화강을 보고 있다.

# 울주군 상습침수지역 주민들 "해결방안 없나"

6일 오전 10시께 찾은 울주군 언양읍 무동마을은 입구부터 진흙과 나뭇가지, 떠밀려온 부유물 등으로 뒤덮여 엉망인 상태였다. 마을 주민이 정성스럽게 가꾼 고추밭은 다 쓰러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고, 수확을 앞둔 농작물들은 낙엽처럼 나뒹굴고 있었다. 이 마을 앞으로는 태화강이 흐르고 있는데 매년 태풍이 올 때마다 강변이 넘쳐 물에 잠기기 일쑤다. 올해도 어김없이 침수돼 농작물 피해 뿐만 아니라 주민들이 긴급 대피까지 했다.

이날 만난 무동마을 박순택 이장은 "밤에 잠 한숨 못자고 지켰다. 점점 물이 차더니 새벽 4~5시가 절정이었다"며 "나이 많은 노인들은 태풍 오기 전 인근 마을에 대피했지만, 남아 있는 주민들이 있어서 밤새 3번이나 대피 방송을 했다. 두 가구 정도 마당에 물이 차 걱정했던 것보다는 피해가 덜했지만 아찔했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차수벽을 치는 바람에 피해가 크다고 하소연했다. 울산시는 3년 전 태풍 차바로 무동마을이 침수되자 강물 범람을 막기 위해 차수벽을 설치했는데, 이 때문에 오히려 마을에 흘러 들어온 빗물이 고여 빠져나가지 못해 피해를 키웠다는 것. 박 이장은 "이곳에서 평생 살았지만, 예전에는 침수지역이 아니였다. 차수벽이 생기고 나서 침수가 된다. 차수벽을 없애달라"고 호소했다.

태풍 '차바' 때 막대한 재산 피해와 인명 피해까지 입은 언양읍 반천현대아파트 주민들도 밤새 뜬 눈으로 지새야 했다.

이날 아파트 입구에는 강풍에 수십년된 나무가 뿌리째 뽑혀 있고, 야외에 주차된 차량 바퀴에는 나뭇가지들이 엉켜 침수됐던 지난밤 상황을 짐작케 했다.

올해 이사 와 침수를 처음 겪는다는 E(61)씨는 "태풍이 워낙 강하다고 해서 차수벽이 설치된 지하주차장에 주차를 해뒀는데, 물이 많이 불었는지 새벽에 차를 빼라고 연락이 왔더라"며 "무엇보다 아파트를 둘러싸고 사방으로 물이 잠기면서 고립됐는데 빠져 나갈 곳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아파트에 20년째 거주 중인 남갑록(59)씨는 "태풍 온다고 몇일 전에 펌프기 2개를 가져다 놨는데 작동도 하지 않고 작동하는 직원도 없더라. 전시용이냐"며 "여기도 매년 침수되는 지역인데 태화시장처럼 펌프차를 동원해 미리 피해를 막을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섬미·윤병집·이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