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차전용구역 ‘불법주정차 단속 조항’ 있으나마나
4년전 소방기본법 개정안 시행불구
법 이전 건축허가 아파트 단속못해
울산, 과태료 부과되는 단지 1곳뿐
관리사무소 계도조치 외 방법 없어
울산 남구에 거주하는 강모씨는 단지 내 소방자동차전용구역에 주차한 차량을 보고 안전신문고에 신고했다가 관계당국으로부터 황당한 답변을 들었다.
소방기본법에 따르면 소방차전용구역에 차량을 세우는 것이 불법이지만 개정안 시행 이전에 건축허가를 받은 아파트는 단속할 근거가 없다는 것. 따라서 불법주정차를 하지 못하도록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자체적으로 계도하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조치를 할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화재 발생 시 소방차의 원활한 진입을 위해 만들어진 소방차전용구역이 불법주정차에 유명무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100세대 이상 아파트와 3층 이상 기숙사의 소방차전용구역에 주차할 시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소방기본법 개정안이 지난 2018년 8월 10일부터 시행됐지만 신축 건물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울산의 경우 개정안이 시행된지 4년이 넘었지만, 현재까지 현행법 상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아파트 단지는 단 1개에 불과하다.
14일 국토교통부가 공개한 '전국 공동주택 관리비 공개 의무단지 정보'에 따르면, 현재 울산 내 100세대 이상 아파트 단지는 총 426개이다. 이중 소방차전용구역에 불법으로 주차했을 때 현행법을 적용해 과태료를 매길 수 있는 아파트는 동구의 'K'아파트가 유일하다는 것이 울산소방본부의 설명. 비율로 따지면 고작 0.2%에 해당되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듯 소방차전용구역에 주차해도 별다른 제재가 없다 보니 허점을 악용해 상습적으로 주정차하는 사례가 지속해 발생하고 있는데, 특히 지하주차장이 마련되지 않은 오래된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주차난이 심각한 현실도 불법주정차를 부추기고 있다.
지난 13일 오후 7시께 찾은 남구 신정동의 200세대 규모의 A아파트. 퇴근 시간을 넘기면서 입주민 차량들이 속속들이 주차장을 채우고 있었다. 주차장은 금세 꽉 찼는데, 이후에 들어온 차량들은 익숙한 듯 하나 둘 노란선으로 표시된 소방차전용구역에 일렬로 차량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주차장과 소방차전용구역에 늘어선 주정차 차량으로 인해 소방차는 커녕 일반 차량들도 아슬아슬하게 운행할 정도로 폭이 좁아졌다. 주차면수가 123대인 이 아파트에 이날 주차된 차량은 140여대에 달했다.
한 차량은 아파트 단지를 돌다 주차할 공간이 없자, 아파트 바로 앞 갓길에 차량을 주차했다. 갓길에는 이미 수많은 주정차로 가득했는데, 구간마다 설치된 '주정차금지' 표지판은 이미 효용성을 잃은 모양새였다.
준공한 지 30년을 넘긴 A아파트 외에도 주변에는 최소 20년이 넘은 100세대 이상 아파트 단지가 즐비했는데, A아파트와 비슷하게 대다수 소방차전용구역이 주차공간으로 변모해 있었다.
인근 주민 최모(42)씨는 "오래된 아파트다 보니 지하 주차장도 없어 갈수록 차량 대수가 늘어나니 소방차전용구역과 인근 갓길까지 차지해 버렸다"며 "안 그래도 낡은 아파트가 많은데 화재가 났을 때 소방차가 진입이 안되면 큰 사고로 이어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관련해 불법주정차 단속에 따른 적발 건수도 전무한 것으로 드러났다
울산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말 기준 울산 내 소방차전용구역은 아파트 단지 551곳에 총 2,600곳 내외로 추산된다.
지난 6월부터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안전신문고에서 휴대전화 어플리케이션 연동과 함께 소방차전용구역 내 불법주정차신고 기능을 추가했는데, 울산은 관련 신고가 △6월 53건 △7월 38건 △8월 35건 △9월(14일 기준) 12건으로 월평균 42건의 민원이 들어오고 있다.
하지만 신고된 대상 중 절대다수가 소방기본법 개정안이 시행된 2018년 8월 10일 이전에 건축허가를 받은 아파트였고, 소방당국도 처벌 근거가 없어 단순 계도에 그치는 실정이다.
울산소방본부 관계자는 "앞으로 늘어나겠지만 현행법 상 과태료 부과가 가능한 곳은 동구의 'K'아파트 1곳뿐"이라며 "처벌 근거가 없다 보니 실제 신고가 들어오면 현장 확인 후 계도 조치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소방기본법 개정안 소급 적용에 대한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18년 이채익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은 기존 소방차전용구역도 과태료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의 소방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당시 이 의원은 "불법 주차 등으로 화재·구급 현장에서 소방차의 신속한 접근이 어려웠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용구역을 의무적으로 설치하고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지만 이미 설치된 전용구역은 해당 규정이 적용되지 않아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고 제안 이유를 밝혔다.
실제로 최근 5년간 울산 지역 내 공동주택 화재 건수는 △2017년 129건 △2018년 112건 △2019년 103건 △2020년 118건 △2021년 100건 등으로 매년 꾸준히 100건 이상 발생하고 있어 큰 불로 이어질 수 있는 아파트의 경우 진입로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소방당국의 설명이다.
하지만 해당 개정안은 수년 동안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한 채 계류하다, 2020년 5월 29일을 끝으로 임기가 만료되면서 자동적으로 폐기됐다.
공하성 우석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소방차 전용구역 불법 주정차로 인해 화재 시에 소방차가 현장에 진입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전용구역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소방차의 접근을 용이하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공 교수는 "기존에 소급 적용되지 않았던 소방법 개정안들도 국민에게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소급적용하는 추세"라며 "소방차전용구역은 비용이 더 들어가지도 않고 국민 편의를 훼손하는 것도 아니어서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병집 기자 sini20000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