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지물’ 소방차전용구역, 예외조항 손질 재개정 시급

2022-09-15     윤병집 기자

[이슈진단]
2018년 과태료 부과 등 소방법 개정
법 시행 이전 승인·허가 건축물 제외
실효성 논란에 일부개정안 나왔지만
형평성 이유 폐지…수년째 흐지부지
 

울산 남구 신정동의 한 아파트 단지 내 소방차전용구역에 차량들이 일렬로 나열돼 있다.

 

 

울산 남구 신정동의 한 아파트 단지 내 소방차전용구역에 차량들이 일렬로 나열돼 있다.

 


화재 발생 시 소방차의 원활한 진입을 위해 만들어진 소방차전용구역. 눈에 잘 띠도록 노란색 직사각형 박스로 형태의 이 공간은, 정작 그 위를 점거한 온갖 장애물과 불법주정차에 가려져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8년 8월에 소방차전용구역의 안정적인 운용을 위해 주정차 등 방해 행위 시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소방법 개정안도 시행됐지만, 이마저도 시행 이전에 주택건설사업계획 승인이나 건축허가를 신청한 건물들은 제외다. 개정법이 시행된 지 4년이 넘은 현재, 현행법 상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울산 내 아파트 단지는 단 1개 뿐이다.

현장에서 실효성 문제가 불거지자 국회에서도 소방기본법 개정안 소급 적용을 위해 개정법률안을 내기도 했지만 해당 법률안은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한 채 수년째 계류하다 결국 기간이 만료되면서 폐기됐다.



# 예외조항에 4년째 지속되는 논란

2018년 8월 시행된 개정 소방기본법이 4년이 넘도록 논란이 된 것은 예외조항으로 인해 정상적인 법 집행이 불가능한 데 있다. 당시 개정된 내용은 크게 소방차전용구역 설치 의무화와 소방차전용구역 내 방해 행위를 한 경우 과태료 부과 2가지.

먼저 소방차전용구역 의무화는 100세대 이상 아파트 단지와 3층 이상의 기숙사에 한정된다. 특히 화재가 났을 경우 큰 불로 이어지기 쉬운 공동주택인 만큼 소방차와 사다리차 등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 확보가 중요다는 것.

또 사고나 화재 시 신속 진압이 요구되므로, 소방차 진입과 장비 설치 등을 방해할 수 있는 행위에 대한 과태료 규정도 마련했다. 해당 유형으로는 △전용구역에 차를 주차하는 행위 △전용구역 내에 물건 등을 쌓는 행위 △전용구역 앞이나 뒤, 양 측면에 물건 등을 쌓거나 주차하는 행위 △전용구역 진입로에 물건 등을 쌓거나 주차하는 행위 △전용구역 노면표지 등을 지우거나 훼손하는 행위 △그 밖에 소방자동차의 전용구역 주차를 방해하는 행위 등이 명시돼 있는데, 이를 위반할 시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문제는 이 조항들이 시행일 이후 주택건설사업계획 승인 또는 건축허가 신청을 한 건물에만 적용된다는데 있다. 뒤집어 얘기하면 개정안이 시행된 2018년 8월 10일 이전에 지어진 건축물은 모두 단속 대상이 아닌 데다, 벽돌 하나 안 쌓은 채 허가 절차를 밟고 있던 사업부지들도 단속에서 제외된다는 것이다.

실제 울산의 경우 현재 지역 내 100세대 이상 아파트 단지는 총 426곳인데, 이 중 현행법 상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아파트는 단 1곳에 불과하다. 특히 지하주차장이 없거나 절대적인 주차면수가 부족한 오래된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소방차전용구역 내 불법주정차가 쉽게 목격되지만, 이를 제재할 수단도 근거도 없는 상황. 소방당국도 신고가 들어오면 현장에서 계도하는 것 외에 뾰족한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 개정 석달만에 소급적용 시도...계류 끝에 1년 반만에 폐기

일선 현장에서부터 개정안의 실효성을 두고 논란과 지적이 이어지자 개정안 시행 불과 석달만에 일부개정법률안이 나왔다.

이채익(울산 남갑) 의원은 2018년 11월 기존에 설치된 소방차전용구역도 과태료 대상에 포함하는 소방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당시 이 의원은 "불법주정차 등으로 화재, 구급 현장에서 소방차의 신속한 접근이 어려웠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용구역을 의무적으로 설치하고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지만 이미 설치된 전용구역은 해당 규정이 적용되지 않아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고 제안 이유를 밝혔다.

해당 발의안은 바로 다음해인 2019년 3월 15일 열린 제367회 국회(임시회) 제3차 전체회의에 상정됐는데, 당시 검토보고를 맡았던 행정안전위원회는 "개정 당시 적용 대상이 시행일 이후 건축허가되는 공동주택에만 한정되어 이전에 임의설치 전용구역에 대해서는 주차 등 방해행위에 대한 제재를 가할 수 없는 문제점을 해소하려는 점에서 타당한 입법조치로 보인다"면서 "다만 소방활동 공간의 보장이라는 공익목적과 함께 의무화 이전에 임의설치한 공동주택과 설치하지 않은 공동주택 간의 형평성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할 필요가 있는 사안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하지만 종합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는 행안위의 발언과 달리 상임위원회 소관 법률안 심사를 분담하는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는 해당 법안을 찾아볼 수 없었다. 행안위 관계자는 "발의안이 현실적으로 적용되기 힘든 데다 수정 또는 타 법안에 흡수될 여지가 없다 판단될 경우 회의 절차가 생략될 수 있다. 해당 발의안도 비슷한 경우"라고 설명했다.



# 형평성 때문에 못 건드려...꾸준한 발의로 대안 찾아야

그렇다면 행안위가 '비현실적'이라고 판단한 형평성 문제는 무엇일까.

행안위 관계자는 15일 취재진과 통화에서 "개정안 시행 전에 임의로 소방차전용구역을 설치한 공동주택의 반발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되는데, 임의설치 곳도 다 과태료 대상으로 잡으면 개정안에서 명시한 '100세대 이상 아파트 단지', '3층 이상 기숙사' 등 설치기준이 아닌데도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며 "또 아예 임의설치조차 하지 않은 곳도 있으니 저울 재듯 형평성을 맞추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울산소방본부가 작년 12월말 기준으로 파악한 울산 내 공동주택 소방차전용구역은 2,600여개에 달하는데, 임의로 설치한 구역이 많아 100세대 이하 아파트에서도 쉽게 발견되고 있다.

반대로 개정안 이전 공동주택에 소방차전용구역 의무화 기준에 맞춰 설치해 과태료 기준에 맞추는 방편도 소개됐지만, 이 경우 경제적 이유로 어렵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 관계자는 "문제는 재원이다. 기존 건축물에 추가 부지 확보가 가능한지는 차치하더라도 그 비용을 댈 수 있을지 미지수"라며 "이채익 의원 발의안이 폐기된 건 안타깝지만 제도 개선을 위해선 새로운 대안을 담은 법안을 꾸준히 발의해야 한다"고 했다.


윤병집 기자 sini20000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