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횡단보도의 시간은 상대적으로 흐른다

2022-09-25     이정준 울산 남부署 신정지구대 경장

 

이정준 울산 남부署 신정지구대 경장



 
 
 8월의 어느 날. 야간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집에 다다를 무렵 차량 신호등의 신호가 적색으로 바뀌었고 필자를 포함한 차도의 모든 차량들은 멈춰 섰다. 몇 분 뒤 차량 신호등의 신호가 청색으로 바뀌었지만, 차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상황을 파악해 보니 앞차들 사이로 할머니 한 분이 횡단보도를 지나는 모습이 보였다. 보행자 신호등의 색깔은 바뀌었지만, 할머니의 걸음이 느려 운전자들은 할머니를 배려해 기다려주고 있었다.


 필자는 이 장면이 무척 인상 깊게 다가왔다. 바쁘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예상치 못한 기다림은 자신들에게 손해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운전자들은  그 흔한 경적 한번 없이 차분히 기다려주었다. 할머니는 운전자들의 배려 덕분에 당황하지 않고 안전하게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작지만 소중한 배려가 매번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전국 교통사고 사망자 4,185명 가운데 보행자 사망자는 40%인 1,675명이었고, 이 중 노인 보행 사망자가 906명으로 54%, 한국교통연구원 통계에선 우리나라 노인 10만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22명으로 14세 어린이(0.6명)와 15~64세 청·장년(5.5명)보다 월등히 높다. 이는 노인 사망자의 절반 이상은 '보행 중' 사고를 당한 것을 의미한다.


 또한, 울산남부경찰서 노인 교통사고 통계에 따르면 2020년 180건 중 사망자 5명, 2021년 179건 중 사망자 5명으로 노인 횡단보도 사고 대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울산남부경찰서에선 2개월간 횡단보도·교차로 주변 가시적 안전 활동 추진 및 운전자 법규 준수를 유도해 보행자 안전을 집중 관리 했다. 또한 고령자 안전교육(4월~연중), 화물차·이륜차 등 교통안전 교육시 개정 법령 교육을 병행하며 보행자 보호 의식 제고에 힘쓰고 있다. 


 일상 회복에 따라교통량과 인구 이동량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수준으로 회복하고 있다. 그것은 보행자의 안전사고 위험도도 올라가고 있음을 뜻한다. 이 가운데 우리 모두의 배려 속에 보호해야 하는 고령 보행자가 있다. 보행자 중심의 교통 문화 정착이라는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 안에서 모두에게 횡단보도에서의 시간이 똑같이 흐르게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