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사는 일로 신경이 날카롭게 벼리어진 탓에 새벽 네 시면 어김없이 눈이 떠진다. 몸과 마음이 다함께 민감해지는 시간이다. 최고조에 이르는 속 쓰림도 그렇고 방광을 터뜨릴 기세로 팽창하는 요의까지도 절정을 이룬다. 폭음을 하고 들어와 인사불성으로 쓰러졌다가도 어김없이 일어나 앉게 되는 걸 보면 일거리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다.

실정 모르는 이들은 하루살이 날품을 파는 주제에 무슨 새벽 출근이냐고 한껏 비웃음을 던질 것이지만 그게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 바로 홍기 씨의 생각이었다. 아무리 하늘과 땅을 위아래 맷돌로 삼아 확 갈아 버리고 싶은 세상일지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믿고 의지할 상대는 누가 뭐라고 해도 오직 사람이라는 데에서도 이견이 없었다. 궁지에 몰릴수록 좋든 싫든 사람과 사람이 빚어내는 관계의 그물망 속으로 들어가야만 바늘구멍만한 기회라도 잡게 된다는 것을 홍기 씨는 그간에 겪은 쓰라린 체험을 통해 너무나 절실히 깨닫고 있었다. 일이 잡히지 않는다고 발길마저 끊어 버리면 그것으로 모든 관계도 시나브로 멀어지면서 끝장이 나고 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아무리 싫증이 나고 고달파도 나 여기 이렇게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다는 것을 각인시켜 놔야 한다. 그래야 가뭄에 콩 나듯 전화연락이라도 한 번씩 오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며칠 지나지도 않아 모든 게 다 까맣게 잊히는 것이 이곳의 생리였다.

“어이, 홍기 씨. 해장 한 잔 해야지.”

담뱃불과 함께 다가와 손을 내미는 이는 허영만 씨였다.

그는 늘 담배를 입에 물고 산다. 골초도 그런 골초가 없다. 한밤중에 대하면 사람이 아니라 새빨간 불빛이 다가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에게는 사람을 대할 때마다 반갑게 악수를 청하는 특이한 버릇도 있다. 게다가 너무 외롭게 살아온 탓인지, 술에 취하면 막무가내로 옆 사람을 끌어안으면서 입까지 맞추려 들어 아주 학을 떼게 한다. 그러나 그에게도 빛나는 재주가 하나 있으니 그건 바로 일감을 구해오고 흥정을 성사시키는 능력이었다. 홍기 씨는 얼마 전에도 그의 도움을 받아 두서 골짜기의 한 과수원으로 일을 다니면서 점심 메뉴로 나온 삼겹살을 한 주일 내내 포식한 적이 있다.

사람만이 유일한 희망
 
밥집이 저만큼의 어둠속에서 잘 익은 석류 알처럼 따듯한 빛을 밝힌다.

불은 참으로 묘하다. 스스로의 모습을 다양한 꽃처럼 피워내면서 늘 새로운 의미로 다가선다. 캄캄한 한밤중에 사방이 휭 하니 터진 논배미나 산속의 공사판에서 피워 올리는 모닥불은 꽃양귀비처럼 처연한 선홍빛이어서 무섭다는 느낌을 준다. 한겨울 새벽에 도시의 변두리 건축현장에서 언 몸을 녹이기 위해 잘라낸 드럼통이거나 젓갈 통에다가 각목들을 잔뜩 담아 피워내는 불길은 너무 초라하여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해거름에 하루 종일 베어낸 낟가리를 쌓아 올린 후에 옷과 살에 밴 티끌들을 털어내고 끄스르기 위해 보릿짚이나 볏짚을 수북이 쌓아 놓고 질러대는 불길은 불을 붙이자 말자 기세등등하게 타올랐다가 금세 사그라지는 것이 허무한 우리네 인생을 꼭 빼닮았다. 비오고 눈 내리는 날 시골 공회당 안마당에서 모처럼 막걸리 추렴을 나누는 동민들이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소박하게 피워낸 불길은 마을의 외진 샘터나 햇살 잘 드는 장독대 근처에서 아무도 모르게 피어난 박꽃처럼 보는 이의 마음까지 훈훈하게 해준다.  

새치 쪽에서는 물비린내를 잔뜩 머금은 강바람이 불어오고 좀 더 먼 옥교동의 하늘에서는 화려하게 명멸하던 네온들이 하나둘씩 꺼지면서 기다렸다는 듯 먹빛 어둠이 솟아난다. 너무나 낯익은 풍경이지만 시커멓게 내려앉는 어둠속에서 반딧불처럼 떠다니는 불빛들이 폭우에 사정없이 유린당한 꽃잎처럼 다가올 때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 낯선 거인처럼 다가선다. 세계의 종말이니, 인류 최후의 날이라는 낯선 낱말들만 문명의 마지막 흔적처럼 남겨진 지상으로 계절을 잊은 거센 방사능비는 사흘도리로 쏟아진다. 모든 것이 이상 한파에 일제히 져 버린 백목련들처럼 빈약한 가슴을 허옇게 드러낸 채 숨을 거둔 시신으로 누워 있다. 참으로 비정하고 참혹한 상상의 날개 짓이다.

세기말 이미지의 새벽 거리 풍경
 
홍기 씨는 이 모든 감정의 유희까지도 결국에는 일자리를 잡지 못해서 생겨난 피해의식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구 역전시장 쪽으로 터벅터벅 걸음을 옮겨 놓았다. 아무도 없다. 아니,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을 것만 같은 황량한 폐허의 이미지만이 새벽의 거리거리에 흥건히 고여 있다. 홍기 씨는 이런 제 마음에 쫓기듯 시장 안으로 황급히 들어선다. 다행이다. 그래도 새벽시장은 여전히 활기찬 몸짓으로 손님 맞을 채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시장은 어디서나 든든한 생의 심장 역할을 다하고 있다.  

홍기 씨가 시장을 나와 차량이 끊긴 도로를 옆에 끼고 인적 없는 인도를 휘적휘적 걸어 나아간다. 학성공원이 건너다보이는 신호등 앞에서 꽤 오랫동안 서 있었지만 공단으로 나아가는 출퇴근 차량도 한 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유명 가구 대리점에서 가로수 아래에다가 설치해 놓은 평상 위에서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흘러나온다. 서로의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어둠속에서 스스로를 바겐세일용 상품처럼 함부로 내놓고 구매자가 나타나기만을 학수고대하는 인부들이었다. 건너편의 오거리 신호대기 선에도 세 대의 승용차와 한 대의 화물차가 서 있을 뿐, 오늘따라 폐지 줍는 노부부도 지나가지 않고 그들의 뒤를 육칠 분 간격으로 따르던 신문배달 아줌마의 오토바이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 산다는 것은 이렇게 늘 외로운 것이다. 모두가 하나씩의 작고 보잘 것 없는 입자로 뿔뿔이 흩어지고 있다. 그리하여 새벽부터 도시의 거리를 서성이는 인부들은 더욱 더 독해진 담배연기를 끊임없이 뿜어내고 있는 것이다. 

낡은 봉고 한 대가 소리 없이 다가오더니 침묵 속에서 따로 모여 섰던 이들을 싣고 재빨리 사라진다. 미리 약속이 되었던 사람들일 것이다. 두런거리던 소리가 뚝 그친다. 사람들은 잠시 멍한 시선으로 빨간 미등을 드러낸 채 멀어지는 차의 후미를 지켜본다. 괴롭지만 오늘도 공치는 날임을 인정해야 하는 시간이다. 매일매일 꿈자리마저 사납다. 날씨마저 좋지 않은 조짐을 자꾸 보여 주니 큰일이다. 절망적인 징후는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나날이 새롭게 발아하고 있다. 삼십 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덧없이 지나간다. 다시 또 지루한 사십여 분의 시간이 흐르자, 날이 밝아온다. 어둠이 빠르게 소멸되면서 얼굴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모두가 지친 낯빛이다. 그들이 이제 또 더욱 더 깊어진 침묵 속에서 유령처럼 길을 건너간다. 

식당은 작고 초라하다. 어둠속에서 그토록 따듯한 이미지로 사람들을 감싸주던 자태는 간 곳이 없다. 상호도 아주 단순하게 그냥 ‘밥집’이다. 더 이상의 수사가 필요치 않다는 주인의 오기가 손에 잡힐 듯하다.
변두리의 작은 밥집이지만 새벽어둠속에서 인력시장을 찾는 이들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나 진배없다. 꽤 먼 거리에서도 금방 알아볼 수 있는 환한 불빛과 수런거리는 몸짓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토종 된장에 잘 말린 시래기를 넣고 밤새 우려낸 해장국이 일품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밥이다. 다섯 개의 넓고 투박한 나무 탁자마다 하나씩 올려놓은 이남박 속의 푸짐한 모둠밥을 얼마든지 마음대로 덜어다먹을 수 있는 것이 ‘밥집’을 밥집답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일 것이다.

여기서는 누구나 당당해진다. 그가 누구이건 간에 모두가 다 밥의 힘을 신봉하고 그것의 위력을 진실로 두려워할 줄 아는 인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이곳을 드나드는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할 것이다. 그건 바로 사람이라고! 사람이 사람을 믿고 내어주는 푸짐한 인정이야말로 밥을 밥답게 하는 가장 귀한 보석임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것을 즐기는 그들의 모습 또한 당당한 것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해주는 것

아침부터 밥과 반찬을 푸짐하게 넣고 썩썩 비벼서 아주 달게 먹는 이도 있고 밥 한 술에 국 한 수저, 반찬 한 가지를 꼬박꼬박 지켜가면서 야금야금 먹는 이도 있고 군기가 바짝 든 군인들처럼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아 과장스런 몸짓으로 수저질을 하는 이들도 있다. 저쪽 구석진 자리의 장년 사내는 숙취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국만 후루룩후루룩 들이 킨 채 물러나 앉아 담배부터 빼물고 그의 맞은편에 앉은 영감은 벌써 얼근히 취해 혼자만 아는 소리를 끊임없이 중얼거린다. 홍기 씨도 뜨거운 국물부터 한 모금 넘긴 후 소주 한 잔을 훅 털어 넣었다. 목젖 부위가 찌르르 하는 통증으로 깨어나면서 공복의 위장이 후끈 달아오른다. 눈자위도 붉어지는 것 같고 갑자기 수마가 몰려온다.  

“새벽 해장술은 마약이여, 마약. 밥부터 한 술 떠.”

언제 다가왔는지, 밥집 할멈이 또 잔소리를 늘어놓을 기세다. 고마운 사람이다. 달콤한 꿈나라를 헤맬 시간대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귀한 인정을 이처럼 넉넉히 베풀어 주니 성자가 따로 없다. 그러나 정작 ‘밥집’의 할머니는 그걸 모른다. 그녀의 생애는 오히려 너무나 비극적이다. 그녀는 지금도 하루하루를 전쟁을 치르듯 살아낸다. 인부들의 당당한 새벽 식사를 떠받쳐 주는 것이 한 노인의 이런 비극적인 생애라니 너무나 슬프다. 노인은 하루에도 몇 번씩 ‘없는 놈들은 그저 없이 살아야 한다.’는 말을 옹잘거린다. 이는 그녀가 한평생의 아픔으로 깨우친 생의 비의(秘意)일 것이다. 노인의 죽은 남편은 곱상한 외모와 많은 재산을 가지고 날뛰다가 죄 없는 가족의 운명까지 절딴 내고 말았다. 그런 할멈이지만 홍기 씨라면 간이라도 빼내줄 것처럼 나긋나긋해진다. 홍기 씨가 처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홍기 처는 얼굴만 예쁘장한 화냥년이다. 그래서 홍기 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노인의 아들이 되고 말았다. 꺽정이처럼 기골이 장대한 늙은 ‘밥집’과부의 아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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