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5년 사연댐의 담수를 시작으로 이곳에 살던 주민들은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고향을 떠나 이주해야 했다. 이후로 대곡댐과 회야댐 지역 주민들도 같은 사정에 처하게 된다. 사진 위는 대곡댐 담수식과 담수 당시 현장. 울산매일 포토뱅크 iusm@iusm.co.kr

 <4>도시팽창과 이주민              

1962년 시로 승격하면서 울산은 공업화 과정과 인구 팽창에 따른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살던 고향을 떠난 이주민들이 많았다. 이들은 고향을 등지고 울산 곳곳에 뿌리 내려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있지만 망향의 아픔은 여전히 가슴 한 켠에 남아 있다. 이들 이주민은 산업단지 이주민과 댐 설치 수몰민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들의 희생으로 오늘 울산은 번영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공단 조성과 공해 이주민
1965년 사연댐의 담수를 시작으로 이곳에 살던 주민들은 모두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고향을 떠나 이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연댐에는 대곡초등학교 한실분교와 마을이 고스란히 물에 잠겼고 이들은 고향을 버리고  인근 언양, 옹태, 유곡마을로 각각 이주를 했다.
당시 사연댐은 군사정부의 강력한 정책에 밀려 말 한마디 못하고 강제 이주 당했다.
대곡댐 지역은 지난 1999년부터 2004년까지 대곡댐 건설로 인해 4개 마을이 없어지면서 그 곳에 살던 170가구 421명의 사람들이 고향을 등지고 흩어졌다. 또한, 회야댐은 1986년 조성돼 당시 이곳 웅촌면 통천, 중리, 신리, 신정 등 4개 마을 수몰되면서 150가구 700여 명이 남구 옥동 은월마을로 집단 이주했다.
하지만 은월마을로 들어올 형편이 되지 못한 이주민들은 무거동, 양산 등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수몰민들은 돌아갈 수 있는 고향 자체가 지도에서 사라져 망향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고 있다.
조상 대대로 살아 온 고향을 잃어버린 이들의 희생으로 110만 울산시민의 안정적인 식수원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 온산공단 조성에 따른 이주민 망향비 준공식 모습. 울산매일 포토뱅크 iusm@iusm.co.kr

사연·대곡·회야댐 건설
 울산시민 안정적 식수원 확보
 
 온산-울산 등 각종 공단 조성
 공해-도로공사 문제로도 떠나
 이주민 희생으로 만들어진
 50년 오늘날 발전 잊지말아야

 

◆공단 조성과 공해 이주민
울산의 이주민은 대부분 산업단지 조성으로 인해 발생했다.
정부의 울산ㆍ온산국가산업단지 조성으로 여천동, 매암동, 부곡동, 황성동, 용연동, 용잠동 등 7개동 5,900여 가구가 울산 각 지역으로 이주했다. 용잠동 등 석유화학공단조성 등으로 철거된 주민들은 삼호지구, 다운동과 무거동 일대로 이주했다.
매암동과 장생포 일대에 영남화학이 들어서면서 대일마을과 양죽마을 주민들도 이주길에 올랐다. 1974년 4월 온산공단 개발구역으로 편입된 19개 마을 주민 2,800가구 1만3,000여 명이 이주했다.
온산공단 주민들은 울주군 덕신리나 남창리로 이주했고, 남화동 마을 주민들은 울산여자상업고등학교 뒤편 임야를 매입해 남화용잠 이주택지 조합을 구성해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만들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공해이주 철거주민들이 집단이주했다.
이와는 다르지만 도로공사로 인한 이주민 대책이 현재 문제로 남아 있기도 하다.
울산시민이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사업인 옥동·농소 국도7호선 공사에 따른 이주 문제가 울산시와 마찰을 빚고 있다.
장생포, 대일, 세죽, 부곡 지역 주민들이 공해문제로 1995년부터 이주택지인 태화동으로 이주해 살고 있는데 1998년 도시계획에 의해 도로로 편입되면서 80여 가구가 또 다시 이주할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울산시는 우정동 혁신도시 내 복산동 18필지, 약사동 11필지, 장현동 51필지를 마련했지만 태화동 철거민 주민대책위원회는 중구의 끝인 장현동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28일 주민대책위 김용종 위원장은 “또 다시 이주를 하는 것도 억울한데 이주지역이 전부 흩어져 있고 장현동으로 가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맞섰다.
이들 수몰민과 이주민들의 특징은 대부분 고향에 조상대대 뿌리를 내리고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었다는 점이다.
울산의 50년 역사는 수많은 이주민을 양산시키면서 양적, 질적 성장을 이뤄왔으며 이들의 희생으로 현재 울산의 발전이 가능했지만 실향의 아픔은 치유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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