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여수지역에 820만 배럴 규모의 저장시설이 완공돼 상업운영을 시작하는 등 정부 주도하에 동북아오일허브 구축을 위한 인프라 건설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 오는 11월 울산항 동북아오일허브 1단계 사업이 착공에 들어가면 저장시설 확충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울산항 동북아오일허브가 다수의 거래자들이 모여 활발한 거래가 이뤄지는 진정한 오일허브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석유처리 인프라 뿐만 아니라 질 좋은 국제 금융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유럽ARA, 네덜란드에 석유저장시설 집중 불구
실질적 거래는 거래소 있는 런던서 이뤄져
창고수수료만 챙기는 ‘반쪽 오일허브’ 안되려면
거래소에 액체화물 금융거래 인프라 구축 절실
석유생산 전무 싱가포르, 아시아본부 성장 배경엔
유럽-동북아 연결 지리적 이점·소비시장 십분 활용
국제금융·법률 원스톱서비스…가격설정기능 선점
울산, 실물거래·금융상품화 등 단계별 설정 착수를

세계 3대 오일허브로 불리는 미국 걸프만, 유럽ARA(Antwerp, Rotterdam, Am sterdam), 싱가포르 등은 모두 석유 및 증권거래소를 보유하고 있다.
이 중 미국 걸프만은 오일허브에서의 석유거래를 기반으로 뉴욕상품거래소, 시카고선물거래소 등 선물시장이 발달했으며, 특히 뉴욕상품거래소는 세계 최대 규모의 석유거래소로 일평균 거래건수가 370만 건 이상, 거래액은 32억8,000만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또한 유럽의 경우에도 ARA 석유거래를 기반으로 대륙 간 유럽선물거래소가 발생했으며, 싱가포르는 석유거래와 관련해 장외거래시장이 발달했지만 아직까지 석유 선물거래시장은 발달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싱가포르거래소SGX 관계자는 “석유 저장시설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오일허브를 통한 실질적 경제효과를 보기 어렵다”며 “석유거래 관련 거래소와 액체화물 관련 금융거래 인프라 구축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강조돼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성공한 오일허브로 자리 잡은 유럽 ARA지역의 경우 저장시설이 네덜란드에 집중돼 있지만, 실제 석유거래는 거래소가 있는 런던에 집중된다”며 “울산의 동북아오일허브 사업이 네덜란드처럼 임대 수수료를 챙기는데 머물지 않고, 런던 시장과 같은 경제적 효과를 보기 위해선 석유거래소가 반드시 갖춰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싱가포르의 석유거래 시스템
싱가포르는 석유가 전혀 생산되지 않지만 아시아 석유거래의 중심 역할을 통해 석유도 원활히 확보하면서 가격설정기능도 수행하고 있다. 싱가포르가 석유 오일허브로 성장한 것은 유럽과 동북아를 연결하고 인근 소비시장이 있다는 지리적 위치와 정책, 선진 인프라 및 효율적 항만 운영 등의 결과이다. 글로벌 문화 수용이 뛰어나며 인센티브 제공, 국제금융, 법률·회계, 서비스 등도 우수해 6,000여 국제 물류수송 연료유 거래도 창출했다.
싱가포르 선물거래소는 과거 Simex(Singapore International Monetary Exchange)에서 1989년 고유황 중유 등이 상장됐으나, 거래부진으로 인해 1999년 싱가포르 증권 거래소 SGX(Singapore Exchange)에 합병됐다. 이후 석유 부문은 유동성 부족에 따른 거래 부진으로 인해 최근 폐지됨에 따라 더 이상 싱가포르의 선물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 OTC(Over The Counter, 장외 선물시장)가 발달됨에 따라 실물(Physical) 거래와 아울러 Paper 거래(가격변동위험 헷징)도 매우 활발하다. 아시아의 석유 실물거래와 함께 페이퍼 거래도 대부분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실제 싱가포르는 석유 메이저, 트레이딩, 선박 브로커 등 원유 및 석유제품 거래 관련 200~300개 회사들의 아시아지역 본부로 활용돼 석유거래관련 정보가 풍부하고, 많은 거래가 싱가포르 내 트레이더들 사이에서 전화, 이메일, 팩스 등을 통해 진행되고 있었다. 대다수의 트레이더들이 로이터 단말기와 상호간의 유선상의 통화로 거래를 하고 있었고, 각종 거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싱가포르 내에는 많은 선박브로커, 장외시장 브로커, 검정사 등이 위치해 계약 당사자들에게 신뢰성 있는 정보들도 결국은 시장에 회자될 정도로 실물거래 정보가 풍부해 싱가포르에 모여드는 것이 느껴졌다. 한국의 경우에도 지리적 이점과 함께 정제 및 저장시설 등 물리적 기반을 보유해 동북아 물류 중심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동북아 한가운데 위치해 역내 중심화가 가능하며 충분한 고도화 정제능력을 보유해 수출여력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거래 유동성 및 시장 투명성 미흡으로 거래(실물) 및 가격(정보) 측면에서 싱가포르에 의존적인 한계가 있고, 일반수출 위주, 리스크 관리용 페이퍼 시장 부재, 물류 대비 항만수용 능력 및 상업용 저장·블렌딩 시설이 제한적이다. 또한 투자 유인 인센티브, 투명한 시장 환경(재고 발표 등), 금융국제화, 항만 운영능력 등 사회 인프라도 국제수준보다 부족한 상황이다.

◆울산지역 석유거래소의 필요성
울산발전연구원 강영훈 박사는 “혹자는 국내의 금융 중심지인 여의도에 울산항 동북아오일허브 사업과 관련 금융거래소를 세우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한다”며 “하지만 이 경우 울산항은 동북아오일허브란 이름만 달았지 실질적으로 액체화물을 저장해주기만 하는 창고역할만 하는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울산이 창고수수료만 벌자고 이번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아닌 만큼, 울산항이 저장 중심지가 아닌 거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해야만 실제적 경제효과를 얻을 수 있다”며 “ 본격적으로 매립이 시작되는 단계에서부터 진정한 트레이드허브 구축을 위한 인프라를 단계별로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지역 전문가들은 울산항 동북아오일허브가 원유를 수입해 재가공한 뒤 수출하는 비중이 높고, 정부의 정책적 고려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이와 유사한 싱가포르 오일허브의 발전사례를 참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울산항만공사 관계자는 “싱가포르는 Platts 등 주요 가격정보제공기관과 트레이딩 회사, 석유거래소, 석유관련 금융회사 등이 모두 밀집해 있으며 타 오일허브와 달리 원스톱 법·제도 시스템 구비, 입주업체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등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바탕으로 성장했다”며 “하지만 현재 싱가포르도 장외거래 위주로 거래가 한정돼 있는 것을 교훈삼아 이에 대한 대응책 마련도 고심해야 한다. 석유거래소 설립이 중요한 이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지난 4월부터 올해 말까지 한국석유공사는 오는 2017년까지 석유거래소 개설을 추진하기로 하고, 범정부적 연구용역에 들어갔다. 싱가포르석유거래소SGX, 두바이상품거래소DME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하고, 도쿄나 상해 등 현물거래 물동량 미확보로 활성화되지 못했던 석유거래소 사례를 고려한다는 방침이다.

◆금융인프라 구축전략
이를 바탕으로 지역대학 및 금융권 전문가들은 동북아오일허브를 위한 금융인프라 확충방안을 두 단계로 나눠 제시했다.
먼저 ‘실물거래활성화 단계’에서는 트레이딩 회사와 가격정보제공기관이 필수적이므로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 있는 세계적 회사 등을 유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석유수출입업 진입절차 단순화 △블렌딩 증 제품가공 자유화 △부가가치 면세기준 명확화 등 제도적 여건 개선뿐만 아니라 보다 적극적 유치를 위해 오일허브 지역을 자유무역지역으로 지정하는 것도 고려할 사항이다. 또, ‘금융상품화 단계’에서는 오일허브 내 물류 거래량이 증가하고 석유제품 관련 금융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청산소, 거래소 및 금융상품을 제공하는 석유관련 금융기관의 확충이 필요하다. 특히, 이와 함께 트레이딩 회사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국제 금융공학센터 등 전문인력 양성 및 공급을 위한 체계적 지원시스템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울산시와 울산발전연구원은 거래관련 가격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세계적 가격 평가기관인 OPIS와 함께 관련 가격정보 포탈의 프로토타입 개발에 나섰다.
OPIS 관계자는 “일반적인 금융거래 및 시장의 메커니즘과는 다르게 기초자산이 직접 거래되고 이를 바탕으로 평가가격이 형성되며, 석유 및 제품유의 거래소 내 거래도 (실물)기초자산에 대한 평가가격을 기반으로 선물거래 및 파생상품이 만들어지고 있다”며 “평가가격은 실제 거래가격은 아니고, 실제거래 가격을 반영한 가격을 말하며, 실제거래에서 참조되기 때문에 참조가격으로 불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따라서 기초자산에 대한 평가가격 공시를 할 수 있는 기관이 없을 경우 울산은 거래허브의 기초적 기능을 수행할 수 없고, 나아가 거래소 설립 등의 논리적 근거를 제시할 수 없다”며 “현재 울산 동북아오일허브 구축에 따른 거래허브로의 발돋움에 회의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 중 하나는 유동성 창출의 불확실성과 평가가격 제시기능의 미비에서 시작된다”고 지적했다.
평가가격 개발을 위해서는 크게 트레이더 참여와 트레이더의 정보 제공 및 습득을 위한 포털의 두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울산항은 동북아 오일허브 구축과 제도적 여건이 마련될 경우 트레이더 참여는 가능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정보 포털의 개발을 통한 지식허브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울산발전연구원 관계자는 “동북아 오일허브 구축을 바탕으로 울산이 거래허브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울산에서 거래되는 석유 및 제품유에 대한 가격제공이 필수적”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가격정보기관의 울산 유치 협약 (2013년 상반기), 가격정보기관과 프로토타입 개발 (2014년 하반기), 가격정보기관의 정보시스템 개발 (2015년), 가격정보 포털에 리포팅 해 줄 트레이딩 기업·정유사·물류기업 모집(2015년), 정보 포털서비스 시작 (2016년), 공시가격의 사용자 확보 및 유동성 창출 (2017년~), 공시가격 기반의 스왑 및 옵션 상품 개발(2018년~) 등의 추진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