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5년 첫 개장 이후 100년의 세월을 버텨온 언양시장. 영남 지방에서도 큰 규모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이곳엔 각종 먹거리들과 맛집들이 가득하다. 김지은 기자 fantastig@iusm.co.kr

어릴 적 집근처에서 열리는 5일장을 손꼽아 기다린 기억이 있다.

신기한 물건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훌쩍가는 재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날은 핫도그나 도넛츠 등 각종 시장 먹거리들을 어머니께서 사주시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어머니의 기분에 따라 옛날통닭이나 족발을 살 수 있는 기쁨도 있었다.

언제부턴가 전통시장이 침체기에 빠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시장에는 사람이 있고 정이 있다. 기자를 설레게 하던 먹거리들은 추억이 아닌 여전히 현재의 기억으로 이어지고 있다.

‘언양시장’도 분명 누군가에게는 그러한 장소일 것이다. 영남 지방에서도 큰 규모와 오랜 역사를 지닌 시장인 언양시장은 어느새 100년의 세월을 맞았다.

1915년 개장된 이후 지나간 세월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추억을 묻었다. 누군가에게는 아련한 유년시절 추억이 있는 곳이고,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삶의 터전이다.

이제는 언양알프스시장으로 명칭을 바꿨다지만, 언양알프스시장보다는 언양전통시장이, 언양전통시장보다는 언양시장이 입에 달라붙는다.

북적이는 장날에 만난 시장 먹거리들도 그렇다. 입에 착 감기는 맛은 여느 고급음식 못지않고, 소박함에서 오는 정겨움은 덤이다.

▲ 구수한 군밤은 겨울철에 사랑받는 대표적 먹거리다. 김지은 기자 fantastig@iusm.co.kr

기자는 지난 장날 언양버스터미널과 붙어 있는 언양시장의 먹거리와 맛집을 탐색해봤다. 매서운 동장군도 시장 안 발걸음을 막진 못했다.

최근 영화 ‘국제시장’으로 인해 시장의 인기가 높아진 듯, 인파가 대단했다.

골목 구석구석에 고단하지만 장날의 대목을 기다려온 어르신들이 작은 대야나 판을 펼쳐놓고 각종 물품들을 팔고 있다. 간혹 젊은 판매상인들도 보인다.

시장이 사람 사는 냄새와 활기로 꽉 찼다. 매달 2일·7일이 들어가는 날짜에 5일 간격으로 열리는 언양장은 울주군 서부지역 물류 집산지로, 이곳에서 구하지 못하는 물건이 없을 정도다.

▲ 겨울철 인기 군것질거리인 호떡도 맛볼 수 있다. 김지은 기자 fantastig@iusm.co.kr

상설로 열리는 언양시장 자체도 크지만, 장날엔 곳곳에서 모여든 상인들이 시장 주위를 둘러싸고 판매대를 펼쳐 한층 더 풍성해진다. 장날에 일부러 구경하러 온 사람들도 많다.

‘대목’을 놓칠 새라 가게 주인들이 가게 문을 여는 시간도 몇 시간 앞당겨진다. 당연히 이날엔 먹거리도 늘어난다.

가게 앞 좌판에 어묵과 두부를 종류별로 길게 늘여다 놓은 만큼, 손님들의 줄이 긴 곳이 있다.

이곳에서 어묵 장사를 한지 벌써 40년은 넘은 ‘언양어묵’이다. 박광욱 대표가 아버지의 가게를 물려받아 운영한지는 10년 정도 됐다.
 

그는 평소엔 오전 6시쯤 문을 열지만, 장날이면 오전 3시부터 가게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한다고 했다.

가게 안에 설치된 기계로 만들거나 박 대표가 일일이 반죽을 떠서 만드는 어묵 둘 다 이곳만의 비법과 세월이 담겨있다.

그중에서도 박 대표가 떡이나 햄을 어묵반죽으로 돌돌 말아 즉석에서 튀겨 내놓는 1,000원대 튀김어묵은 찬바람에 코끝이 시린 손님들을 유혹하는 최고의 군것질 거리다.

저렴한 가격도, 먹음직스러운 모양도 발길을 붙잡는데 모자람이 없다.

“드시는 것도 공짜, 맛보는 것도 공짜, 먹어보고 가세요”. ‘언양어묵’ 바로 옆집에 있는 옛날 과자 판매점 ‘과자이야기’에서 들리는 소리다.

좌판 가득 매우고 있는 추억의 과자들이 향수를 자극한다. 수박젤리, 소라과자, 눈깔사탕 등 슈퍼에선 쉽게 구하기 어려운 다양한 옛날 간식들을 이곳에서는 만날 수 있다.

80종류가 넘는 과자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소쿠리에 담는 재미도 있고, 주인 특유의 넉살과 후한 인심이 매력인 곳이다. 이곳에 들어서면 누구나 오래전 과자를 좋아하던 소년 소녀로 돌아간다.

시장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외치는 문구도 거짓이 아니다. 지나가는 손님들도 한 개씩 집어가면서 맛보고, 과자를 사는 손님들도 과자를 맛보면서 고른다. “자꾸 드셔봐야 다음엔 다른 것도 사시지”.

▲ 1,000원이면 먹을 수 있는 수수부꾸미와 찹쌀전의 고소한 냄새가 유혹적이다. 김지은 기자 fantastig@iusm.co.kr

시장의 ‘과자 아저씨’로 통하는 김동일 대표가 손님이 산 과자에 서비스 과자를 한 움큼 더 얹어준다. 손님들은 “좀 더 달라”고 간청한다.

그럼 못 이기듯이 좀 더 얹어주고 나서야 계산이 이뤄진다. ‘덤’은 역시 시장에 오게 하는 최고의 매력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이번에는 다른 골목에 있는 60년 전통의 곰탕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언양시장을 좀 안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익히 유명한 ‘언양옛날곰탕’이다.

김이 뽀얗게 서린 식당 문을 여니 이미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대기 중이다. 김귀자(53) 씨가 시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는 이곳은 곰탕, 수육백반, 수육 단 3가지 메뉴만 판매하고 있다.

모르는 사람과 합석해 후루룩 뜨끈한 국물을 들이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곳 역시 작은 시장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맞은편에 있는 상가는 ‘알프스식당’이다.

상가 안에는 간단한 안주에 반주를 걸칠 수 있는 식당, 횟집, 분식집 등 다양한 식당들과 생선가게, 원단가게 등 각종 가게들이 구역별로 모여있다. 삼삼오오 모인 어르신들이 가볍게 술 한잔 하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에서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 노릇하게 구워진 국화빵. 김지은 기자 fantastig@iusm.co.kr

다시 밖으로 나와 구수한 냄새를 따라 가보니 한 아주머니가 돌판 위에 반죽을 올려 수수부꾸미를 만들고 있다.

만들어 놓은 부꾸미에 먼지가 앉을까 덮개로 막아둔 모습을 보니 길거리 음식도 진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한 장에 1,000원. 만원 한 장으로 살 것 없어진 세상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시장에서는 든든하게 먹거리를 살 수 있을 듯 하다.

근처에 소머리곰탕·돼지국밥·선지국이라 적혀 있는 장터 국밥집도 눈길을 끈다.

아무곳에 앉아서 먹는 것이 매력이지만 날씨가 추워서인지 밖에서 먹는 손님을 찾기는 어려웠다.

이외에도 노릇하게 갓 구워낸 호떡이나 국화빵, 군밤, 땅콩, 잔치국수, 족발, 떡, 떡볶이와 김밥 등 다양한 먹거리들이 가는 곳마다 기자를 유혹했다. 이동식 리어카로 길에서 커피를 판매하는 ‘길 다방’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

▲ 언양시장에서도 명성높은 60년 전통의 ‘언양옛날곰탕’. 김지은 기자 fantastig@iusm.co.kr

그런데, 그 많던 먹거리들은 어디로 갔을까. 사실 언양시장 속 먹거리들이야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10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변해간 시장의 풍속도에서, 시장이 나날이 정비되면서 많은 길거리 음식들이 사라졌다는 느낌도 적지 않았다. 흔하디흔할 것 같은 호떡 포장마차도, 분식점도 한손에 꼽힐 정도였다.

아마도 기자가 놓친 많은 맛집들과 먹거리들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시장의 역사가 서린, 비밀스러운 맛집들. 그곳을 찾기 위해 다시 시장에 가게 되는 것이다.

▲ 매월 2일·7일이 들어가는 날짜에 열리는 언양 오일장날이면 시장이 구경꾼과 상인들로 북적인다. 활기와 사람사는 냄새로 가득하다. 김지은 기자 fantastig@iu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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