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5월 중구 우정혁신도시로 이주한 한국산업인력공단 박영범 이사장. 김정훈 기자 idacoya@iusm.co.kr 

한국산업인력공단은 지난해 5월 울산 중구 우정혁신도시로 이주했다. 박영범(58) 이사장은 지난해 8월 취임과 동시에 주소지를 울산으로 옮겼다. 지방 이전 공공기관 임직원들끼리 자조 섞인 농담으로 말하는 이른바 ‘강제이주자’ 중 하나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데다가 시간적·경제적인 부담도 커졌다. 대신, 서울에서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일상의 여유로움을 보너스로 받았다.

영남알프스·태화강 일상의 여유 선사
이주후 경제부담 줄고 자기계발도 가능
역설적이지만 공공기관 지방이전 통해
수도권-非수도권 차별해소 당위성 느껴
대기업 중심 울산 인력공단 추진 제도
잘 소화할 수 있는 적합업체 300여곳
정주율 제고, 특별분양 기회 확대해야
채용목표제 도입 지역서 최소7명 채용

◆ 청정도시 울산 홍보대사 자처  

그는 매일 아침 혁신도시 인근 관사에서 태화루까지 걸으며 1시간 정도 산책을 한다. 

지난 주말엔 태화강대공원 초화단지를 붉게 물들인 꽃양귀비의 장관에 감탄하며 그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박 이사장은 “모 중앙일간지 환경 담당 기자가 내게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은 곳 있으면 추천 좀 해달라’기에 울산을 추천했다”면서 “그 기자가 ‘울산에 공장 말고 구경할 게 있느냐’고 되묻기에 영남알프스와 태화강 경치가 끝내준다고, 청정도시 울산이라고 얘기해줬더니 오는 10월에 취재차 울산을 방문하겠다더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에서는 출·퇴근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데 울산으로 내려와 보니 출·퇴근 길에 쏟는 시간이 절약돼 운동이나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점이 좋다”고 부연했다. 

◆ 노사관계 전문가로 현대차 울산공장서 강연 

그는 1986년 미국 코넬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한 뒤 한국노동연구원에서 10년간 연구 활동을 했다. 또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회장과 한국노동경제학회 부회장을 역임한 이력도 있다. 

노동시장과 노사관계에 대해 쓴 저서나 논문도 100여편에 달한다.  

그래서인지 울산과의 인연도 남다르다. 실제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지난 2010년에는 강연차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을 방문했다. 

그 해 현대차는 ‘현대차 사내하청 근로자는 현대차의 정규직’이라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공장 안에 경찰병력까지 투입돼 노조와 대치하는 등 노사관계가 악화일로의 연속이었다. 

사내하청노조는 ‘정규직화’를 촉구하며 울산 1공장 문을 걸어 잠근 채 25일간 무단 점거파업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현대차 노조와 사내하청 노조의 관계도 틀어졌다. 현대차는 노조의 파업으로 3,000억원이 넘는 생산손실을 입었다.   

당시 박 이사장은 노사관계 발전 강연자로 나서 “노사관계는 현안에 매몰되기 보다는 멀리 보고 미래지향적으로 가야한다. 특히 사(社)가 노(勞)의 신뢰를 얻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보다 1년 앞선 2009년에는 노동계에서 잔뼈가 굵은 오길성 민주노총 전 수석부위원장이 고용노동부 교섭협력관으로 특별채용, 울산노동지청에 파견돼 화제를 모았다. 그런데 당시 채용 심사에서 그를 뽑은 사람이 바로 박 이사장 자신이었다고.  
 

▲ 한국산업인력공단 전경.

◆ 이주 후 수도권-非수도권 차별 철폐의 당위성 체험  

‘남-녀 차별’, ‘대기업-중소기업 차별’, ‘정규직-비정규직 차별’, ‘수도권-비수도권 차별’.

박 이사장이 우리 사회에서 청산해야 할 차별로 이 네 가지를 꼽았다. 이 중 막연하게 생각했던 수도권과 비수도권 차별 문제는 공단이 울산으로 이전하고 나서야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다양한 사업을 수행하는 우리 공단의 특성상 고객이 많은 수도권에서 행사가 자주 있어 임직원들의 출장이 잦고, 또 외부전문가가 울산까지 장거리 이동해야 하는 등 많은 불편함이 존재하더라”면서 “역설적이지만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이 수도권-비수도권 차별 해소의 당위성을 말해준 셈”이라고 전했다.    

울산은 현대차를 중심으로 정규직-비정규직 차별철폐를 둘러싼 홍역을 크게 앓고 있는데, 그는 정규직의 양보 없이는 노노 갈등구조가 형성돼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견해다. 

실제 박 이사장은 2013년 3월 한국행정연구원 조사포럼에 게재한 칼럼에서 “우리나라 노동시장 양극화의 문제는 비정규직이 이미 구조화돼 있고,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의 전환이 어려운데다, 고용마저 불안정하다는 점”이라며 “일부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고용보장과 처우의 결과물인 측면이 있기 때문에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을 해소하고 처우를 개선하는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 울산은 NCS와 일학습병행제 안착의 최적지 

한국산업인력공단은 ‘스펙’이나 ‘학벌’과 같은 간판이 아닌 능력 중심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일학습병행제’와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제도의 정착에 역량을 쏟고 있다.

일학습병행제는 일과 학업을 동시에 병행할 수 있도록 독일과 스위스식 도제교육 시스템을 국내 실정에 맞게 설계해 지난해부터 시행 중인 제도다. 현재 울산에서는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등 61개 기업이 일학습병행제에 참여하고 있다.  

NCS는 산업현장에서 요구되는 구체적인 지식이나 기술, 태도 등의 능력수준을 국가가 표준화한 데이터베이스, 즉 ‘인재지침서’인 셈이다. 

박 이사장은 대기업 중심의 제조업체가 많은 울산은 이 두 가지 제도를 다른 어느 도시보다 잘 소화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그는 “울산에서는 NCS를 대기업이 채용과 인사관리, 교육훈련 등에 활용하고 협력사에 전파해 확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일학습병행제에 참여하려면 독자적인 기술력과 건실한 재무구조를 갖추고 있어야 가능한데 울산에서는 300여개 기업이 적합업체로 파악되고 있다”고 전했다.

◆ 임직원 10명 중 6명 울산으로 주소지 옮겨 

한국산업인력공단 본사 임직원은 모두 376명(휴직자 제외)이다. 이 중 47.6%인 179명이 울산으로 주소를 옮겼다. 

울산시는 지방 이전 공공기관의 정주율을 셈할 때 미혼자 1인 가구는 제외하고 있는데 만약 미혼자까지 포함시키면 이 수치는 66%까지 올라간다는 게 박 이사장의 설명이다.

그는 이전 공공기관의 정주율이 낮다고 ‘타박’하는 울산의 여론이 못내 서운하다는 마음을 우회적으로 전하기도 했다. “직장이 울산으로 이전했지만 맞벌이 가정의 경우 배우자의 직장문제와 자녀 학교문제 때문에 온 가족이 함께 이사 오기가 현실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다”면서 “애정을 가지고 지켜봐달라”고 당부했다. 

◆ 정주율 높이려면 특별분양 추가 확대 절실  

박 이사장은 “가족과 함께 이주하지 못한 직원이 많은데 이들은 평일에는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외로움에다, ‘두 집 살림’에 드는 생활비며, 주말에 집으로 갈 때 쓰는 교통비 부담이 크다”면서 “정부에서는 이주지원비로 2년간 매달 20만원씩 지원해주지만 KTX로 서울-울산을 한번 오가는데 10만원 이상이 든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울산 정주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최근에 본부로 발령받은 직원들도 혁신도시와 가까운 지역의 아파트를 특별분양 받을 수 있도록 기회가 확대돼야 한다”고 부연했다. 

◆ 올해 지역인재 최소 7명 채용 계획

한국산업인력공단은 울산 지역인재를 우대 채용하기 위해 지난해 필기시험 가산점 5점을 부여했다. 올해부터는 채용목표제를 도입해 최소 7명을 이상을 지역인재로 채용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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