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이주자’ 자조 속 울산행 1년만에 청정도시·생태도시 알리미로 대변신
산업인력공단 박영범 이사장, 매일 아침 태화강변 1시간여 산책 뒤 출근
중앙일간지 환경전문기자 특집기사 장소 추천 요구에 흔쾌히 “울산 어때”
김대수·정성훈·공역식씨 동고동락 동료애 새록새록…일상의 여유는 덤
연어 회귀 태화강·문수체육공원 호반·십리대밭 등 멋진 자연경관에 감탄
“정주여건 갑질 해프닝, 본거지 떠난 박탈감 때문…너그러이 이해해주길”

애초 중구 우정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 임직원들이 생각한 울산의 이미지는 ‘노사분규도시’, ‘공해도시’, ‘부자도시’였다.
이들 공공기관이 혁신도시로 갈 대상자 명단을 확정할 즈음, 인사파트 책임자 책상위에는 자신이 서울에 ‘반드시’ 남아야하는 이유를 빽빽하게 써내려간 직원들의 고충민원서류 수 백 장이 쌓였다고 한다.
‘(자신 또는 배우자가)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거나, ‘애가 셋이다’, ‘부모님이 치매를 앓고 있다’, ‘울산 내려가면 시집가기 어렵다’ 등 눈물 없이 읽기 어려운 각양각색의 사연들로 넘쳐났다.
이들 중 어떤 이는 서울지사로 자리를 옮겨 잔류에 성공했지만, 또 어떤 이는 본부 소속으로 남아 울산행(行) 차를 타야 했다. 본거지를 두고 울산으로 떠나온 이들은 스스로를 ‘강제이주자’라 자조했다.
그 후 1년 즈음. 이들 이전공공기관 임직원은 어느덧 ‘울산맨’이 다 되어가고 있다.
울산시가 위촉한 공식 홍보대사는 아니지만, 서울에 있는 가족과 친지, 지인들을 만날 때면 어느새 울산 자랑이 늘어진다.
타지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노사분규도시, 공해도시, 부자도시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한 울산이 이들의 입을 타고 ‘청정도시’, ‘생태도시’, ‘살기 좋은 도시’로 재조명받고 있다. 구전효과를 톡톡히 보는 셈이다.

◆본거지 떠난 상실감, 일상의 여유로움으로 보상
한국산업인력공단 정성훈 홍보실장은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상실감을, 서울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상의 여유로움으로 보상받고 있다.
경기도 의왕시가 집인 그는 공단 본부가 있는 서울 마포구 공덕동까지 지하철을 타고 왕복 2시간 넘게 출·퇴근했다. 울산 옥동으로 이사한 뒤에는 혁신도시까지 차로 15분이면 출근할 수 있어 그만큼 여유로워졌다.
정 실장은 “여유시간에는 인근 문수실내수영장에 운동하러 가거나 문수체육공원 호수, 태화강 십리대밭으로 산책을 가는데 전국 어디에도 이런 멋진 호수공원과 대나무밭은 없을 것”이라고 감탄했다. 이어 “태화강으로 회귀한 연어가 산란하는 장면을 직접 봤는데 방송에서 보던 것과는 느낌이 정말 달랐다”면서 “울산시가 태화강 관리를 정말 잘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본부 소속으로 울산에 내려온 뒤 김대수 감사실장, 공역식 능력평가국장과 한 아파트에서 함께 생활하는데 전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애틋한 동료애를 느끼고 산다.
이 중 김대수 감사실장은 공단 본부가 울산혁신도시로 이전하기 전부터 총무국장을 맡아 이전업무를 총괄했었다.
김 실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본부 직원이 400명이 좀 넘었는데 ‘서울에 남게 해달라’는 취지의 고충민원서류 뭉치가 400장 넘게 쌓였었다”면서 “안타까운 사연이 많았지만 본인이 질병이 있거나 다자녀를 둔 직원 등 100여명을 선별해 서울지사로 발령을 냈다”고 전했다.
그 역시 “본거지를 떠난 만큼 불편함은 있지만 전엔 미처 몰랐던 울산의 매력에 젖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 돌봐주기 품앗이’로 동료와의 유대감 생겨
공단 본부 홍보실 박치덕 과장과 외국인력총괄팀 공진아 과장은 사내커플로 작년 4월, 여섯 살 딸아이를 데리고 울주군 범서읍의 한 아파트로 이사했다.
서울 토박이인 박 과장의 본가는 경기도 일산, 처가는 서울 둔촌동. 그는 “아내와 함께 울산으로 발령 받았을 때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한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컸지만 막상 울산으로 내려오니 가까이 산과 바다가 있고, 교통편도 좋아 서울에서는 못 느꼈던 여유로움을 많이 누리고 살 수 있어 좋다”면서 “이제는 한의원과 장사를 하는 친구들에게 ‘서울보다는 경쟁이 덜 치열한 울산으로 내려오라’고 할 정도로 울산에 정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 과장은 “간혹 피치못할 사정이 생겼을 때 아이를 맡길 본가나 처가가 근처에 없어 난감할 때가 있는데 같은 단지에 사는 동료들도 처지가 비슷하다보니 서로 아이봐주기 ‘품앗이’를 한다”면서 “그러는 과정에서 애틋한 동료애도 생기고 사람 사는 냄새도 나는 것 같아 좋다”고 전했다.

◆중앙지 환경전문기자에 ‘청정도시 울산’ 추천
공단 박영범 이사장은 매일 아침 혁신도시 인근 사택에서 태화루를 거쳐 태화강변까지 도보로 1시간 가량 산책한 뒤 출근한다.
주말에 가족이 있는 경기도 분당 집에 다니러 가지 않을 땐 느리게 두 시간씩 걸으며 태화강이나 정자항 등의 풍경을 사진에 담는다.
박 이사장은 “평소 친분이 있던 모 중앙일간지 환경전문기자가 ‘특집기사를 써야하는데 산 좋고 물 좋은데 있으면 추천해달라’기에 울산을 추천했더니 ‘거기 공해도시 아니냐’며 깜짝 놀라더라”면서 “그래서 내가 아는 ‘청정도시 울산’을 소개했고 오는 10월쯤 취재차 울산으로 오기로 했다”고 말했다.

◆‘갑질’ 논란에 상처…타향살이 애환 이해 부탁
혁신도시 이전공공기관 임직원들은 울산시와의 정주여건 협의 과정에서 불거진 ‘갑(甲) 질’ 논란에 적지 않은 상처를 받고 있다.
“자동차 할인판매를 알선해달라”, “KTX울산역에 공공기관별 전용주차공간을 확보해달라”, “울산공항의 울산발-김포행 오전 항공편을 증편해달라”
지역정서를 자극하는 이전기관들의 이런 요구들은 ‘생색내기 식’ 지역인재채용 비율, 혁신도시 대중교통을 외면한 자체 통근버스 운행에 대한 시민들의 억하감정과 맞물려 ‘갑질’ 논란의 한 복판에 서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국산업인력공단 한 관계자는 “수도권을 떠나 지방으로 온 자체가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라, 가족과 친지, 친구 등 삶의 본거지를 두고 멀리 떠나온데 대한 박탈감이 큰 것”이라면서 “‘두 집 살림’에 따른 비용과 울산과 수도권 집을 오가는 KTX열차 비용도 솔직히 부담”이라며 따뜻한 마음으로 봐줄 것을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