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1년 울산에 처음 철도가 개통된 지 10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많은 역이 생기고, 이전되고, 사라졌다.
현재 동해남부선 울산구간엔 여객으로는 남창역, 덕하역, 태화강역, 호계역이 운영되고 있다. 4개 역 역시 한국철도시설공단의 동해남부선 복선전철화 건설사업으로 인해 계속 변화를 겪고 있으며, 머지않아 폐·이전하는 역들도 생긴다.
기차는 언제나 설렘으로 가득하다. 철길 따라 먼 곳을 쳐다보며 기다리는 시간도, 저 멀리 경적을 울리며 들어오는 기차소리도, ‘덜커덩’하는 소리와 함께 출발하는 순간도, 창밖을 풍경도 모두 설렘이다.
이러한 기차를 맞이하고 배웅하는 기차역에는 낭만이 느껴진다. 기차를 타고 동해남부선 울산구간 4개 역을 만나봤다. 무심코 지나쳤던 기차역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남창역, 일제강점기 역사의 산 증인
역사 본체 ‘근대문화유산’ 지정
덕하역, 철길따라 핀 코스모스 장관
승강장 대합실은 시간이 멈춘 듯
태화강역, 하루 이용객 5천여명 이상
넓은 플랫폼 등 역내 활기 넘쳐
호계역, 호계장 서는 날 이용객 북적
송정역 개통으로 수년내 폐역 앞둬

◆역사(驛舍) 자체가 역사(歷史)인 ‘남창역’
기차에서 내리면 줄지어 서 있는 옹기들이 반갑게 맞이해주는 곳. ‘남창역’(울주군 온양읍 남창역길 40)은 정겹고 소박한 것이 매력이다.
이 소담한 건물에는 오랜 역사가 담겨 있어 방문하는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1935년 목조 철도역사로 건축된 남창역은 당시 건축양식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기 때문.
역사 건물 후면부 지붕을 두 개의 박공으로 만들어진 것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일제강점기 역사의 건축형식 등을 잘 보여준다. 그래서 역사 본체는 문화재청의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05호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하루 25번 기차가 이곳에 멈춘다. 승강장은 낮게 설치돼 있어 철길과 신호등, 교차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어딘가 낭만적이고 그리운, 시골역 풍경이 그대로 느껴진다.

복선전철화 사업으로 인해 한창 공사 중인데도 역은 말 없이 묵묵하기만 하다. 사진을 찍고 있는 기자에게 역무원이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기차 출발·도착 시간에 맞춰 통행을 제한함으로써 적은 인력으로 역을 관리하는 것이다.
맞이방도 소박하다. 나무로 된 의자 몇 개가 덩그러니 놓여있고, 몇몇 어르신들이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눈에 보인다.
남창역에서 조금만 걸어 나오면 3·8일 마다 열리는 남창 옹기종기시장이 있다. 1916년 개설된 10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시장이다.
방문한 날은 장날이 아니라 고요했다. 역에서 도보 3분 정도면 온양우체국 앞 버스정류장에서 간절곶, 옹기마을 등으로 가기 수월하다.

◆조용히 세월 품은 ‘덕하역’
도심에서 겨우 벗어난 느낌이 든달까. 철길 따라 피어난 코스모스가 가을바람에 넘실거리는 ‘덕하역’(울주군 청량면 덕하로 269-5)에 도착했다.
지붕이 예쁘게 느껴지는 역 건물이다. 보수 정비를 거쳤지만 연륜은 그대로 느껴진다. 절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게 한다. 건물은 일제강점기 당시 철도역 기본형으로, 당시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형태다.
한때는 번창했지만 지금은 덕하 시장을 오가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정도의, 쓸쓸한 역이 됐다. 지금은 새마을호는 정차하지 않고 지나쳐 버린다. 역 앞 구멍가게 하나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덕하역의 매력을 꼽자면 승강장에 설치되어 있는 대합실이다. 하늘색 페인트가 칠해진 벤치들이 길게 설치돼 있다.

◆친숙하고 익숙한 ‘태화강역’지금의 역사를 신축하기 전 간이 역사였던 건물이다.
대합실에 잠시 앉아있으니 이곳만 시간이 느릿하게 가는 것 같았다. 역 내로 들어오려면 넝쿨터널을 지나야 하는데, 철도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꽤 호평을 받고 있다고.
기차표 자동발권기가 여기저기 설치되고 있지만, 이곳에서는 여전히 역무원에게 직접 표를 사야한다. 코레일앱으로 미리 예매하는 방법도 있지만, 가끔은 사람이 그립다.
역 한켠에 옛 우물을 보존하고 있다는 점도 독특하다. 덕하역의 역사를 그대로 지켜본 증인이기도 하다. 역 전체가 세월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시민들에게 가장 익숙한 역은 ‘태화강역’(남구 산업로 654번지)이 아닐까. 태화강역은 1992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다. 2010년 ‘KTX 울산역’이 신설되면서 울산역의 이름을 넘겨주게 됐지만, 아직 이곳을 울산역이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많다.

삼산동 시가지에 근접해 있고, 경주나 부산, 대구 등으로 이동하기 용이해 하루 5,000여명 이상의 승객들로 붐빈다.
시내에 위치해 있는 태화강역은 4개 역사 중 가장 규모가 크고, 넓다. 이날도 역시 승객들이 많은 만큼 역 내에는 활기가 가득 넘쳤다.
울산의 기차역을 다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역 내 편의점이 있는 곳은 4개 역 중 태화강역 하나뿐이다. 김밥, 커피 등을 사먹을 수 있는 분식점도 입점해 있고, 고객대기실에는 음료와 빵을 사 먹을 수 있는 프렌차이즈점도 최근 생겨서 대기 시간을 한층 더 풍요롭게 보낼 수 있게 됐다.
기차 승강장에서는 역 반대편 모습과 함께 세양청구 등의 아파트 단지들이 보인다. 넓은 플랫폼이지만 황량하고 쓸쓸해 보이는 느낌이다.
역 앞에는 8만9,081㎡ 규모의 넓은광장이 있다. 특히 지상 4층 규모의 168대를 주차할 수 있는 무인 자전거주차장도 자랑이다.

◆반가운 고향같은 ‘호계역’
태화강역에서 ‘호계역’(북구 호계6길 30)으로 향해본다. 도로가 아닌, 기찻길 따라 감상하는 울산 풍경은 낯설고 신선하다.
벼가 익으며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들판과 태화강과 호계역 사이에서 있는 효문역도 감상 포인트. 효문역은 건물은 남아 있지만 운영되지 않는 폐역이다.
하루 평균 1,000여명의 승객이 오가고, 40여회 기차가 설 정도로 호계역은 여전히 굳건하다. 고향에 오는 기분이 드는 그리운 느낌이랄까. 역 건물 뒤편에 서 있는 거목도 반갑다. 맞이방에는 의자와 최신 TV, 책들이 구비되어 있어 기다리기에도 심심하지 않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던가. 역 앞에 호계장이 열려 사람으로 북적거린다. 덩달아 역 주위도 활기를 띈다. 대중교통이 발달됐지만, 호계장에 들리기 위해 여전히 많은 시민들이 호계역을 애용하고 있었다.
호계역은 몇 년 후 울산공항 인근 송정역(가칭)이 개통하면서 폐역이 된다. 역 주변과 시장 일대에 많았던 다방도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지만 역 입구 도로변에는 귀향다방, 백련다방 등 몇몇이 남아있어 어르신들의 마음을 달래준다. 승객들이 기차를 기다리며 찾았던 다방이다.
여행의 목적은 여러 가지지만, ‘휴식’은 공통된 바람일 것이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조급해 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꼭 맛집에 가야만, 광활한 풍경을 봐야만 여행일까. 그런 압박감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기차역 여행이 답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