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시가 시립미술관 부지를 재검토하는 결정적 이유는 지난 7월 문화재청의 “미술관 부지를 객사 유구가 확인되지 않은 현 조사구역 서쪽(북정공원)으로 이전해 유구를 보존하라”는 심의결과 때문이다.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의 정밀발굴조사 결과 객사 터가 원형에 가깝게 발견되었고, 객사의 주축 건물들이 모두 확인됐다.
특히 학성관과 중문, 남문루 일대의 유구들이 잘 보존돼 있고, 사진 등 명확한 자료가 남아있다는 점도 보존 이유가 됐다.
◆‘울산객사’ 역사경관 가치 높아
객사는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가 모셔져 지방수령이 매달 관속을 거느리고 북쪽을 향해 망궐례 의식을 치렀던 곳이다. 또 외국 사신이 머무르는 곳으로 쓰였다.
하지만 전국에 산재했던 객사는 일제강점기 때 대부분 강제 철거된다. 일제는 조선왕조와 도시의 상징이었던 객사를 철거해 지방 식민 통치를 강화하려 했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객사는 초등학교나 관공서로 활용된 뒤 사라졌다. 울산객사도 이때 철거된 뒤 울산초등학교가 들어서면서 유구만 땅에 묻혔다.

김기조 경주문화원장은 “조선시대 읍치의 중심지가 객사다. 행정 관청 격인 동헌이 중심지라 볼 수도 있지만, 왕권사회에서 왕권의 힘을 상징하는 객사의 비중이 더 크다고 해야 할 것이다”고 강조한다.
‘울산객사’의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 전문가들은 동헌 등 인근 문화유산과 연계해 본다면 울산객사는 지방도시의 문화유산과 역사문화경관을 되살릴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삼건 울산대학교(건축학부) 교수는 “울산객사는 울산을 상징하는 도시건축유산이다. 울산 근대유산인 ‘울산역’이 1992년 철거되고, 울산시청이었던 ‘울산읍사무소’가 1995년 철거돼 흔적조차 남지 않아 안타깝다. 미술관부지는 동헌과 더불어 울산 역사지구의 핵심 장소다”고 말했다.
울산 사림 박민효가 쓴 ‘학성관중수기’에는 ‘(울산객사가)경상좌도에서 으뜸가는 객관’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조선의 문화유산 중 우수한 것을 실었던 책 ‘조선고적도보’에는 울산부 객사(학성관)는 ‘정면 15칸 정도로 규모가 큰 편이며 위용을 자랑한다’고 적혀 있다.
특히 이 문헌에는 전국 210여개의 객사 중, 건축가치가 높은 단 13개의 객사만이 실렸는데 영남에선 울산객사를 비롯해 진주, 경주객사 등 3개가 실렸다.

◆진주·경주 객사는 묻히고 자리 옮겨져
전국의 객사는 오늘날 어떤 모습일까. 우선 ‘조선고적도보’에 울산객사와 더불어 영남의 객사로 소개된 진주객사와 경주객사는 모두 옛 부지에 복원되지 못했다.
진주객사는 일제 강점기 진주법원이 들어서면서 철거됐다. 이후 진주문화방송이 들어섰다가 지난 2006년에는 아파트부지에 편입됐다. 아파트 건설 과정에 적심석 등 진주객사 유구가 발굴되면서 보존 논란이 일었다.
당시 문화재청은 “사업부지내 공원부지 등에 이전 복원해 교육 자료로 활용하라”고 결론을 냈다. 시민들과 언론이 나서 복원을 주장했지만 진주시는 70억 원대에 달하는 비용 때문에 매입을 포기했다. 결국 진주객사 유구는 아파트 마당에 계속 묻히고 말았다.
최근 KTX신진주역 건물을 옛 진주 객사 형태로 재현했지만 지역향토사학계에서는 진정한 복원이 아니라며 아쉬워하고 있다.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3호로 지정돼있는 경주객사는 훼손돼 일부만 남아 있던 것을 현재의 경주문화원 인근으로 이전·수리후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목재와 단청의 부식이 매우 심해 ‘복원’의 목소리가 향토사학계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현실이다.
반면 제주도는 10년여 걸쳐 ‘제주목관아’를 복원해 지역의 ‘보물 1호’ 로 만들었다. 지자체가 지역경제 활성화 명목으로 공설주차장 건립을 추진하자 시민단체, 언론에서 제주 역사공원 건립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논란 끝에 대대적인 발굴조사가 진행해 건물 8동을 복원시켰다.
전주시는 조선시대 전라도와 제주도까지 총괄했던 ‘전라감영’ 복원을 위해 오랜 논란 끝에 옛 전북도청사를 허물었으며, 한옥마을과 연계한 지역경제 활성화와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나주시도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객사 터를 복원해 역사문화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