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파트와 학교가 들어선 울산 달천철장 모습. 건물이 들어서지 않은 부지는 역사공원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울산은 초기철기시대부터 근대까지 우리나라 철산업의 요람이었다. 한반도 철 생산 문화의 거점으로서 고대국가 형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철을 바탕으로 국권을 회복하는데 일조했으며, 일제강점기 때 전략적으로 수탈되는 아픔을 겪었다. 또 근현대에는 한국 경제성장의 틀을 마련하는데 이바지 했다. 그 중심에는 달천철장이 있었다. 

 2006년 첫 발굴조사 초기철기∼근대
 채광 유구·철광석 등 관련 유물 출토
 대규모 철기제작 역사성 그대로 증명
 야요이 토기 출토…日과 교역도 확인
‘BC 2세기’ 영남제철역사 700년 앞당겨
 일본 히로시마대학 야철연구회 회장
 2001년 1월 울산시에 보존 탄원서
 학계 요구 불구 비소오염 확인돼 무산
 아파트·학교 들어선 이후 자취 감춰
 이젠 ‘시 기념물 40호’ 안내판만 남아
 북구, 3억투자 탐방로·콘텐츠 개발 등
 달천철장 보존·관광자원화 추진

 

▲ 울산 달천유적 삼한시대 채광갱.

◆달천유적 ‘한반도 철 중심’ 확인

울산 천곡동 513번지 일원에 위치한 달천철장은 1993년 공식적으로 문을 닫았다. 이후 아파트와 학교의 건립으로 이제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울산시 기념물 제 40호로 지정돼 안내판 하나가 세워져 있을 뿐이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실시된 달천유적 발굴조사는 대규모 채광 유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첫 발굴조사였다. 

발굴조사를 통해 초기 철기~원삼국시대 채광 유구, 조선시대 채광 유구, 근대선로 등 크게 세 시기에 걸친 채광 관련 유구와 철광석 등의 관련유물이 출토됐다.

이에 따라 달천 철장이 기원전 1세기 중엽 이전~기원후 3세기까지 채광을 했고, 울산 중산동 이화유적 등에서 이를 제련해 소재를 생산했으며, 이 소재를 사용해 중산동 798-2번지 유적과 경주 황성동 제철 유적에서 대규모로 철기를 제작했다는 사실 등 달천철장의 역사성은 그대로 확인됐다.

달천철장이 중요한 이유는 달천철장 내에서만 확인되는 비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소가 함유된 달천철장은 주변지역에서 확인된 철기의 성분분석 결과와 일치해 이곳에서 생산된 철을 활용해 철기를 생산했음을 보여주는 단서가 됐다. 또 유적 조사에서는 일본 야요이시대의 토기도 함께 출토돼 당시 주변국에 있어서 달천철장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달천유적 발굴당시, 손명조 국립중앙박물관 전시팀 선임연구관은 “야요이 토기는 일본과의 교역을 말해주는 매우 중요한 자료”라며 “북부 규슈의 야요이 토기 중기 후반에 해당하며 당시 철을 얻으러 온 일본인들이 갖고 온 토기”라고 확신했다.

또 달천유적 발굴당시, 지도위원이었던 신경철 부산대 고고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도 중국에서 철이 보편화되는 시기인 기원전 2세기 대에 철이 자체적으로 생산돼 사용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외에도 전문가들은 유구에서 기원전 2세기 대의 삼각형점토대토기편들이 나온 것에 비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철 채광장으로 영남 제철역사를 700년이나 앞당긴 것으로 평가했다. 삼각형점토대토기는 한사군의 낙랑토기보다 시대가 앞서는 것으로 고고학계에서는 분석하고 있다.

 

▲ 2200년 전 철을 생산하기 위해 광석을 긁어낸 흔적.

◆일본 야철회, 市에 보존요구 탄원서

달천철장의 중요성은 2001년 1월15일 일본 히로시마대학 고고학연구실내 야철(다다라)연구회 시오미 히로시회장(히로시마대학 명예회장)이 보존을 위한 탄원서를 울산시에 보내옴으로써 이미 입증됐다. 

탄원서에는 “달천철광산은 한국뿐 아니라 중국, 일본을 포함한 고대 동아시아의 고대국가 형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철 생산지로, 당시 철 생산과 유통 고찰에 매우 소중한 유적이니 보존해 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렇듯 달천철장과 관련해, 그동안 학계의 보존요구가 높았지만 지난 2003년 3월 비소오염사실을 확인하면서 보존요구는 수그러들었다.

울산 지역 환경단체는 울산시 북구 천곡동 달천 아이파크 아파트 예정지역 37만2,000㎡에 대한 토양오염실태를 조사해 비소오염사실을 확인하고 이에 시는 같은해 4월 토양오염방지조치 명령을 내린다.
시는 2005년 3월 유적 인근에 현대아이파크 건설을 승인하고 2006년 6월 발굴조사를 거친 뒤 북구문화원 등 지역 향토사학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아파트와 학교가 들어서 달천철장은 자취를 감췄다.
 
이후 달천철장 역사공원 추진이 여러 번 시도됐으나 부족한 콘텐츠와 과도한 예산책정 등을 이유로 타당성을 심의하는 투·융자심사에서 탈락을 거듭했다. 문화재보호 구역으로 다양한 시설 유치의 제약이 있고, 인체 유해 물질로 규정돼 아파트 사업 시행 때부터 논란이 됐던 비소가 집중 매립된 지역이라는 점도 사업추진의 걸림돌이 됐다. 

올해 북구는 달천철장 관광자원화를 위해 총사업비 3억 원을 들여 순환탐방로 조성, 문화관광 콘텐츠 개발, 쇠부리축제의 발전방안 모색, 불매가 무형문화재 등록 등  다양한 달천철장 보존 사업을 추진할 계획으로 있다.    
 

▲ 울산 달천유적 삼한시대 채광장.

황창한 울산문화재연구원 실장
“한국 고대사∼근현대사까지
  철문화 거점 확인 귀중한 자료
  부활 계기 조속히 만들어지길”

2008년 달천유적 발굴조사에 참여했던 황창한 울산문화재연구원 실장(사진)은 “달천 유적은 청동기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복합유적으로 삼한시대 제철과 관련된 귀중한 자료로서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밝혔다.

황 실장은 “조선시대 채광과 관련된 기록은 비교적 많이 남아 있지만, 채광이 어떤 형태로 이뤄져 있는지에 대한 기록은 전무한 실정”이라며 “유적발굴에서 조사된 자료를 통해 조선시대 채광 기술의 일면도 파악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울산 달천철장은 한국고대사로부터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철문화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며, 역사적 가치를 되돌아 볼 때 한반도 철문화의 거점으로서 면모를 갖춘 역사의 현장으로 부활할 수 있는 계기가 조속한 시일 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철광석의 채취와 관련된 삼한시대 채광유구를 통해 제련의 시점 등 다양한 논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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