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0∼70년대 권병탁씨 첫 연구시작
울산·경주·청도 제철유적 82곳 발견
쇠부리·큰대장간 등 제철공정 개념화
운문댐 일대 무쇠솥 주조 작업 보고
달천광산 등 울산·경주 유적 8곳 확인
초기철기~조선시대 다수 유적 발굴
‘석축형제철로’ 일본 학계 비상한 관심
가고시마현 유사한 석축 제철로 분포
양지역 관련성 주목… 후속연구 필요
◆60~70년대 울산제철문화 연구 시작
달천광산을 중심으로 한 울산지역의 제철문화는 초기철기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제철문화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국제정세에도 큰 영향을 끼칠 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
울산지역 제철문화 조사연구의 효시는 1960~70년대 권병탁씨였다. 당시 영남대 농경제학과 교수였던 그는 경제사연구를 위한 민속·지표조사의 형태로 울산, 경주, 청도에 이르는 산골짜기에서 약 82개소의 제철유적을 발견하고 당시 조업에 참여했거나 조업을 지켜 본 주민들의 구술 자료를 수집했다.
그는 ‘쇠부리, 큰대장간(강엿쇠둑·판장쇠둑), 대장간, 무질부리’의 제철공정을 개념화시키고 원료와 연료, 조업 인력 및 과정, 생산품, 유통, 비용과 이윤 등에 관한 방대한 조사와 연구를 수행했다.
신종환 현 대가야박물관장은 2000년 초 오갑사(五岬寺) 중 하나인 가슬갑사(嘉瑟岬寺)와 철 생산과의 관계를 구명하기 위해 청도 신원리 등 운문댐 상류지역에 대해 정밀지표조사를 실시하고, 4개소의 제철유적에 대한 조사내용과 함께 운문면 일대에 널리 알려진 무쇠솥 주조 작업에 대한 증언내용을 보고했다.
지난 1985년에는 당시 문화재관리국에 의해 전국적 규모의 제철유적 지표조사가 실시됐는데, 부산·경북·경남지역에서는 달천광산을 포함한 울산·경주지역 제철유적 8개소가 확인 및 보고됐다.
이 외에 1997년부터 2004년까지 국립경주박물관, 경북문화재연구원, 울산문화재연구원, 울산발전연구원, 울산대학교박물관에 의해 울산광역시 등의 유적분포지도 작성과 문화재조사전문기관에 의한 지표조사에서도 다수의 제철유적이 확인 및 보고됐으며, 울산쇠부리보존회 등의 민간단체나 개인연구자에 의해서도 몇 기의 제철유적이 발견됐다.

◆90년대 말 제철유적 본격 발굴조사
1990년대 말부터는 제철유적에 대한 발굴조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울산 대곡댐 수몰 지구에서는 6개소의 조선후기 제철유적이 조사됐고, 이후 각종 건설 사업에 앞서 초기철기~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수의 제철유적이 발굴조사 됐다.
이와 같이 제철유적 조사가 진전되면서 관련연구도 증가하게 됐는데, 김도헌 동양대학교 문화재발굴보존학과 교수는 울산의 고대제철기술을 4단계로 구분하고 각 단계의 특징과 변천과정에 대해 검토한 바 있다.
특히 양산·밀양지역의 철장(鐵場)이 개발될 때 울산의 야장(冶匠)들이 일정부분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제시한 점 등은 학계의 눈길을 끌었다. 울산 대곡댐 수몰지구의 조선후기 제철유적에 대해서는 구조 및 조업방식의 고고학적 검토가 일찍부터 이뤄졌다.
울산의 제철문화를 크게 삼한~통일신라시대와 고려~조선시대로 구분해 관련유적을 소개하고, 아직 울산에서 고려시대 제철유적이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당시 처음으로 철전(鐵錢)이 사용되고 금속활자가 개발되며 사찰의 철공예가 뛰어난 수준인 점 등으로 보아 울산지역에도 고려시대 제철유적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음이 신라문화유산연구원 김권일 연구원에 의해 제기된 바 있다.
이후 이들을 포함해 울산·경주·청도 지역의 석축을 가진 제철로는 석축형제철로(石築型製鐵爐)로 형식, 설정되고, 이러한 제철문화는 울산 전읍 태생의 구충당 이의립 및 그 후손들과 관련된 조선후기 울산지역의 특징적인 제철문화로 파악됐다.
이외에도 손명조 전 국립공주박물관장은 원삼국시대 울산지역에 하대유적과 중산동유적의 양대 세력권이 있었는데, 하대유적에서 한대(漢代) 유물이 출토되는 것은 철 생산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고, 달천광산을 포함한 중산동유적의 경우 경주지역의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봤다.
또한 고대로부터 철광석 형태로 사용되던 달천광산의 철이 17세기대 이의립이 재개발하면서 토철의 형태로 원료가 변화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했다.
◆일본, 울산 제철유물 금속 분석 활발
일본의 최근 연구동향도 관심을 모은다.
일본은 고대제철 및 ‘타타라제철법(たたら製鐵法)’과 관련해 우리나라의 제철문화에 일찍부터 관심을 가져 왔다.
대체로 철기유물의 형식학적 분석을 통한 기술계보 추적이 주요 연구대상이었으나 경주 황성동 제철유적 조사 이후 제철유적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가 진행되고 있으며, 울산과 경주 등지의 제철관련유물에 대한 금속분석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특히 석축형제철로는 ‘석축형제철로’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소개 및 검토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으며, 가고시마현에는 이와 유사한 석축을 가진 제철로가 분포하고 있음이 밝혀져 양 지역 간의 관련성이 주목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 중요성만 강조되고 있는 상태여서 앞으로 이에 대한 후속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 학계관계자의 의견이다.
(도움말·자료 제공=신라문화유산연구원 김권일 선임연구원)

■울산 제철문화 첫 조사연구 권병탁씨
‘쇠부리 가마’ 등 용어 발굴
제철기술사·쇠부리문화 연구
팔공산 아래 전통산업박물관 운영
“신라, 달천철장 무기로 삼국통일”
전 영남대학교 명예교수인 권병탁 씨(88·사진)는 울산지역 제철문화를 처음으로 조사, 연구한 국내 쇠부리연구의 가장 권위자이다.
1960~70년대 당시 농경제학과 교수였던 그는 당시 울산 인근 산간을 속속들이 찾아다녀 달천의 제철역사는 한반도 제철의 선구였고, 기원전 2~4세기로 돼 있는 한반도 제철사를 수세기 더 끌어 올릴 수 있는 결정적 증거라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또 ‘쇠(둑)부리 가마’ 등 전통사회에서 사용하던 쇠부리용어를 발굴해 내고 이를 사용하던 사람들의 생생한 구술을 채록해 제철기술사 연구와 울산 쇠부리문화 전승에 큰 기여를 했다.
현재 그는 대구 팔공산 아래 전통산업박물관(전, 송광매 기념관)을 운영하고 있다. 박물관 2층을 장식하고 있는 철 관련 전시품은 달천철장에서 나온 철광석도 있고, 이곳에서 나온 철광석으로 만든 무쇠 솥도 있다.
지난 6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그는 “60년대 말 당시 대구∼울산간 교통상황이 좋지 않은데다 쇠부리터는 대부분 깊은 산골에 있어 한두 끼 식사를 거르는 등 연구조사가 정말 힘들었다”면서 “신라는 달천철장에서 생산한 무기를 바탕으로 결국 삼국통일을 했다. 그러므로 울산 달천철장은 우리 민족의 역사를 바꾼 중요한 유적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지금의 포항제철을 있게 한 것은 달천철장 등 울산의 철 관련 환경이 큰 역할을 했다. 울산지역의 철 관련 연구가 꾸준히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