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흠 변호사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국민의 손으로 국민을 위해 일할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치지형도를 살펴보면 국민이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일천하기 때문에 정치무관심이 뿌리내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정치무관심은 부메랑이 돼 우리들에게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 

성경의 우화가 이를 암시해주고 있다. 나무들이 자신의 왕을 찾으러 수풀로 가는 장면이 등장한다. 감람나무에게 왕이 돼달라고 하니 자신의 기름은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데 이를 버리고 왕이 될 수 없다고 거절한다. 이윽고 무화과나무에 찾아가니 자신의 단맛과 아름다운 열매를 떠날 수 없다고 말한다. 포도나무에게 가니 사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를 만들어야 한다며 거부한다. 마지막으로 나무들이 찾아간 가시나무가 이를 수락했는데 그는 나무들을 찌르고 불사르는 일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우화는 적합한 대표를 선출하지 않을 때 국민들이 입게 되는 피해를 시사하고 있다. 국민에게는 누가 대표자로 적임자인지 정확하게 판단하고 선택해야할 의무가 있으므로 정치무관심을 지양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해준다. 

그런데 정치무관심을 무조건 국민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우리 정치현실에 이미 가시덩쿨이 깊이 뿌리박고 있는 점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지난 수개월 동안 선거구획정을 두고 국회의 여야가 다툰 현상은 우리를 깊은 절망감으로 몰고갔다. 도시화가 빚어낸 인구불균형으로 인해 지역별 인구편차가 커지게 되면서 선거구 획정의 문제는 투표가치 평등의 문제로 귀결됐다. 참고로 2001년 헌법재판소는 ‘상하 50%의 인구편차 또는 최대인구수와 최소인구수의 비율 3대1’로 허용한계로 제시하고 있지만 도시화가 가속화 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그 기준은 정확한 ‘자’가 될 수 없다. 

하지만 국회의 선거구획정의 논의는 이를 타개하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다 정치적 실익의 계산을 사이에 둔 다툼에 불과한 일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이들은 없을 것이다. 

이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논의는 의미가 있어 보인다. (선거구획정의 기본문제-국회의원 선거구획정의 문제점에 관한 비교법적 검토- 정만희) 첫째, 독일과 같이 인구편차의 수체적 허용범위를 법률에 명문화하자. 둘째, 선거구획정 논의에 지역민들의 의견을 수렴할 지역공청회를 만들자. 셋째, 선거구획정의 문제를 매 선거철마다 다루지 말고 매 10년을 주기로 논의하도록 설정하자. 무엇보다 선거구 획정의 문제를 국회에 맡겨두는 것은 중립성의 문제에 있어서도 의문을 지을 수 없다.

선거구획정의 문제로 식물국회로 국회의 업무가 마비되고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것은 시험을 앞둔 수험생이 시험준비는 하지 않은채 원서접수에만 골몰하는 것과 진배없다. 이같은 제도적 문제점을 개선하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에게 정치무관심을 탓하는 것은  앞뒤가 뒤바뀐 모순이 아닐 수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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