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천광산의 토층 및 노천채집철광석과 토철. 제공=울산문화재연구원

달천 ‘채광’→중산동 이화 ‘제련’→중산동 798-2번지 ‘철기 생산’

달천광산서 철광석·토철 등 채광
출토된 야요이·낙랑계토기 日 교역 증거
3세기 이전부터 국제적 교류 개연성 확인

3~4세기 중산동 일대 대규모 제련
제철기술, 국가형성기 정치집단 역량 키워

울산·경주지역 달천광산에서 철 수급 
근거리 중심 특정지역 유통망 갖춰

지금까지 알려진 울산지역의 제철문화는 울산이 교역을 통한 동아시아 국제질서에 일찍부터 편입되고, 삼한 소국의 하나인 사로국이 고대국가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정치·경제·군사적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증명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울산을 포함해 지금까지 경주, 청도 등의 주변지역에서 시·발굴조사가 이뤄지거나 정밀지표조사된 제철유적은 모두 40곳 정도다.

이 외 조선후기 달천광산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42개소 유적이 추가로 알려져 있다. 이 중에는 현재 남아 있지 않은 유적도 있고 1960~70년대 권병탁 전 영남대 교수에 의해 알려진 82개소 유적과 중복되는 경우도 있지만 적어도 100개소 이상의 유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향후 권 교수의 자료를 토대로 정확한 제철유적의 현황을 파악하는 것이 하나의 과제이다. 울산지역 제철유적을 초기철기~원삼국, 삼국~ 통일신라시대, 고려~조선시대, 근·현대의 네시기로 구분해 그 의미를 살펴본다. 

▲ 중산동 798-2번지 유적추정 용해로와 출토된 주조괭이 용범(鎔范, 거푸집).

◆초기철기~원삼국시대

초기철기~원삼국시대는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4세기 전반까지의 기간으로, 울산 달천유적, 중산동 이화유적, 중산동 798-2번지유적, 경주 황성동 제철유적, 용강동 청동기시대 취락유적 등을 들 수 있다. 

달천광산에서는 노천채광이나 채광갱을 파고들어가 철광석 혹은 토철을 채광했는데 출토된 야요이토기와 낙랑계토기를 통해 일본 큐슈지역 및 낙랑·대방과의 교역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삼국지」, 「후한서」 철산지를 울산 달천광산으로 파악한 견해(문경현 1992, 권병탁 2004)가 증명됐으며, 채광유구의 상한이 기원전 2세기로 편년되는 점은 3세기 이전부터 달천광산의 철이 국제적으로 교류됐을 개연성을 보여준다.    

한편 중산동 798-2번지유적에서는 용해로로 추정되는 유구가 최소 3기 이상 조사됐는데, 비소가 검출돼 달천광산 출처의 소재가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 

경주 황성동 제철유적에서는 2세기 말을 기점으로, 이전에는 달천광산의 특정원소인 비소(As)가 검출되지 않다가 이후에는 대부분의 제철관련유물에서 비소가 검출됐다.

이 두 곳의 유적은 원삼국시대 달천광산 출처의 소재를 사용해 철기를 제작했다는 공통점을 지니는데, 이를 통해 달천광산은 중산동고분군집단에서 관리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화유적은 시굴조사만 이뤄졌으나 제련로로 추정되는 유구가 확인됐고, 서쪽에는 중산동 798-2번지유적이 인접하고 있다.

이러한 고고학적 자료와 함께 동천이 가까이 입지하고 있어 제철조업에 필요한 물을 확보하기에 용이하고, 동대산의 풍부한 산림지대에서 연료를 쉽게 공급받을 수 있다는 점 등으로 봐 3~4세기대 중산동 일대에서 대규모 제련이 행해졌던 것으로 학자들은 판단하고 있다, 

즉 원삼국시대 달천광산 철 및 철기의 생산과 유통체계는 ‘달천광산 : 채광→중산동 이화유적 : 제련→중산동 798-2번지유적·황성동 제철유적 : 단조·주조철기 생산’으로 정리할 수 있으며, 울산이 제철기술을 통해 국가형성기의 정치집단들 속에서 주체적인 역량을 키워왔음을 보여준다.
 

▲ 천상리 평천유적 단야공방지와 추정 목탄요.

◆삼국~통일신라시대

삼국~통일신라시대 제철유적으로는 울산 천상리 평천유적과 입암리유적, 매곡동유적, 경주 덕천리유적, 경주 성동동 386-6번지유적 등이 있다. 

천상리 평천유적과 덕천리유적은 비소(As)의 검출을 통해 달천광산의 원료를 사용한 소재를 이용했음이 확인됐다.

입암리유적은 금속분석 결과에서 비소의 검출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티타늄(Ti)이 검출되지 않아 철광석을 원료로 한 소재를 사용했음이 확인됐다.

이러한 제철유적 양상으로 보아 달천광산의 철은 초기철기~원삼국시대에 이어 삼국~통일신라시대에도 여전히 채광돼 경주 등 주변지역에 공급됐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는 밀양 사촌 제철유적·임천리 제철유적, 양산 물금유적 등 경주·울산과 상당히 떨어진 지역에서 철광산의 개발이 활발했던 때이다.

사로국단계 달천광산을 중심으로 했던 제철문화가 신라 때에는 늘어나는 철기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양산, 밀양 등 주변지역으로 철광산 개발이 확대되는 시스템으로 변화하는데, 이처럼 밀양, 양산지역의 철광산이 활발히 개발됨에도 불구하고 울산, 경주지역이 여전히 달천광산의 철을 수급 받는 것은 신라 철 및 철기의 유통시스템에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울산, 밀양, 양산의 철을 중앙에서 모두 독점해 이를 전국에 재분배하는 유통시스템이 아니라, 가까운 지역을 중심으로 한 특정지역끼리의 유통망을 갖춘 것이다.

지금까지 달천광산의 조사에서 삼국~통일신라시대에 해당되는 유구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발굴조사 범위가 광산의 극히 일부인 점을 고려한다면 조사되지 않은 삼국~통일신라시대 채광유구가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앞으로 추가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고 철기 및 제철관련유물에 대한 금속분석이 더해진다면 삼국~통일신라시대의 철 및 철기의 생산과 유통 양상이 구체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관련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도움말·자료 제공=신라문화유산연구원·김권일 선임연구원)

■문경현 경북대학교 명예교수

“삼국통일 원동력은 달천 제철기술… 신라 무기 원천”
 

▲ 문경현교수는 “울산 달천광산은 신라의 삼국통일 뿐 아니라 동아시아 국제정세에도 큰 영향을 끼칠 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고 주장한다. 사진제공=매일신문

달천광산 철, 일본·동북아까지 공급
황남대총·금관총서 발견된 쇳덩이
비소함량 분석 결과 달천 철 입증

“울산 달천광산은 동아시아 국제정세에도 큰 영향을 끼칠 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무기와 농기구를 만드는 원천이었을 뿐 아니라 일본, 동북아로도 달천의 철을 많이 공급했다”.

문경현 경북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82)는 달천광산 철의 우수성과 가치에 대해 이같이 역설했다.
쇠를 만드는 곳을 ‘달’이라고 하고 철을 다루는 장인을 ‘달장’이라고 하는데 울산의 달천 광산은 지명만 봐도 그 중요성을 충분히 알 수 있다고. 

신라사 연구를 24개 항목에 걸쳐 깊이 있게 연구해 국내에서 ‘신라사’ 최고 권위자로 알려진 문 교수는 1960년대 달천광산 조사결과를 ‘달천의 철과 신라의 강성’이라는 논문에 담아 일본전역에 달천의 철과 일본철의 관계를 알린 장본인이다. 

문 교수는 경주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무덤 속 1,300여개 쇳덩이와 금관총에서 발견된 비슷한 쇳덩이 700여개를 예로 든다. 비슷한 시기 한반도의 다른 지역 발굴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을 강조하면서 이 철들이 달천에서 가져왔음을 고증하고 있다.

이 철들이 달천의 쇠라라고 단정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철 속에 함유된 비소 함량을 분석한 결과다. 이런 이유로 문 교수는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화랑정신이 아니라 바로 달천에서 만들어진 제철기술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그가 쓴 철 관련 논문은 오래전부터 포항제철 박물관에 소장 중이며, 대학 교수로 재직시절 대한금속학회 등 한국고대제철에 관한 각종 세미나 등에서 철관련 연구결과 발표로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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