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에서는 지난 2011년 8월 무려 8명의 사상자를 낸 현대EP 울산공장 폭발사고를 계기로 산업재해사고 사범에게 너그러웠던 처벌관행에 제동을 거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다. 당시 울산지검이 산재사범인 현대EP 울산공장장과 생산팀장, 생산반장 등 3명을 이례적으로 구속수사한 것이다.
사실 울산지검의 이례적인 구속수사는 비슷한 시기에 이뤄진 울산지법의 판결이 큰 영향을 미쳤다.
울산지법은 같은해 9월, 모두 7명의 인명피해를 낸 산재사고 과실범에 대해 벌금 1,000만원의 약식기소를 청구한 울산지검의 청구를 뒤집고 정식재판에 회부한 뒤 엄중처벌했다.
산재추방을 위해 엄한처벌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거였다. 결과적으로 이 판결은 때마침 현대EP 울산공장 사고와 관련한 경찰수사와 고용노동부 울산지청 조사를 지휘 중이던 검찰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 됐다.
울산지검은 산재추방을 목표로 2014년 12월 공안부 소속의 ‘산업안전 중점 대응센터’를 발족했고, 대검찰청은 그 이듬해 2월 울산지검을 전국 첫 ‘산업안전 중점 검찰청’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수십년간 산업현장 뿌리 박은 안전불감증을 완전히 뽑아내는 건 검찰과 법원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지난 28일 발생한 고려아연 울산공장 황산 유출 사건을 즈음해 울산지검 ‘산업안전 중점 대응센터’를 진두지휘하는 공안부 민기홍 부장검사를 만나 울산의 산업안전 현주소에 대해 들어봤다.
석유화학단지 노후 산업시설 밀집
‘안전업무 후순위’ 경영 마인드 문제
근로자 무사안일 관행도 사고 키워
‘산업안전 중점 검찰청’ 울산지검 지정
산재사고 수사역량 집중 전문성 강화
사고예방 종합대응 업무 시스템 개선
-울산은 석유화학공단이 조성된 이듬해인 1973년, 남구 부곡동 한양화학에서 근로자 21명이 부상을 입은 사고를 시작으로 최근까지 굵직굵직한 중대 산재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울산의 산재사고 현황은 어떤가?
▲산업안전보건법위반 혐의로 우리 검찰에 접수된 사건은 2013년 225건(558명), 2014년 231건(548명), 2015년 167건(382명)으로 지난해들어 다소 수치가 줄었다.
단, 모두 산업재해 사고는 아니고 단순 안전조치의무 위반 건도 포함한 건수다.
-최근 5년 동안 울산에서 산재사고를 낸 사업장의 사업주나 책임자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구속수사한 사례는 얼마나 되나?
▲지난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8명을 구속수사했다.
무려 8명의 사상자를 낸 현대EP 울산공장장 등 3명, 2014년 발생한 신고리원전 3호기 근로자 질식 사망(3명) 사건의 현장 주책임자 1명, 지난해 6명의 근로자가 숨진 한화케미칼 울산공장 폭발사건과 관련한 공장장 등 4명이다.
-울산에서는 인명피해를 동반한 산재사고가 잇따르다보니 최근 몇 년 새 산재사범을 바라보는 ‘국민의 법 감정’이 제법 매섭다. 수사에 부담으로 작용되지는 않나?
▲국민의 법감정대로라면 대형 산재사고가 발생한 경우 원·하청업체 사업주를 구속수사해야 한다. 실제로도 그런 요구가 많다.
하지만 법률의 해석이나 입증의 정도를 따져볼 때 사업주를 구속수사하기 어려운 상황이 많고, 검찰의 입장과 법원의 판단이 다른 경우도 있다.
결국엔 기소 단계에서 공소유지까지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러다보면 국민의 법감정과 차이가 발생하는 경우도 더러 생긴다.
올해 4월 울산지법도 ‘산재전담재판부’를 설치했는데, 그 이후로 산재 관련 사건이 집중적으로 배당되고 있는 만큼 시간과 경험이 쌓이면 전문성과 합리성을 갖춘 판결이 선고될 것으로 기대한다.

-수사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산재사고가 있나?
▲지난해 근로자 6명의 생명을 허망하게 앗아간 한화케미칼 울산공장 폭발사건이 기억에 가장 남는다.
현장 안전관리가 태만하게 이뤄진 상황에서 발생한 대형 인재였는데 수사과정에서 사고 실체가 드러나면 날수록 ‘기본만 잘 지켰어도’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근로자들은 허리춤에 가스측정기를 차고 있었고, 폭발사고 전 위험을 알리는 경고음이 울렸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더라. 원칙대로라면 원청이 꼼꼼히 살펴 처리해야 할 ‘작업전 위험평가서’도 작업을 맡은 하청이 ‘셀프’로 했다. 작업 매뉴얼이 없는 안전사고는 없다. 늘 안전을 의식하고 원칙과 매뉴얼을 지켜야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앞서 지난 2014년 발생한 울산 신고리원전 근로자 질식사망 사건도 기억에 남는다. 원청 현장 관리자가 설비결함으로 질소가 누출된다는 사실을 알고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아 하청업체 근로자 3명이 사망한 사건이었는데, 안전불감증이 이토록 심각할 수 있나하는 탄식이 터져 나오더라.
-울산지검은 지난해 2월 대검찰청으로부터 ‘산업안전 중점 검찰청’으로 지정돼 운영 중이다. 중점 검찰청 지정은 어떤 의미인가?
▲울산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산업수도다.
하지만 1967년 준공된 울산석유화학단지를 비롯해 오래되고 낡은 산업시설이 밀집해 있고, 화학물질 유통량도 국내 최대 규모여서 다른 지역보다 산재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11년 남구 부곡동 현대EP 울산공장에서 근로자 3명이 숨지고 5명이 부상을 입은 대형 폭발사고가 발생한 것을 신호탄으로 대형사고가 잇따랐다.
대검찰청이 울산지검을 ‘산업안전 중점 검찰청’으로 지정한 건 수사역량을 집중시켜 전문성을 강화하자는 취지였는데, 그렇다고 단순히 처벌만 강화하겠다는 건 아니다. 산재사고에 엄중히 대처해 처벌 이전에 사고부터 예방하자는 데 방점이 찍혀져 있다.
이런 ‘산업안전 중점 검찰청’ 활동 이후 ‘산재사고로 엄중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산업계에 퍼졌다. 실제 울산지법이 산재사고로 징역형을 선고한 건수도 2014년 9명에서 2015년 43명으로 늘었다.
-울산지검 공안부는 이미 지난 2014년 12월 ‘산업안전 중점 대응센터’를 별도 발족했는데 어떤 역할을 하나?
▲과거 검찰은 산업안전사고가 발생하면 경찰과 노동지청이 송치한 사건을 처리하는데 그쳤다. 그런데 사고를 예방하자면 사고에 대한 종합대응체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보고 업무 시스템을 개선했다.
현재 센터에서는 평소 고용노동부-산업안전보건공단-경남중대산업사고예방센터와의 네트워크를 구축해 산업시설에 대한 합동 안전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산업안전 자문위원회’도 꾸렸다. 검사들은 산재사고를 수사할 때 현장 근로자가 아니면 쉽게 알기 어려운 전문지식에 대해 이들에게 자문을 구한다. 예를 들면 산재사고로 근로자가 심하게 다친 경우 부상의 정도, 회복가능성, 폭발사고의 원인이 된 화학물질의 특성, 폭발가능성 등에 대한 자문이다.
-산재사고가 근절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하나?
▲가장 큰 문제는 안전업무를 회사 성장보다 후순위로 생각하고, 설비투자에 인색한 경영진의 마인드다. 또 현장의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는 근로자들의 무사안일한 관행도 사고를 키운다.
‘지금까지 사고가 나지 않았으니, 오늘도 사고는 없을 것’이라는 경영진과 근로자 모두의 안전불감증도 문제다.
산업안전은 현장 근로자와 기업체, 유관기관이 합심하고 노력해야 산업안전이 정착될 수 있다.
근로자 스스로가 안전관리의 주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안전불감증에 빠지지 않아야 하며, 기업은 성장 못지 않게 안전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해 평소 안전관리를 철저히 해야한다.
유관기관은 유관기관대로 산재사고 예방업무나 사고 발생시 현장을 꼼꼼히 조사해 근로자를 보호해 줄 것을 당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