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매일 포토뱅크) 울산매일 iusm@iusm.co.kr

지난 25년 동안 울산은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가장 큰 변화는 울산시가 경남도로부터 독립해  광역시가 되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점이다.

지난 25년간 울산은 사회·정치·경제·문화 모든 분야에서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광역시로서의 품격과 환태평양의 중심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이에 울산 발전 25년사를 각 분야별로 살펴본다.

사회
인구 75만에서 119만명… 59% 증가
1997년 광역시 승격·월드컵 개최지로 결정
‘에코폴리스 울산’ 선언… 태화강 대변혁
우정 혁신도시 건설 등 굵직한 사업 추진
KTX울산역·UNIST 설립 등 괄목할 성과

 

◆급격한 시세의 팽창, 광역시의 위상

울산매일이 창간한 1992년은 울산이 시로 승격된지 30년이 되는 해다. 

시승격 당시 8만5,082명이던 울산 인구는 산업의 발달과 인구증가 등으로 급격한 시세팽창이 이루어져 1992년에는 75만2,864명까지 늘어난다. 울산의 인구가 100만명을 넘어선 것은 광역시 출범 원년인 1997년(101만3,070명)이며 2016년 3월 현재는 119만명으로 집계됐다.

1995년에는 울산군을 울주구로 개편하며 울산시와 울산군의 통합이 이루어진다. 같은해 8월말에는 울산광역시 승격 추진위원회가 발족, 1997년 7월 15일 이루어진 울산광역시 승격의 기초를 다지게 된다.

광역시로 승격이 된 해에는 울산이 2002월드컵 개최도시로 결정(12월 19일) 되는 기쁨을 맛봤으며 월드컵 해인 2002년에는 SK가 1,000억원을 들인 울산대공원 1차시설이 개장, 시민들을 맞게된다.
2004년에는 오늘날 태화강의 대변화의 시발점이 된 ‘에코폴리스 울산’ 선언이 있었다.

울산의 대기환경이 1992년 아황산가스(SO₂) 0.031ppm/년, 일산화탄소(CO) 1.1ppm/8시간에서 지난 3월에는 SO₂ 0.007ppm/년, CO 0.5 ppm/8시간로 크게 개선된 것도 환경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후반은 울산의 신성장축이 될 울산혁신도시(현 우정혁신도시) 기공(2007년 12월)과 울산자유무역지역 지정 확정 고시(2008년 12월), 울산~부산간 고속도로 개통(2008년 12월), UNIST(현 울산과학기술원) 개교, 울산대교 착공(2009년 11월), 장생포 고래생태체험관 개관(2009년 11월) 등 굵직굵직한 일들이 많이 벌어진 시기였다.

UNIST의 탄생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2년 대선 후보로 출마했을때 울산 국립대 설립을 공약으로 내세운게 시발점이 됐다.

2010년에는 KTX 울산역이 개통 ‘교통오지’였던 울산을 경부철도의 중심축에 자리잡도록 했다. 
올해에는 울산~포항고속도로가 완전개통되면서 경주, 포항을 아우르는 ‘해오름 동맹’이 결성, 동해남부권의 도시 연합체의 대도약을 예고하고 있다.

사반세기동안 울산의 행정조직도 큰 변화가 있었다. 1962년 1실, 6과 4출장소, 3사업소, 53법정동, 공무원수 129명이던게 행정수요 증가로 1992년에는 공무원수가 2,328명(확인)으로 20배 가량 늘어났고 올해 3월말에는 공무원수는 5,879명(본청 1,107명)으로 늘었다.

1992년 울산의 살림규모는 1,844억원으로 오늘날의 일선 자치구 규모의 예산이었다. 그러던 것이 광역시 승격후 크게 불어나 2016년 당초예산 3조2,344억원에 이르게 된다.

정치
본지 창간·민선 지방자치 함께 출발
14대 총선부터 15대까지 야권 강세
19대 與 독식·20대 동·북구 野에 내줘
정갑윤, 울산 최초 국회부의장 ‘한 획’
민선 지방자치로 ‘정치 인프라’ 확대

 

◆지방정치의 시작, 변화의 물결

울산의 정치사는 1992년 지방자치 시대와 맞물려 여야의 경쟁이 치열한 구도로 전개됐다. 

울산매일이 창간되던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졌으며 민선 지방정치의 역사와 맥을 같이 했다.

광역시가 되기 전 울산은 4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했다. 14대 총선에서 중구 차화준, 남구 차수명, 동구 정몽준이 모두 통일국민당 소속으로 당선됐고 울산군 김채겸이 민자당 소속으로 당선됐다.

통일국민당은 1992년 1월에 현대그룹의 창업주 정주영 회장이 대통령선거에 입후보하기 위하여 창당한 정당으로 울산에서 3개의 의석을 휩쓸며 야당의 전통을 이어나갔다.

울산 국회의원의 야당 전통은 9, 10, 11, 12대까지 이어지다 13대에는 김태호(중구)와 박진구(울주군)가 당선돼 야당과 균형을 이뤘다. 

그러나 정주영의 열풍으로 울산은 14대 총선에서 다시 야권이 바람을 일으켰다.

이러한 바람은 1996년 15대 총선에서 이어졌다. 15대 총선에서는 5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게 돼 현 새누리당의 전신인 신한국당 소속인 중구 김태호 남구갑 차수명이 당선된 반면 남구을, 동구 울주구는 민주당과 무소속이 당선돼 여전히 야권이 강세를 보였다.

16대 총선땐 울산의 정치 지형도는 여권으로 넘어갔다.
광역시가 되고 첫 총선인 16대 총선(2000년)에서 한나라당 소속인 중구 김태호, 남구 최병국, 북구 윤두환, 울주군 권기술 등 4명을 당선시켰다.

이후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인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서 여소야대의 정치구도가 바뀌었다.  

2004년 17대 국회의원선거는 남구지역구가 남구갑과 남구을로 나눠지면서 총 6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게 됐지만 여소야대의 영향으로 중구 정갑윤, 남구갑 최병국, 남구을 김기현 등 한나라당 소속이 3명, 열린우리당으로 출마한 울주군 강길부, 민주노동당으로 출마한 북구 조승수, 통합21 소속인 동구 정몽준 의원이 당선되면서 여야가 팽팽한 균형을 이루었다.

그러나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이 6개 선거구 중 한나라당 공천심사 과정에서 반발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울주군 강길부 의원을 제외한 5개 선거구를 휩쓸었다. 특히 동구는 정몽준 의원이 지역구를 서울로 옮기면서 안효대 의원이 한나라당 후보로 당선됐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울산정치사 최초로 집권여당인 새누리당 후보들이 6개 지역구 전석을 차지했고 지역 출마 국회의원 중 정갑윤 의원이 울산최초 국회부의장으로 활동하며 지역정치사의 한 획을 그었다. 

또한, 김기현 국회의원이 2014년 지방선거 때 시장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그 자리에 3선 시장이었던 박맹우 시장이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러나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새누리당에 대한 민심 이반으로 야권세가 강한 동구와 북구를 전 통합진보당 소속인 김종훈·윤종오 전 구청장에게 의원자리를 내주게 됐다.

민선 지방자치가 재실시된 1991년 3월 26일 울산시의회 의원 선거가 있었고 이어 4월에 초대 울산시의회가 개원했다. 그리고 이듬해 7월 울산시의회 의원 보궐선거가 중구와 남구 동구에 치러지는 등 지방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이후 울산시와 울주군이 통합된 1995년 1월에 울산시·군 통합 울산시의회가 64명의 의원으로 개원했고 6월에 제2대 울산시의회 의원 선거를 치렀다.

1997년 울산시는 광역시로 승격하면서 7월에 초대 울산광역시의회가 72명의 의원으로 개원 했으며 이듬해인 1998년 6월 17명을 뽑는 제2대 울산광역시의회 의원 선거가 있었다.

그리고 2002년 6월 제3대 울산광역시의회 의원 선거에서 19명이 당선됐고 2006년 5월 제4대 울산광역시의회 의원 선거에서도 19명이 당선돼 의정활동을 이어갔다.

이후 2010년 6월  5대 울산광역시의회 의원 선거에서는 교육위원을 함께 뽑으면서 시의원은 모두 26명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2014년 6월 현 제 6대 울산광역시의회 의원 선거에는 교육위원 일몰제 폐지로 시의원의 숫자가 22명으로 줄어들었다.

이처럼 울산시의 시의원 출신들은 이 과정에서 구청장과 국회의원으로 자리를 옮겨 가는 등 정치인으로서의 입지를 구축했다.

시의원 출신의 기초단체장을 하거나 현직에 있는 인물로는 조용수, 이상범, 김두겸, 권명호, 서동욱, 박천동, 정천석 등이 있으며 기초단체장과 국회의원까지 된 인물로는 조승수, 이채익, 김종훈, 윤종오 등이 있다.

이처럼 울산의 25년의 정치사는 지방정치를 근간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배출로 정치의 인프라라 형성으로 정당정치의 선택 또한 넓어졌다.
특히 울산은 노동의 메카인 만큼 여야의 팽팽한 견제와 균형을 이뤄왔다.

경제
수출 100억달러서 1,000억달러로 성장
IMF 제조업 줄폐업·기업 구조조정 한파
공룡 유통업 진출로 향토기업 잇단 도산
조선 등 주력산업 성장 둔화 최악 침체기
울산신항 동북아 오일허브사업 진취적 추진

◆경제, 100억달러에서 1,000억 달러까지

1992년은 울산 경제에 있어서 처음으로 100억 달러(107억 달러)를 돌파한 중요한 해였다. 

특정공업지역으로 지정됐던 1962년, 26만 달러에 불과했던 울산 수출은 30여년 만에 무려 4만배 이상 성장한 것이다. 1992년 이후로는 20여년 만인 2011년에 전국 최초로 수출 1,000억 달러를 달성해 10배 더 성장했다. 

1992년 당시 울산의 제조업체 수는 374개(종업원 5인 이상)으로 종업원은 11만2,381명이었다. 당시의 수출품목을 보면, 현재와 마찬가지로 중화학제품이 주를 이루고 있었고, 10억 달러 이상의 업체가 3개사, 1억 달러 이상이 12개인 등 당시도 대기업에 편중돼 있었다.

업종별로는 자동차와 화학, 선박, 기계 등의 생산액이 고르게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해에는 또 울산항에 컨테이너선박이 첫 정기항로를 개설했고, 향토기업인 모드니백화점이 문을 열기도 했다.

울산 경제 역시, 1997년 경남도로부터 분리, 광역시로 승격되면서 비로소 주권을 찾았다. 그 해에는 수출 150억 달러(154억 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1997~2000년 부산·울산중소기업청, 울산환경기술센터, 울산소상공인지원센터, 울산무역관, 울산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 등 경제 관련한 기관들이 잇따라 문을 열었다. 

광역시 승격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IMF 외환위기가 찾아오면서 울산 경제에도 한파가 몰아 닥쳤다. 건설업체와 제조업체의 줄도산이 이어졌고, 1998년에는 현대차 근로자 1만3,000명이 회사를 떠나는 기업구조조정이 이뤄졌다. 

이즈음에 공룡 유통업계의 진출과 맞물려 주리원백화점, 올림푸스백화점, 모드니백화점 등 지역 향토 유통업체도 잇따라 무너졌다. 

반면 울산의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3대 주력 제조업은 IMF의 위기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을 보여줬다. IMF 2년 만인 1999년에는 울산공단의 가동률이 90%를 넘어설 정도로 다시 풀무질에 속도를 붙였다.

잠시 주춤거리던 수출은 2002년 200억 달러, 2004년 300억 달러, 2006년 500억 달러를 돌파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1인당 지역총생산(GRDP)은 1996년 2,335만원에서 2006년 3,837만원(4만154달러)으로 증가하면서 전국 최초로 4만 달러를 돌파했다. 

시련은 또 찾아왔다. 2008년 미국 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찾아오면서 건설업체들이 줄줄이 쓰러졌고, 주택 미분양사태도 터지는 등 지역 경제가 침체를 겪었다. 2009에는 지역 실업급여 신청건수가 3,000건을 넘기도 했다.

금융위기 속에서도 울산의 수출은 계속 증가하면서 2011년 1,014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해 마침내 수출 1,000억 달러의 고지를 점령했다. 이후 1인당 GRDP는 5만 달러도 넘기면서 ‘전국 최고 부자도시’, ‘산업수도’란 타이틀을 공고히 했다. 

하지만 반세기를 쉼 없이 달려온 피로감이 누적된 것인지, 한국의 경제 성장 신화에 주역이 됐던 울산은 최근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주력 산업은 세계 경제의 성장둔화와 유가 하락 중국의 추격 등으로 정체기에 접어들었고, 수출과 고용지표 등이 전반적으로 뒷걸음질 치는 상황에 놓였다. 사상 최대 위기를 맞은 것이다. 그러나 IMF와 미국 발 글로벌 금융위기도 헤쳐 나갔던 저력이 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전기차와 수소차, 조선에서는 고부가가치 선박과 로봇, 석유화학에서는 정밀 화학소재 등 주력 제조업 고도화를 통한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울산신항을 동북아의 석유 물류와 금융의 중심지로 만들 오일허브 사업도 진행 중이다. 

문화
울산문예회관 개관으로 문화예술계 변화
현대예술관·울주문예회관 등 줄이어 오픈
울산박물관 등 박물관도 10여곳 개관
소극장·갤러리 예술인 활동 활발
내년 울산문화재단 출범 변화 기대

 

◆문화예술계 양적, 질적 눈부신 성장

울산 문화예술계는 지난 25년간 큰 지각변동을 겪었다. 울산 인구수가 증가하고 생활소득도 높아진 만큼 문화예술 향유에 대한 관심과 눈높이도 높아졌다. 7대 특·광역시 중 여전히 문화시설 기반이 가장 약한 도시로, 진정한 ‘문화도시’까지 갈 길이 먼 울산이지만, 문화예술계의 성장속도는 비약적이었다.

지난 25년 중 가장 큰 변화의 핵은 ‘울산문화예술회관’ 개관이었다. 1995년 문을 연 울산문예회관부터 2014년 중구문화의전당까지 20년 새 각 구·군에는 공공·민간 문화예술기관이 조성됐다. 1981년 시민회관 건립으로 추진된 울산문화예술회관은 ‘굴뚝도시’ 울산 시민들의 숙원이었다.

이전까지 연주회는 울산상공회의소, 종하체육관 등 다소 열악한 시설에서 이뤄졌었다. 회관 개관 후 울산시립예술단 공연은 물론 유명 오케스트라 연주와 공연, 전시를 쾌적하게 감상할 수 있게 됐다.

뒤를 이어 1998년 동구에 현대예술관이, 2003년 북구문화예술회관, 2009년 울주문화예술회관이 문을 열었다. 2014년 조성된 중구문화의전당은 500여석의 공연장이 연중 가동되고 있다.

울산은 한동안 박물관이 없었던 도시였지만, 새 천년 이후 박물관이 비약적으로 생겨났다. 울산·대곡·암각화·울산대학·장생포고래·울주민속·옹기·울산해양 박물관과 외솔기념관 등 10여곳의 박물관이 등록돼 있다. 

또 2020년이 되면 시립박물관·미술관·시립도서관을 모두 갖추게 된다. 시립미술관은 최근 북정공원과 중부도서관 일원에 짓기로 확정됐고, 개관이 연기돼 2020년 완공할 계획이다. 도서관은 남구 여천동 부지에 2018년 개관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울산의 첫 문학관인 오영수문학관은 2014년 언양에 개관해 울산 출신 소설가 난계 선생의 문학정신을 알리고 있다.

울산의 문화를 만드는 데는 시민 개인의 힘도 컸다. 이솝, 예정 등 지금은 사라진 소극장들을 거쳐 품, 플러그인, 푸른가시 등 민간 소극장, 공연장도 현재 20여곳 되고, 1987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운영되던 윤화랑 등 오래된 화랑은 사라졌지만 젊은 갤러리들이 30여곳 운영되고 있다. 특히 중구가 문화의거리 내 문화예술업종을 지원하면서 5년 사이 우후죽순 불어났다. 

축제는 50여년 동안 이어져 온 처용문화제, 20년 된 고래축제 외에도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옹기·쇠부리·장미·마두희 축제가 생겨 규모를 키워가고 있다. 국보 제285호 반구대암각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움직임이 표면화 된 것은 2000년에 들어서면서 부터다. 2010년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록 후 진척이 없으며, 보존방법조차 차질을 빚는 등 현재 진행 중이다.

문화재 수는 20년 새 대폭 늘었다. 2016년 현재 유형문화재 32개, 무형문화재 5개, 기념물 46개, 민속문화재 1개, 문화재자료 29개가 등록돼 있다. 국가지정까지 합치면 142개의 지정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1994년 총 12개보다 10배 이상 늘어난 숫자다. 

예술단체와 예술인 규모도 커졌다. 울산예총은 1994년 회원 909명에서 현재 2,000명 정도로 늘었다. ‘울산문화원’으로 시작한 문화원은 1994년 134명의 회원에 불과했으나, 2016년엔 각 구·군 통틀어 2,000여명의 회원들이 활동 중이다. 

문화예술 교육을 전파하는 울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는 개관 5년차를 맞았다. 2014년 태화루 준공도 빼놓을 수 없다. 2017년 울산문화재단이 출범하면 행정체계 및 조직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형태를 띠게 되면서 문화예술계가 또 한 번의 변화를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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