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산(峨山) 정신에서 찾아본 ‘위기의 現重’ 돌파구
■ ‘하면 된다’…백지서 세계 최고, 최대 조선소 일구다
정주영 회장 “조선소 만들겠다” 선언에
“건설회사가 어찌 선박 만드나”시선 냉담
英 애플도어 롱바톰 회장에 추천서 부탁
500원짜리 지폐 펼쳐 거북선 보여주며
“1,500년대 이미 철갑선 만들었다” 설득
1972년 3월 기공식…1974년 6월 준공
1975년 세계 최대 선박 건조능력 갖춰
2016년 6월 현재 불황에 구조조정까지
첫 선박 발주한 선엔터프라이즈사 회장
“시련 이겨낸 한국 조선 또 한번 기적을”
‘하면 된다’는 고(故) 아산(峨山) 정주영 명예회장의 의지는 소나무 몇 그루와 초가집 몇 채뿐이던 울산 미포·전하만을 세계 최고, 최대의 조선소로 바꿔놓았다. 정 회장이 일구어 놓은 현대중공업은 40여년 간 승승장구하다가 최근 들어 사상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백지에서부터 조선소를 만들고 수많은 난관에 부딪히면서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면서 헤쳐 나가던 정 회장의 아산 정신을 되새겨본다. <편집자 주>
◆‘있지도 않은 조선소서 만들 배’를 판매한 게 現重의 시작
“나무배만 만들던 나라에서, 게다가 건설만 하던 현대가 대양을 항해하는 선박을 만들 수 있겠는가.”
정주영 회장이 조선소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이구동성으로 하던 말이었다. 하지만 정 회장은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1970년 3월 조선사업부를 설치하고, 부지는 울산 미포·전하만으로 골랐다. 튼튼한 암반이 넓게 펼쳐져 있고 파도와 풍속 등 모든 면에서 조선소 건설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돈이 없었다. 정 회장은 차관 도입을 위한 추천서를 받기 위해 영국 선박 컨설팅업체인 애플도어사의 롱바톰 회장을 만났다. 돌아오는 대답은 냉담했다. “한국의 상환 능력과 잠재력에 의문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정 회장은 주머니에서 5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탁자 위에 폈다. 500원짜리엔 거북선이 그려져 있었다.
정 회장은 “우리는 1,500년대에 이미 철갑선을 만들었던 실적과 두뇌가 있다. 영국 조선 역사는 1,800년대부터라고 알고 있는데, 우리가 300년이나 앞서 있다”고 말하자, 롱바톰 회장은 웃으면서 영국 은행에 ‘현대는 큰 배를 건조할 능력이 충분하다’는 추천서를 써줬다.
난관은 계속됐다. 영국 은행이 외국에 차관을 주려면 영국수출신용보증국(ECGD)의 보증을 받아야 했는데, ECGD는 ‘배를 살 사람이 있다’는 증명을 하면 보증을 해주겠다고 한 것이다. 그날부터 정 회장은 ‘있지도 않은 조선소에서 만들 배’를 사줄 선주를 찾아 나섰다. 가진 것이라곤 울산 바닷가의 황량한 사진과 지도 한 장씩, 그리고 영국 선박업체에서 빌린 유조선 도면뿐이었다. 그러던 차, 추천서를 써 준 롱바톰 회장이 그리스 선주, 리바노스를 소개했고 유조선 2척 수주계약이 성사됐다. 리바노스를 두고 정 회장은 ‘나보다 더 미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울산의 백사장 사진만 보고 계약서를 써줬기 때문이다. 이후 차관 도입까지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세계 조선사에 남은 기록, 한국인 저력이 만들어 낸 결과
착수 2년만인 1972년 3월. 현대조선소 기공식이 열렸다. 사실 당시 만성적인 인플레 속에서 조선소 건설은 수지맞는 일이 아니었고, 더욱이 조선 경기는 2~3년 후 내리막일 것이라는 정보도 있었다. 빌린 돈의 이자는 날이 갈수록 무섭게 불어났다. 정 회장은 이런 악조건 속에서 헤쳐 나갈 방법은 하나라고 생각했다. ‘최대한 빨리 짓자’는 것이었다.
조선소 건설에 착수하자마자 기능공 훈련소를 지어서 기술을 익히도록 하는 한편, 우수 인재들은 영국 조선소에 보내 훈련시켜 데려왔다. 건설에는 매일 2,200명의 작업 인원을 투입했다. 수주 받은 배 2척을 만들면서 동시에 방파제를 쌓고 바다를 준설했다. 안벽을 만들고 도크를 파고 공장을 지었다. 또다시 2년이 조금 지난 1974년 6월에는 조선소가 준공됐다. 이는 최단기간에 조선소를 건설하면서 유조선 2척을 건조해낸 기록으로 세계 조선사에 남았다. 또 1차 공사를 진행하는 도중에 시작한 확장 공사로 당시 ‘현대조선’은 1975년 최대 선 건조능력을 갖춘 세계 최대의 조선소가 됐다. 정 회장은 ‘한국인의 저력이 만들어 낸 결과’라고 믿었다.
◆‘한국 조선의 기적’을 다시 기대한다
경험 없이 선박 건조를 하면서 사실 웃지도, 울 수도 없는 일들이 많았다고 정 회장은 회고했다. 국내에서 제일 큰 배를 만들었다는 기술자가 경험한 것이 고작 1만7,000t짜리였다. 수주 받은 26만t급 배가 얼마나 큰지를 설명해 줄 사람조차도 없었다. 정 회장의 표현으로는 선박 제조는 철판을 자르고 용접을 해 몸체를 만드는 일인데, 그 철판 조각이 수만개나 된다. 배를 물에 띄우는 과정에서 굴뚝 하나가 빠진 것을 발견한 적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리바노스가 주문한 배 2척은 조선소 준공과 함께 완성됐다. 리바노스는 “본 배중에 가장 잘 만든 배”라며 극찬했다.
그로부터 40여년이 흐른 2016년 6월 13일. 현대중공업이 저유가로 시작된 조선업 불황과 중국 조선사들과의 경쟁으로 구조조정 상황에까지 닥친 때였다.
정주영 회장에게 첫 선박을 발주한 그리스 선엔터프라이즈사의 조지 리바노스 회장이 현대중공업을 찾았다. 82세의 고령에도 발주한 원유운반선 2척의 명명식(배에 이름을 붙이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리바노스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시장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나 좋지 않다. 여러분들은 (이 위기를) 견뎌낼 수 있다. ‘한국 조선의 기적’을 다시 기대한다.”

■ 故 정주영 회장 가상 인터뷰
어려움 닥쳤을때 포기 않는 정신 필요
시련 극복하는 과정서 새 가능성 발견
도전엔 ‘수업료’ 있어 순조롭지만 않아
-현재 현대중공업은 사상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데, 해주고 싶은 말은.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가장 많이 떠올리는 말이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가 아닐까 한다. 실패와 시련의 차이는 ‘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실패가 아닌 시련으로 삼아서 성공을 거두려면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 필요하다.
조선 사업에 뛰어들어 조선소를 지어가면서 동시에 배 두 척을 건조하는 도전을 성공하고 나서 기쁨을 제대로 즐길 틈도 없이 오일쇼크가 몰아닥쳤다. 오일쇼크로 전 세계 에너지 수입국들이 유조선 소비를 줄이면서 이미 운항되던 유조선도 남아도는 상황이 됐다. 수주 받은 12척의 대형 유조선 중 3척이 취소 또는 인수 거부당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야말로 시련이 닥쳐온 것이었다.
임원들로부터 건조를 중단하자는 주장이 나왔지만, 자금난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건조를 강행하도록 했다. 결국 그 배를 이용해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게 시련의 극복 방법이었다.
당시 원유수입을 외국 회사들에게 의존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쓰는 기름은 우리가 실어 나르자는 생각을 했고, 인수 취소된 3척의 유조선이 현대상선의 시작이 된 것이다.
포기하지 말라는 것은 반드시 처음에 계획했던 그대로 무작정 밀고 가라는 것은 아니다. 시련을 겪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에서 예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경우를 나는 여러 차례 겪었다.
새로운 도전에는 ‘수업료’라는 게 있다. 시련 없이 순조롭기만 한 일은 도전이 아니다. 언제나 시련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시련을 피하지 말고 책임질 준비를 하고 있다면 정말로,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을 것이다.
-시련을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맞서야 하는가.
▲기업을 운영하다 보면 때로는 손실을 보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잘못된 예측이나 경솔한 판단 때문일 수도 있고, 예기치 못한 난관에 부딪쳤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지 손실이 손실만으로 끝나버린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손실로만 남을 뿐이다. 손실 대신 얻은 것이 있으면 그것은 손실이 아니라 오히려 번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때든 돈으로 본 손실보다 돈 아닌 것으로 얻은 것이 더 큰 벌이가 될 수도 있다.
6·25 직후에 고령교 공사에 막대한 손실을 본 다음에 그 빚을 모두 청산하는데 거의 20년이 걸렸다. 하지만 그 일을 교훈으로 앞으로 있을 수 있는 다양한 외부요인에 대해서 예측을 좀 더 치밀하게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해외 진출 첫 공사였던 태국의 고속도로 건설 역시도 우리나라와 판이하게 다른 기후조건, 낙후된 기술, 경험 부족 등이 겹쳐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하지만 노하우가 축적됐고, 훗날 경부고속도로라는 대역사를 성공시키는 밑거름이 됐다.
어려울 때일수록 진취적 기상과 모험심, 불같은 열정으로 부단히 노력해 극복하고, 이 과정을 통해 배워나가고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은 모두 작심만 하면 뛰어난 정신력으로 어떤 난관도 돌파할 수 있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본 인터뷰는 정주영 명예회장의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이 땅에 태어나서’와 현대경제연구원이 지은 ‘정주영 경영을 말하다’에서 발췌하거나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