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대암각화]
사람 얼굴·고래·수렵도구
75종 그림 200여점
우리민족 문화원형 자료
세계문화유산 잠재목록 등재
집청정·포은대 등 둘러볼만

해오름동맹의 중심도시 울산을 대표하는 유적은 무엇일까?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거침없이 ‘반구대 암각화’라고 할 것이다.
지난 1971년 발견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의 국보 285호 반구대 암각화는 7,000년 전 선사인들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대한민국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인근에 위치한 국보 제147호 천전리 각석과 함께 ‘대곡천 암각화군’으로 세계문화유산 잠재목록에 등재되어 있다.
‘대곡천 암각화군’ 탐방은 대곡천변에 위치한 암각화박물관에서 시작한다. 박물관 앞을 흐르는 겨울 대곡천의 물빛이 곱다. 백운산 탑골샘에서 발원한 태화강 물길은 두동면 천전리, 언양읍 대곡리, 범서읍 사연리 등을 거치면서 휘어지고 또 휘어진다.
수 천 년을 흘렀을 물길 주위에는 칼로 깎은 듯 우뚝하게 서 있는 기암괴석이 즐비하다. 대곡댐을 기점으로 상류에는 백련구곡(白蓮九曲), 하류에는 반계구곡(磻溪九曲)이 형성되어 있다.
이를 품은 곳이 대곡천이다. 옛 부터 지조 높은 선비들이 이곳을 찾아 시문을 짓고, 마음의 평화를 얻기도 했다.

◆한민족의 기원과 문화원형 알려주는 국보
반구대암각화는 암각화박물관에서 대곡천을 따라 30분가량 쉬엄쉬엄 하류로 걸어가면 만날 수 있다.
반구대 암각화는 올 겨울 용하게도 물 밖에서 나고 있다. 하류에 위치한 사연댐에 물을 채우지 않고도 겨울을 날 만큼 용수가 풍부한 탓이다. 부족하지 않게 비를 내려준 하늘이 고맙고 또 고맙다.
반구대 암각화 전면에는 망원경 3개가 설치돼 있다. 안경을 쓴 탓에 좀처럼 초점을 맞춰지지 않는다. 일부 그림의 윤곽이 흐릿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고작 몇 점이전부다. 도대체 200여점이나 되는 그림은 어디에 꼭꼭 숨어 있을까.
아니면 벌써 훼손돼 영원히 볼 수 없게 된 것은 아닐까. 반구대 암각화 앞에 서면 항상 조바심이 생긴다. 더 늦기 전에 보존방안이 마련돼야 하는데, 아직도 보존 논의는 공회전 중이다.

반구대 암각화는 수직의 거대한 바위면 아래에 높이 3m, 폭 10m에 걸쳐 동물과 인물, 도구 등 75종 200여점의 그림을 쪼아 새긴 것으로 학자들은 신석기∼청동기시대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래, 거북, 호랑이, 멧돼지 등 동물들과 작살, 그물 등 수렵도구, 그리고 사람들 얼굴과 전신상이 새겨져 있어 그 당시 생활상을 한눈에 짐작해 볼 수 있다.
반구대암각화는 주인공은 아무래도 고래다. 작살 맞은 고래부터 새끼를 배거나 데리고 다니는 고래, 배를 타고 고래를 잡는 어부 등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반구대 암각화가 우리 민족의 기원과 문화 원형을 알려주는 유산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가치가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라고 강조한다.

◆반구대 등 반계구곡의 진면목 볼 수 있어
반구대암각화를 돌아 나오는 길에선 겨울 반계구곡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하천을 따라 온갖 기암괴석이 손앞에 잡힐 듯하고 도무지 거리감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빼곡하다.
한실마을로 가는 갈림길에서 포은대(圃隱臺)를 마주한다. 전체 윤곽이 말 그대로 반구대(盤龜臺)이다. 옛 ‘언양읍지’(1919)에는 반구대를 ‘산 아래 흐르는 물 위 수백 보(步)가 마치 거북이 넙죽 엎드려 있는 형국이어서 그 이름을 반구대라 했다’라고 적어 그 의미를 알게 한다.
반구대 거북 머리 아래로 작은 언덕에 외로이 보이는 비각이 있다. 비각 안에는 ‘포은대영모비(圃隱臺永慕碑)’와 ‘포은대실록비(圃隱臺實錄碑)’, 그리고 ‘반구서원유허비(盤皐書院遺墟碑)’가 나란히 서 있다.
숲이 우거지지 않은 겨울이라 건너편의 서석(書石)과 바위그림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盤龜(반구)’와 ‘玉泉仙洞(옥천선동)’, ‘圃隱臺(포은대)’ 등의 글자가 선명하며, 2마리의 학 그림도 찾아볼 수 있다.
유허비각을 건너다보는 자리에 포은 선생의 가르침을 후학에 전하고자 지방 유림들이 세운 ‘반구서원’이 자리했다.
반구대를 관망할 수 있는 곳에 고택이 하나 있는데 바로 ‘집청정(集淸亭)’이다. 조선 영조 때의 증병조판서 최진립의 증손인 최신기가 문중의 정자를 이곳에 짓고 ‘집청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천전리각석]
바위 문양 다산·풍요 기원
신라명문 300여자 새겨져
사탁부 종교의식 지낸 성지
건너편 공룡발자국화석 200여개
1억년 전 백악기 공룡 놀이터
◆다산과 풍요의 염원이 고스란히 담겨
천전리각석은 대곡박물관에서 대곡천을 따라 가면 나온다. 너비 9.5m, 높이 2.7m 천전리각석의 상단부분은 반구대암각화 상단처럼 마치 처마가 튀어나온 듯하다.
특히 천전리각석은 바위면 자체가 15도 정도 기울어져 있어 수천 년 동안 비바람을 견딜 수 있었다. 천전리각석은 돌출형 지형이다. 반대로 각석 쪽을 휘감고 도는 대곡천 건너 쪽은 함몰 지형이다.
그래서 남성 상징성을 가진 돌출형 바위에 여성의 가장 중요한 부위를 묘사하면서 다산을 염원한 흔적이 보인다. 선사인들이 새긴 문양은 오랜 시간에 걸쳐 구상에서 추상으로 건너왔다.
동심원에서 긴 타원형으로, 그리고 사각형으로 바뀌었지만 다산과 풍요의 기원은 여전했을 것이다.
천전리 각석 아래 부분에는 테두리를 그어 300자가 넘는 신라명문이 새겨져 있다. 법흥왕대에 두 차례에 걸쳐 유람한 것을 기념하여 새긴 것으로 추정된다.
법흥왕의 부친인 사부지 갈문왕과 사촌누나가 놀러와 새긴 법흥왕 12년(525) 6월 18일의 명문을 서각 원명(오른쪽 명문), 그 뒤 사부지 갈문왕 일행이 법흥왕 26년(539년) 7월 3일 다시와 기록한 것을 서각 추명(왼쪽 명문)이라 한다. 명문 중에는 사탁부(沙啄部)라는 부명이 여러 번 언급되어 있다.
이것은 이곳이 신라 6부의 하나인 사탁부인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장소임을 뜻한다. 이곳은 사탁부의 고유 종교의식이 행해지던 성지(聖地)였을 가능성이 높다.

◆백악기 공룡들의 놀이터
천전리 각석 맞은 편 평평한 바위는 약 1억 년 전 백악기 시대를 살았던 중대형(길이5∼25m)공룡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곳엔 대형 초식공룡인 한외룡(울트라사우루스)을 비롯하여 중형 초식공룡인 이구아나룡에 속하는 고성룡(고성고사우르스) 등의 공룡발자국화석 2백여 개가 확인되고 있다.
이곳의 공룡발자국은 공룡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이동한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돌아다닌 흔적이다. 이 일대가 공룡의 생활공간이었다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공룡이 아열대 기후의 대평원이나 얕은 하천, 평야에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곳이 예전에는 비오는 때와 건조한 때가 교차하고 열대 무역풍의 영향을 받았던 사바나 지역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천전리 공룡발자국화석은 중생대 생태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서 소중한 문화재자료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되길 염원
겨울철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각석을 둘러보기 위해선 두 곳을 따로 방문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불과 3km남짓 떨어져 있지만 가파른 벼랑길을 타야하는 둘레길은 아무래도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반구대암각화 박물관에서 암각화까지 도보로 다녀온 후, 다시 차를 타고 나와 천전리각석을 둘러보는 방법을 추천한다.
얼마 전 울산에서 대곡천암각화군 세계유산등재추진 민간위원회 준비위원회가 열렸다. 이들은 창립 취지문에서 ‘인류최초의 고래잡이 흔적이 새겨져 있는 반구대암각화와 공룡발자국 암반과 마주하고 있는 천전리암각화는 우리 민족의 문화경전이며, 인류 문화유산의 시원이고 배꼽이다’고 했다.
이들의 찬사는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이번 겨울 대곡천을 찾아 ‘대곡천 암각화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자랑스런 문화유산으로 우뚝 서길 염원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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