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오름시대 문화유산 탐방’ 19. 울주 웅촌 적석총·운흥사터

은현리 적석총
지름 20m 높이 6∼7m 고구려 돌무덤
울산 고대사회 복원 ‘또 하나의 열쇠’

운흥사
13개 암자에 1천여 스님 수도한 큰 사찰
불경목판 16종673판 간행… 통도사 보관

검단리유적
청동기 주거·건물지·고인돌·석관묘 발견
3,000여년전 울산인들 집단 주거지 확인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알려진 운흥사 터에 남겨진 석재 수조. 이 수조는 조선시대 불교 경판을 제작할 때 쓰인 종이를 만들기 위한 것으로 전해진다.

울산의 옛 이름은 우시산국(于尸山國)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우시산의 ‘시’(尸, 이두에서는 ‘ㄹ’로 표기)가 ‘우’와 합쳐져서 ‘울’이 된 것이다.

그러면 우시산국은 어디일까? 전문가들은 울주군 웅촌과 지금은 양산시에 편입된 웅상면 지역이 우시산국의 중심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근거는 삼국사기에 전한다. 이에 따르면 신라 3대 석탈해왕 때 거도라는 사람이 우시산국을 굴복시키고 신라에 합병시켰다. 적어도 신라 초기까지는 이 지역에 국가형태의 집단이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웅촌권역에는 3,000년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검단리 집단거주 유적과 세발 달린 청동솥, 고구려 사람들의 흔적으로 보이는 은현리 적석총 등이 있다. 신라불교의 융성을 보여주는 거찰인 운흥사의 부도와 각종 유구도 남아있다. 울산이라는 지명의 시원이 된 우시산국의 중심지인 웅촌 일대를 다녀왔다.

◆고구려 유력자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은현리적석총

삼국시대가 시작될 무렵, 고구려인들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세웠다는 우시산국의 중심지는 웅촌 검단리와 은현리 일대였다. 은현리 정족산 입구 보골봉 기슭에는 고구려인들의 흔적으로 추정되는 적석총이 남아있다. 

은현리 적석총은 검단초등학교가 끝나는 지점의 안내판을 따라 농로 겸 마을 길을 따라가면 전원주택 단지가 있는 서리마을 인근에 있다. 마을회관 주차장에 차를 댄 후 주민에게 적석총의 위치를 물어보니 마을 옆 개울을 건너 100미터 남짓 동산을 오르면 된다고 했다.

골목을 비집고 찾은 개울은 지난여름 수해 탓에 심하게 훼손돼 있었다. 무너진 콘크리트 제방과 상류에서 떠내려 온 바위가 가득한 개울을 건너 제법 가파른 길을 오르니 저수지가 보이고, 그 너머로 돌무더기가 눈에 들어온다.

삼국시대 초기 웅촌지역으로 내려온 고구려 유력자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적석총.

1997년 10월 9일 울산광역시 승격과 더불어 시 기념물 제8호로 지정된 이 돌무덤은 지름이 20m, 높이가 6~7m에 이를 정도로 큰 규모다. 무덤 아래로는 은현리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돌무지에 사용된 돌들은 주변 계곡이나 지표면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풍화된 화강암 또는 니암 종류의 자연석이다.

자연 그대로의 돌을 이용해 쌓은 적석총의 형태는 백제 초기의 무덤과 유사하다. 현재 대부분이 붕괴돼 확실한 구조는 알 수 없다. 마을 주민들은 이 돌무덤 아래 있는 자그마한 저수지를 쌓을 때 이 돌을 사용했다고 한다.

고구려의 무덤형태인 적석총이 이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학자들은 이 돌무덤은 5세기 초 신라가 가야와 왜의 연합세력으로부터 심각한 공격을 받았을 때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5만의 군사를 보냈다는 역사적 사실과 연결해 이 무덤을 설명하기도 한다. 고구려와 관련된 인물의 무덤이라는 것이다. 은현리 적석총이 울산의 고대사회를 복원하는 또 하나의 열쇠인 셈이다.

◆신라 원효대사가 세운 운흥사

적석총을 나와 오른쪽(남쪽) 길을 가면 운흥사지와 무제치늪으로 갈 수 있는 정족산 산행길을 만난다. 이 산행길 초입에 있는 마을은 반계마을이다. 마을을 지나 계곡(반계계곡)을 따라난 좁은 길을 오르다보면 마치 성벽같은 석축을 만난다. 신라 진평왕때 원효가 창건했다는 운흥사 터다. 봄 기운이 완연한 운흥사지 가는 길은 숲 냄새와 산새소리, 물소리가 가득하다.  

운흥사는 창건 후 13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천여 명의 스님들이 수도한 곳으로 통도사보다 그 규모가 컸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가 이곳에 머물며 서생포성의 가등청정을 네 차례나 만나러가서 휴전 회담을 하였으며, 동학의 교주 최제우가 득도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지금 절은 불타 없어지고 주춧돌과 축대, 석조들만이 수풀 속 곳곳에서 자취를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운흥사 터 주변에 흩어져 방치된 부도와 돌 주조 등을 모아 놓은 부도골의 모습.

조선시대 운흥사에서는 많은 불교 경판이 간행됐다. 1672년부터 1709년까지 많은 불경 간행이 이뤄진 것으로 확인된다. 대부분의 사찰 불경목판은 발문(跋文)이 있고, 권말에 간행연월일과 간행장소, 시주질(施主秩)의 기록이 있어, 간행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 운흥사지 목판본에서 나온 기록을 정리해 보면 16종 673판으로 다양한 편이며, 이 목판은 현재 양산 통도사에 보관돼 있다. 

지난 2001년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의 학술발굴조사 결과, 건물터 7동, 흩어져 있는 부도 6기, 수조 4기 등이 확인되었다. 수조는 인근에 자생하는 종이원료인 닥나무를 물에 불리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절터 주위의 계곡은 운흥동천(雲興洞天)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해인사의 홍류동천(紅流洞天)과 함께 경남 지방에서는 손꼽히는 풍치를 자랑했다. 하지만 계곡은 사방공사 등으로 파헤쳐지고, 제방도 만들어졌다. 풍광 좋은 홍류동천은 흔적조차 찾기 어렵게 됐다.

운흥사지의 남쪽 개울을 건너 산길을 5분여 가량 오르면 부도골이다. 이곳에는 운흥사지 일대에서 나온 부도 4기와 수조를 비롯 각종 석재들을 모아 두었다. 고요하다 못해 적막감마저 감도는 곳, 부도 속에 잠들어 있는 이름 모를 선승의 넋을 괜히 깨우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나머지 부도 2기는 계곡 초입의 시적사에 있다. 세속의 땅이 훤히 보이는 곳에 자리 잡은 시적사의 운흥사지 부도는 시 유형문화재 제4호다. 

운흥사 터로 이르는 반계계곡 초입의 시적사에 자리잡은 운흥사지 부도 2기.

◆웅촌 지역 그 밖의 유산들
 
웅촌 지역에는 3,000년 전 살았던 사람들의 선사주거 유적인 ‘검단리유적’이 있다. 울산 골프장을 조성하면서 발견된 이 선사유적은 1990년 부산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한 결과, 능선의 정상부분과 비탈진 면을 감싼 형태의 환호와 환호 안팎에 흩어진 채 분포한 청동기 사람들의 주거지와 건물지 93동이 확인되었다.

주거지 안팎에서는 구멍무늬토기, 돌화살촉, 돌도끼, 방추차, 어망추, 반달모양 돌칼 등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주거지 주변에서 고인돌 2기와 석관묘 1기도 발견되었다. 

검단리유적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환호취락유적으로 사적 323호로 지정되어 있다. 하지만 검단리유적은 발굴조사 후 흙으로 덮은 상태여서 직접 볼 수 있는 것은 없다. 단지 안내판의 그림과 설명을 통해 그 모습을 추정해 볼 수 있을 따름이다. 적어도 3,000여 년 전에 이땅에 살았던 울산인들의 집단 주거지 임에도 유산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울산이라는 지명의 시원이 된 것으로 추정되는 웅상 우불산의 신사 모습. 옛부터 이곳에서는 나라와 울산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례가 열렸다고 전한다.

웅촌 분지를 나와 다시 국도를 타고 울산 쪽으로 가면 나오는 마을이 웅촌면 대대리다. 이곳에서는 지난 1991년과 1992년 부산대박물관이 2차에 걸쳐 발굴한 하대(下垈) 고분 유적이 곳곳에 분포해 있다. 이곳에서 발굴된 세발 달린 청동솥(銅鼎·세발솥)은 웅촌지역에 터를 잡아 번성했던 정치세력이 존재했음을 알려준다. 

대대리 하대마을에서 저리마을 방향으로 시대순으로 형성된 원삼국시대 무덤들이 무더기로 발굴됐다. 무덤의 형태와 철제 무기류, 옥장신구의 출토 유물로 보아 시기를 3∼7세기 경으로 추측하고 있다. 

웅촌과 웅상의 경계지점에는 우불산이 있다. 우불산은 원래 울주군에 속해 있었지만 일제강점기 때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양산시가 된 곳이다. 우불산 자락에는 신사가 남아있다. 우불산신사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우불산의 옛 명칭은 우화(于火)이며, 24 소사(小祀) 중 하나로 신라시대부터 나라의 태평과 국민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해마다 음력 이월에 제의를 올렸다고 전한다. 우불산과 신사 모두 울산의 옛 지명을 담은 소중한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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