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덕왕때 도의선사가 창건한 사찰
통일신라 석탑 양식 석남사 3층 석탑
나라 지키기 위한 간절한 마음 담겨
인왕상·사자·코끼리 새겨진 승탑 눈길
신중도·산신도·독성도 등 탱화 봉안
전설 간직한 쌀바위 등 곳곳 불교유산

통일신라 헌덕왕 시절 도의선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는 울주군 상북면 석남사. 현재 비구니 수도도량으로의 역할을 하고 있는 석남사는 보물인 승탑을 비롯 신라 때 작품인 3층 석탑, ‘신중도’ 등 불교 미술작품 등 찬란한 불교문화 유산이 남아있다. 사진은 대석탑과 대웅전 등 석남사 전경.

영남알프스 가지산 동쪽 자락 석남골에 자리잡은 석남사. 통일신라 헌덕왕 때 도의(道義)선사에 의해 창건된 석남사는 천년이 넘게 자리를 지킨 고찰로 지금은 비구니들의 수도도량 역할을 하고 있다. 

새벽까지 조금씩 이어지던 겨울비가 거짓말처럼 그쳤다. 무거동에서 가지산 입구까지 쭉 뻗은 자동차전용도로를 타고 석남사 입구까지 가는데 고작 20분 남짓으로 충분했다.

가지산을 관통해 밀양으로 빠지는 긴 터널이 생기면서 석남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곳이 됐다. 

석남사 일주문을 지나니 소나무를 비롯 서어나무·굴참나무·가막실나무 같은 키 큰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계곡 옆으로 난 ‘나무사잇길’은 절집까지 700m 정도란다.

겨울인데도 숲은 깊고 그윽하다. 숲을 흔들며 서걱서걱 불어오는 겨울바람에는 봄기운이 가득 실렸다. 

석남사에서 태화강 상류에서 꽃핀 불교문화의 진수를 만나본다. 

울산시 유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된 석남사 3층석탑. 원래 대웅전 앞에 있던 것을 극락전 앞으로 옮겼다.

◆천년 세월 버틴 3층 석탑

석남사 절집은 침계루에서 시작된다. 대웅전을 향하여 들어오는 문 위에 세워진 침계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각집으로 현재의 건물은 1974년 인홍스님이 중건했다고 한다. 

침계루 아래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바로 대웅전 앞 마당이다. 마당에는 대석탑이 우뚝 서 있다. 설핏 보면 경주 불국사의 석가탑을 닮았다. 

대석탑은 창건당시 세워졌다고 전하지만 임진왜란 등으로 대부분 파괴된 것을 현대에 와서 다시 세운 것이다. 

안타깝게도 대석탑은 입구에서 볼 때 대웅전을 가린다. 대웅전 뿐 아니라 탑을 둘러싼 건물들이 모두 그 위세에 눌린 형국이다. 

오래된 탑은 대웅전 왼편 국락전 영역에 있다. 크기가 작아 소석탑이라고 부르지만 진짜 석남사 3층석탑이다. 울산시 유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돼 있다. 통일신라 석탑양식을 계승한 이 석탑은 기단부의 탱주나 3단으로 줄어든 옥개받침 등의 형식으로 보아 제작시기는 9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절의 사기(寺記)에 석남사를 창건했다는 도의(道義)가 나라를 외적으로부터 지키려는 간절한 마음에서 세웠다고 전한다. 

이 탑은 본래 대웅전 앞에 있었으나, 대석탑이 세워지면서 현재 위치로 옮겨 세웠다고 한다. 
기단은 상하 이중기단인데 기단 하대중석에는 각 면에 4구씩의 안상이 조각돼 있으며 하대갑석 상면에는 각형과 호형 2단의 상대중석 받침이 있다. 

옥신석에는 특별한 장엄 장식 없이 양 모서리 기둥만 표현했고 옥개받침은 층마다 4단을 이루고 있다. 옥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하나의 돌로 구성됐고 2~3층 옥신굄과 노반받침은 3단의 각형으로 표현했다. 상륜부는 노반과 복발·앙화·보개·보주 등이 남아 있다. 일부는 후대에 첨가된 것이다. 

석남사 침계루 앞에 놓인 대형 화강암 수조.

◆통일신라시대 승탑 눈길

대웅전과 강선당 사잇길로 빠져 청화당을 뒤로 돌아 계단으로 오르면 보물 제369호인 석남사 승탑이 있다. 산 쪽의 대나무 숲에서 이는 바람 소리가 운치를 더했다.

이 승탑은 통일신라 시대 전형적인 팔각원당형으로 지대석 위에 상중하대로 구성된 기단이 있고 그 위에 옥신석과 옥개석, 상륜부를 올렸다. 지대석은 8각형의 한 돌로 조성했다.

하대석은 8각형인데 한 면씩 교대로 4면에 사자와 코끼리를 양각했다. 지금까지 이를 모두 사자상이라고 보았으나 최근 코끼리상으로 보이는 조각이 있음이 확인됐다.

승탑의 기단에는 부처의 세상으로 통하는 문과 문고리, 인왕상으로 보이는 돋을 새김한 부조가 있다. 

이 승탑은 일제 강점기에 무너졌다가 재건했으나 석재의 위치가 바뀐 것이 있어 1962년 다시 해체 복원했다. 해체 시 기단 중대석 윗면 한가운데서 직사각형의 사리공이 발견됐으나 사리함 등 유물은 남아 있지 않았다.

승탑을 내려 오는 길 석남사 기와지붕 위로 보이는 풍광 또한 절경이다. 침계루 쪽으로 다시 나오면 오래된 화강암 수조가 있다. 높이 90㎝ 폭 100㎝ 길이 270㎝ 가량인 소주는 직사각형인데 모서리 부분을 안쪽으로 꺾고 양쪽으로 곡선의 볼륨을 주어서 한층 단아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고 있다. 제작 시기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로 추정된다. 울산시 문화재자료 제4호다.

창건 당시인 신라시대 고승의 사리를 안치한 석남사 승탑.

◆‘신중도’ ‘산신도’ 등 탱화도 많아

석남사에는 불교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그림(탱화)가 많이 남아있다.

1863년(철종14)에 조성된 신중도가 대표적이다.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는 맡은 여러 신을 그림으로 그려 정법과 도량의 수호를 담아낸 것을 통틀어 신중도라고 한다. 

석남사 신중도 화기에 ‘가지산 석남사에 신중화탱을 새로 조성해 대웅전에 봉안한다'라고 하고 있어 제작 당시부터 대웅전에 봉안됐었던 것으로 알 수 있다. 

석남사 산신도는 서로 엉켜 올라가는 두 그루 소나무 아래에 절벽에 투명한 망건을 쓰고 긴 수염을 길게 늘어뜨리며 인자한 웃음을 짓고 앉아 있는 산신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산에는 많은 동물이 있지만, 호랑이를 당해낼 짐승이 없고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산신과 호랑이를 같이 그린 것이 산신도다. 

독성(獨聖)은 독수선정(스승 없이 혼자서 수행)해 도를 깨달은 분으로 빈두로존자(賓頭盧尊子) 또는 나반존자(那畔尊者)라고도 한다. 석남사 독성도는 흰 구름 사이로 새들이 노니는 소나무를 배경에 가파른 낭떠러지 절벽 위로 흰 눈썹을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나반존자가 긴 주장자를 왼쪽 어깨에 살짝 대고 왼손으로 살짝 잡고 있다. 

석남사 부도암 치성광여래삼존도는 오색구름 사이로 무지개가 넘실거리듯 보이는 배경에 7여래를 비롯한 권속들을 생략하고 좌우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비롯한 삼존상 만을 그리고 있다. 
석남사 산신도는 유형문화재 제33호, 석남사 독성도는 유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돼 있다.

석남사 절집으로 가는 ‘나무사잇길’ 주변에 있는 부도.

◆해오름 유산 가치 충분

절집을 나설 시간, 군데군데 보였던 구름이 대부분 사라졌다. 아쉬운 마음에 뒤돌아서니 겨울 가지산이 이만큼 눈앞으로 다가선다. 

속살을 다 내어놓는 가지산 능선에서 유독 도드라지는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쌀이 샘물처럼 나왔다는 설화의 주인공 ‘쌀바위’다. 

한 스님이 쌀 바위에서 수도할 때였다. 어느 날부터 바위틈 샘에서 물 대신 쌀이 나오기 시작했다. 욕심이 생긴 스님이 문득 떠올린 생각이 있었다. 

샘의 구멍을 크게 만들면 더 많은 쌀이 나올 거라 여긴 것이다. 하지만 샘을 넓히자 쌀은 멈췄고, 다시 물이 나왔단다. 사람들에게 욕심에 대한 경계심을 주기위한 이야기다.

쌀 바위 샘에서 시작된 물길은 석남사 앞 계곡을 거쳐 태화강을 이룬다. 울산사람들은 이 물길에 기대 살아왔다. 

석남사는 울산의 시원이라 할 수 있는 태화강의 최상류에서 천 년 넘게 찬란한 울산 불교문화를 꽃피우면서 울산사람들과 함께했다. 해오름시대 우리가 지키고,  후세에 전할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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