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처우·차별·고용불안…“밉보이다 해고될까 두려워”

근무시간 초과·잡무까지
정규직 전환 기대 좌절
학교 비정규직 차별 일상화
교사·돌봄교사 등 서열 존재
인력 위탁업체 파견도 문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비정규직노동조합 울산지부 김선진 지부장이 지부 사무실에서 학교 비정규직 실태를 이야기하고 있다.

비정규직(非正規職). 말 그대로 ‘정규직’이 아니란 의미다. 우리나라에서 이 문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논란이 되고 있다. 같은 일을 해도 처우는 열악하고, 매년, 혹은 매달, 매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다.

◆불안과 기대… 그리고 좌절

“매년 11월이 넘어가면 불안했어요. 재계약을 안해주면 어쩌나. 일을 하는 내내 거절하거나 항의한 적이 없어요. 밉보이면 잘릴거라 생각했으니까요.”

A(28·여)씨는 수년 전 한 연구소에서 근무했던 때를 떠올렸다.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그가 얻은 첫 직업은 11개월짜리 계약연구원이었다. 연구가 밀리면 하루 12시간을 꼬박 일했고, 주말마다 수없이 불려나왔다. 수당 한푼 없이 그가 손에 쥔 월급은 100만원이 겨우 넘었다.

“잘 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줄 수 있다고 했죠. 저한테도 그 기회가 올 줄 알았죠. 그렇게 기대하고 있었는데, 계약 기간은 더 짧아졌어요. 반년, 세달, 두달…. 그러고선 계약 만료를 통보받았죠.”

한 공공기관의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B(31)씨도 기대를 품고 있다고 했다.

“공공기관이니까 일이 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일들이 쌓여있어요. 직원들의 온갖 잡무도 다 저한테 쏠려요. 그래도 참고 하고 있죠. 잘만 견디면 저도 안정적일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서열화된 조직, 일상화된 차별

“너네 공부 안하면 저렇게 된다.” 한 초등학교 교사가 학생들을 향해 말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아이들을 지도하는 것인데, 그의 손 끝은 어느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곳에는 비정규직 노동자인 돌봄전담교사가 있었다.

학교는 비정규직 문제가 불거진 대표적인 공간이다. 교육기관이지만 비정규직 차별문제가 일상화된 곳이기도 하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비정규직노동조합 울산지부 김선진 지부장은 학교를 “경직되고 서열화된 조직”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통학하고 공부하고 밥먹는 그 공간에는 교사나 교육공무원 같은 정규직만 있는 게 아닙니다. 수많은 직군이 있고 상당수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습니다.”

김 지부장은 그 사이에 서열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누구는 ‘선생님’으로 불리고 누구는 ‘~씨’라고 불렸다. 아이들은 기가 막히게 그 차이를 알아낸다고 했다.

그는 처음 노조를 만들게 된 이유에 대해 “처우보다 자존감을 되찾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더는 유령취급을 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 일인데도 의견 한마디 내지 못하고,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면서도 없는 사람 취급을 받으면서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위탁’, 새로운 형태의 비정규직 양산

2년여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13년 노조가 만들어졌고, 그 해 울산에서 처음으로 ‘교육공무직’이라는 명칭이 등장했다. 본래 각 학교장이 고용했던 비정규직을 시교육감 직고용 체제로 바꾸면서 고용불안을 일정 부분 해소하려 한 것이다. 현재 울산지역 교육공무직은 40여개 직군의 3,000여명으로 추정된다.

노조의 등장은 학교에서 말 한마디 꺼내기 어려웠던 이들의 숨통을 틔웠다.

그런데 최근 4~5년 사이 또 다른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위탁’ 시스템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학교는 더이상 비정규직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추가로 필요한 인력을 ‘위탁업체’와의 계약을 통해 파견 형식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지부장은 “학교의 고용형태는 점점더 다양해지고, 그만큼 더 다양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계속해서 양산되고 있다”면서 “고용의 질이 떨어질수록 우리 미래인 아이들에게 제공되는 교육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이들의 교육이 이뤄지는 학교는 어느 곳보다 평등하고 사람에 대한 존중이 토대가 돼야 한다”며 “학교가 아이들에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부터 가르쳐선 안된다”고 덧붙였다. 

■사내 하청업체 ‘원청의 비정규직이냐, 하청의 정규직이냐’

“같은 공정 담당… 불법파견” vs “업무공간 분리된 하도급”

현대중공업 등 10여년째 논란
협력사 폐업·노동자수도 급감
비정규직 고충상담 하루 30∼40건
임금·퇴직금 체불 문제 상당수
고위험 업무분야 비정규직 양산

동구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박경만 센터장(오른쪽)과 김영균 상담실장이 조선업 사내하청문제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사회적 구조를 지적하고 있다.

제조업의 도시 울산이 가진 ‘비정규직’ 문제가 있다. ‘사내하청(협력)업체’ 노동자 이야기다. 이들을 원청의 비정규직으로 봐야하는지, 하청(협력)업체의 정규직으로 봐야하는지에 대한 논란은 진행형이다. 업계 불황으로 ‘구조조정’ 한파를 맞고 있는 조선업의 상황에서 들여다보고자 한다.

◆노조 “정규직과 같은 공정” vs 회사 “분리된 물량에 대한 하도급”

원청의 비정규직이냐, 하청업체의 정규직이냐를 두고 노사의 입장은 확연히 다르다.

전국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이형진 사무장은 “예전에는 현대중공업의 정규직과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한 데 뒤섞여서 근무했고, 지금도 근무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자동차와 같은 라인 공정은 아니지만, 정규직과 같은 공정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불법 파견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노조는 사내하청업체에 대해 “원청에 인력을 공급하는 인력사무소”라고 지적했다.

반면 현대중공업은 “정규직과 협력(하청)업체 직원들의 업무 공간이 완전히 분리돼 있다”면서 “조선업은 ‘건축’에 가까운데, 사내협력업체와는 일정 물량을 하도급하는 형식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직원 고용 여부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논란은 2000년대 초반부터 이어지고 있다. 노조는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지위 확인 소송을 다시 제기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임금·안전 모두 불안”

조선업 경기 한파로 사내하청업체는 직격탄을 맞았다. 300개를 웃돌던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는 지난해 말 기준 251개로 줄었다. 4만여명이던 업체 노동자 수도 같은 기준 2만7,000여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올 초부터 4,000여명의 노동자가 더 떠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동구 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는 매달 30~40건의 조선업 노동자들의 고충을 처리하고 있다.

센터 김영균 상담실장은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수많은 차별을 겪고 있다고 했다. “정규직인지, 하청 직원인지, 명찰 색만 봐도 알죠. 퇴근길에 말끔한 출퇴근복과 흙이 잔뜩 묻은 작업복을 그대로 입고 퇴근하는 모습도 다르죠.”

그 중에서도 임금과 안전 문제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하청업체 중에서는 안전 장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다보니 동구 전하시장만 가도 직접 안전장비를 구매하는 노동자들을 볼 수 있어요. 산재를 당해도 여러 불이익 때문에 ‘공상’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요즘은 업체가 힘들어서 폐업하다보니 임금이나 퇴직금 체불 문제도 상당수죠.”

박경만 센터장은 “사내하도급 계약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비전문적인 분야에 대해 값싼 인력을 공급받으려는 하도급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라며 “이는 숙련된 기술자를 확대하고 해양플랜트의 고부가가치 산업을 이끌어야 하는 미래 지향적 관점에서 맞지 않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는 “도시가스 검침, 서비스센터, 콜센터 등 처우는 낮고, 노동 강도는 세고 위험도는 높은 업무분야에서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있다”면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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