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칼럼-맥(脈)으로 모든 병 진단 가능? 
 

“제가 무슨 병에 걸렸지요?”

진료를 처음 받으러 오신 환자분이 맥을 잡고 있는 필자에게 물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맥진만으로 모든 진단을 다 하는 것으로 오해하신다. 한의학에서 진찰법은 맥진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의 진단은 망문문절(望聞問切)이라고 해서 보고, 듣고, 묻고 그리고 짚어보고.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면 망(望)은 관형찰색(觀形察色)이라 해서 신체 외형이나 피부 색택의 관찰을 통해 정신활동 상태, 기혈(氣血)의 성쇠 및 사지 근육계의 불균형 등을 평가한다. 또 설진(舌診)이라고 해서 혀의 색깔과 설태(舌苔)로써 심혈관계, 소화기계의 기능을 가늠한다. 문(聞)은 귀로 듣는 소리와 코로 맡는 냄새를 통해 환자 몸 상태에 대한 정보를 취득한다. 문(問)은 환자가 불편해하는 주증상과 평소의 생활 및 정황에 대해 전반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스트레스가 심한지, 과로를 자주 하는지, 대소변, 소화, 수면, 수족냉증, 발한 및 구갈 등의 구체적인 상황을 정확히 알아가는 과정이다. 절(切)은 앞서 언급한 맥진(脈診)과 복진(腹診)이 있는데 맥진은 맥파의 강약, 속도 및 부침(浮沈) 등으로 기와 혈의 흐름을 진찰하고, 복진은 환자를 편안하게 눕힌 상태에서 흉복부의 담음(痰飮), 어혈(瘀血) 등 일명 병독(病毒)의 위치를 찾는 진찰법이다.

현대에 이르러 복진이 크게 관심을 끌고 널리 애용되고 있는데, 이는 과거 일본에서는 대단히 발달했으나 우리나라 전통사회 특성상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시대상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각광받게 된 것이다. 또 한의학적 이론에 따라 과학기술을 이용해 개발된 맥진기, 양도락 및 설진기 등이 객관적인 검사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진찰 과정을 통해 팔강(八綱) 즉 표리(表裏), 한열(寒熱), 허실(虛實) 그리고 음양(陰陽)의 대강을 잡은 후, 몸 전체의 상호 연관 시스템에 기반을 둔 에너지<氣血> 상태의 특성에 따라 체질, 장부 변증(辨證) 등을 하게 된다. 그래서 특정 국소부위의 이상을 중심으로 한 질병 인식과 한의학의 거시적 관점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선생님. 제 몸에 염증이 있는지 맥으로 진단할 수 있나요?” 하고 묻는 환자에게 필자는 “미안합니다. 저는 그렇게 훌륭한 의사가 아니라서 맥으로 염증이나 골절을 진단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기혈의 부족과 충만, 불균형과 부조화를 진단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접근이 유용한 경우가 많은데, 예를 들어 눈이 피로하면 한의학에서는 간과 연관시켜서 눈으로 가는 기혈의 흐름을 개선시키는 치료를 합니다. (양)의학은 눈 구조의 변화를 살펴 특정 문제를 치료하지요. 많은 사람들이 병원에 가도 뾰족한 답을 얻지 못하고 우리를 찾아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습니다. 인류의 과학과 의학이 괄목할만하게 성장했지만 완전무결하지는 않지요. 그러니 지금도 새로운 것이 계속 개발되고, 발전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인체를 다양한 관점에서 진찰하고 가장 정확한 진단을 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고 말한다.

1973년 제정된 한의학에 쓰이는 고유한 한의병명, 병증, 사상체질병증 등의 한의질병분류는 2010년에 통합된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에 연계되어 의사, 한의사 및 치과의사라면 이제 2010년 기준에 따른 질병 분류를 하여야 한다. 몸과 병리에 대한 나름의 이론 체계, 치료 방식의 차이에 관계없이 질병의 진단에 관해서는 한의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상기의 분류체계를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아직 한의사가 이런 진단을 위해 마땅히 사용해야 할 진단 의료기기를 이용하는 데는 적지 않은 제한이 있다. 마치 무게를 측정하라고 하면서 저울을 주지 않는 것과 같은 꼴이다. 이것은 대단히 비상식적이고 비효율적인 상황이며, 하루빨리 시정되어야 할 사안이다. 또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같은 분류에 속하는 질병이라도 한의학적으로 그 원인을 찾아 다른 치료를 하는데, 그 치료 결과를 객관적으로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진단 의료기기 사용은 꼭 필요하다. 더 정확한 진단, 더 적합한 치료를 받는 환경을 만드는데 서양의학, 한의학의 구분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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