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족 역사는 9천년” 등
삼국사기·유사와 다른 내용 언급
현재 우리 역사학계에서 고대사의 내용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해 교육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최근 종래의 이런 고대사의 내용과 상당히 다른 내용의 재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고대사 내용이 언론에서 많이 언급되고 있다.

재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고대사의 쌍벽을 이루는 책자가 박제상의 『부도지(符都誌)』와 계연수가 엮은 『한단고기(桓檀古記)』다. 두 책자는 1980년대 중반 김은수씨가 주해·번역했다.
필자가 수년간 연구해 『신라만고충신 박제상』이란 울산출신의 박제상의 일대기를 집대성한 장편역사소설을 작년 가을에 발간함에 있어 두 책자를 참고했다.

전국적으로 언론기관 등에서 위 두 고대사 내용을 많이 설명하고 있기에 울산시민들도 기본적으로 재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고대사의 내용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두 책자의 고대사 내용을 장황하게 모두 설명할 수는 없어, 그 주요한 줄거리라 할 수 있을 ‘우리 민족의 이동경로’만 설명했다.
당초 한(桓)민족은 B.C 7천 년 전 중앙아시아 파미르고원에서 태어나 천산산맥의 천산 동북쪽 기슭에서 한인(桓因) 천제(天帝)가 한국(桓國)을 건국해 국가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은 7명의 한인이 3,300년간 다스렸는데 그 영역은 12분국으로 나누어 다스려졌고 남북이 5만리요, 동서는 2만리나 됐다고 한다.
한인이 삼위산(三危山)과 태백산(太白山)을 내려다보고 모두가 가히 홍익인간할 곳이라 하면서 그 아들 한웅(桓雄)을 태백산(중국 서안 소재)에 내려다보냈다. 한웅이 태백산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내려와 신시(神市)를 베풀고 ‘배달(倍達)나라’를 건국해 18명의 한웅이 약 1,600년간 활동했다. 한웅의 건국일이 음력 10월3일로 현재의 개천절이라 하는데 양력이 아니라고 전한다. 단군조선의 개국일을 개천절이라 기념한다는 설도 있다.
14대 한웅인 자오지(慈烏支,치우)천왕이 동쪽의 산동성 태산(泰山) 근처의 청구(靑丘)에서 ‘구례’라는 나라를 건국해 374년을 더 지속했는데, 이 구례라는 나라도 배달나라에 포함됐다. 당시의 중국 대륙은 60여 민족이 나뉘어 살았기에 우리 한족(桓族, 동이족)의 문화의 영향으로 황하문명과 대문구(大汶口)문명이 건설됐다고 한다.
중국 서북방 지역이 점점 사막화돼 가자 산을 좋아하는 우리민족은 산이 많은 한반도로 들어왔다고 한다. 산동성 지방에서 동북쪽의 만주 하얼빈지역(완달산(完達山) 일원)으로 이동해온 우리민족은 한웅의 후손인 단군(檀君)이 (고)조선을 건국해 47명의 단군이 2,100년 정도 통치했다. 중국 대륙이 한(漢)나라에 의해 통일되어 단군조선이 B.C 238년에 한나라에 패망됐다.
그 뒤 북부여(北夫餘)가 6명의 왕에 의해 다스려지다가 한국의 후손들은 결국 한반도로 들어와 한국의 유민들이 한국의 광복을 위해 세운 나라들이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삼국인 것이다.
강단사학자들은 위 고대사 두 책을 증명이 안 된 위서(僞書)라고 하지만 위와 같은 자료에 의하면, 우리 민족의 역사는 반만년이 아니라 약 9,000년(거의 1만년)이다.
그리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에 기록됐듯 우리민족은 한반도나 만주에서 자생한 작은 규모의 민족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 지도에도 우리 민족이 이동해온 돈황의 삼위산과 서안에 태백산이란 지명이 분명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한인, 한웅, 단군은 한 사람이 아니었고 교황이나 대통령 같은 보통명사로 제사장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들 두 책에 실린 고대사 내용들은 고려시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가 나오기 전에는 지식층에서 일반적으로 알고 있었던 내용인 듯하다. 책 내용을 이해하기가 다소 어려우니 그 내용을 쉬이 풀이한 황종국 판사의 『의사가 못 고치는 환자는 어떻게 하나?』(제3권·우리문화)도 함께 읽는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