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스터드 팩토리 옥상에서 바라본 딕베드(Digbeth) 지구 전경. 이곳에 남아있던 정비소 등 빈 상점은 새로운 작업장으로 변하고 있다. 박수지 기자 suzi0611@iusm.co.kr

조선업 불황의 비극은 현실화 됐다. 그 여파는 울산 전역에 걸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꺼지지 않을 것처럼 환한 불을 밝히던 동구는 극심한 경기침체를 앓고 있고, 거리의 집들은 텅텅 비고 있다.

이 가운데 전국이 도시재생 뉴딜사업으로 뜨겁다. 정부 기조에 따라 울산도 기존 시가지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기 위한 준비 태세를 갖추는 중이다.

이미 세계적으로 호황을 누리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도시들은 재생프로젝트로 많은 선례들을 남겼다. 이들 프로젝트의 공통사항은 ‘지역문화’가 꽃필 수 있는 문화예술공간 조성이었다.

이제 울산도 기존의 인프라를 활용한 문화예술레지던시로 일어서는 도시, ‘아티스던시(Art+Residency) 시티’를 꿈꿀 때다.

본지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아트레지던시의 현주소와 함께 울산의 나아갈 방향 등을 취재해 모두 6차례에 걸쳐 보도할 예정이다.

 

(1)전략적 ‘예술문화’도시 영국 버밍엄

‘커스터드 팩토리’ 청년 창조공간 제공
 500개 문화예술 레지던시 공간 탈바꿈
 1․2차 대형 프로젝트 도심 활기 되찾아
 소형 창작기업 모여 ‘스캇하우스’ 형성
 뉴미디어 비즈니스 중점 ‘그린하우스’
 주변 빈 상점들도 새로운 작업장 변모
 갤러리․스튜디오 등 생활시설 갖춰
 지역 청년 주도 ‘가장 젊은 도시’ 거듭

커스터드 팩토리에는 옛 공장건물과 현대식 건물이 서로 공존하고 있다. 내부에는 여러개의 방으로 개조돼 창조기업과 젊은 창업가들이 입주해 있다. 박수지 기자 suzi0611@iusm.co.kr

현재 울산은 경제적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조선업 불황에 따른 경기침체와 이에 따른 인구유출 등, 1인당 개인소득 1위 도시 왕좌마저 내주며 그 위상에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 가운데 전국이 ‘도시재생 뉴딜사업’으로 뜨겁다. 그 기조에 울산도 노후화되고 쇠락한 기존 시가지에 숨결을 불어넣는 작업에 잇따라 동참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호황을 누리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국제도시들은 재생프로젝트를 통해 성공적인 재기 무대를 가졌다. 이들 프로젝트의 핵심은 ‘지역문화’가 꽃필 수 있는 공간 조성이었다. 기존의 지역 인프라를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되살려낸 거다. 이제 울산도 지역의 가치와 특성을 살린 문화예술 레지던시로 일어서는 도시, 이른바 ‘아티스던시(Art+Residency) 시티’로 화려하게 재도약해야 할 때다. 본지는 지역문화를 반영한 아트레지던시가 잘 조성돼 있는 국내·외 도시들을 찾아 울산에 접목할 수 있는 방안은 어떤 것이 있을지 살펴본다. 편집자 주

◆도심 흉물에서 지역발전의 산실로 거듭

영국 제2의 도시 버밍엄(Birmingham). 석탄과 철이 풍부했던 버밍엄은 운하와 철도가 잇따라 개통하면서 산업혁명 당시 제철공업의 중심 도시로 급속히 성장했다.

하지만 1980년대 초, 버밍엄은 산업구조의 고도화 전략에 실패했고 탈산업화마저 좌절되며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 길에 선 버밍엄은 예술문화에서 해답을 찾았다. 당시 버밍엄 시의회는 새로운 문화정책을 만들어 패션, 현대연극, 출판 등 청년이 중심되는 예술문화사업을 적극 지원했다. 이른바 ‘예술문화 전략’이었는데, 이를 통해 민간기업과 비영리단체 등이 손을 맞잡고 새로운 문화산업과 일자리를 창출하며 성공적인 도시재생을 이뤄냈다.

이와 일맥상통하는 것이 바로 버밍엄 딕베드(Digbeth) 지구 내에 위치한 ‘커스터드 팩토리’(Custard Factory)다. 커스터드 팩토리는 계란이 없는 커스터드를 발명한 알프레도 버드(Alfred Bird) 경이 1865년에 세운 곳인데, 영국의 제조업 쇠퇴 이후 이곳 또한 문을 닫으며 도심 흉물로 남게 됐다.

이후 커스터드 팩토리의 불이 다시 켜진 건 1992년 1월. 당시 버밍엄도 청년실업률이 높아 집에서 노는 청년들이 많았던 상황이었다. 이에 청년들을 위해 창조적 공간을 만들고자 발 벗고 나선 이가 있었다. 바로 베니 그레이(Bennie Gray)라는 부동산개발업자였는데, 그는 커스터드 팩토리를 500여개의 작업실이 들어설 수 있는 문화예술 레지던시 공간으로 탈바꿈, 청년들에게 값싼 가격으로 임대했다.

그 결과, 우범지역이었던 공장 터에는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이들의 기운은 죽어버린 도심에 활기찬 숨결을 불어넣었고, 이는 침체된 지역경기를 일으키는 단초가 됐다.

현재 커스터드 팩토리는 크게 1·2차에 걸친 대형 프로젝트를 전략적으로 진행 중이다. 1차는 수백 명의 미디어 회사와 예술가, 소규모 창작기업이 모여 있는 ‘스캇하우스’(Scott House)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초반 과정에서만 300여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성과를 낳기도 했다. 2차는 2002년부터 지금까지 ‘그린하우스’(Greenhouse)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F1 게임회사부터 겐틀레이 건축회사까지 뉴미디어와 미디어 비즈니스에 중점을 둔 프로젝트를 진행 하고 있다.

그린하우스는 지역의 스타트업을 위한 공간인데, 이곳에서 기반을 마련한 후 본사로 이동하는 시스템이다. 이뿐만 아니라 공장 주변에 남아있는 정비소, 타이어 가게 등 빈 상점들까지 새로운 작업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현재는 스캇하우스 3층을 리모델링 중이며, 웨딩홀을 비롯한 각종 생활시설들이 들어설 계획이다.

딕베드 일대에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낡은 벽돌과 100여년 전 만들어진 굴뚝이 솟아있다. 박수지 기자 suzi0611@iusm.co.kr

◆지역청년 주도 일자리 많은 도시로 발돋움

지난 9월 11일에 찾은 커스터드팩토리 일대. 부슬비가 내려 햇빛 구경조차 어려운 오전이었지만 이곳만큼은 살아있는 느낌이었다. 건물 외부 곳곳에는 괴의하다고 느껴질 만큼 화려한 그래피티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도 그럴 것이 버밍엄 그래피티 축제가 얼마 전 이곳에서 성대하게 열렸다고 한다.

특히, 골목에서는 백팩을 메고 편한 복장으로 출근하는 청년들, 사다리에 올라타 작업을 진행 중인 작가들도 쉽게 마주칠 수 있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조각을 하고 있던 작가는 “젊은이들이 많은 곳인 만큼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돼서 좋다”며 “이 곳에서 작업한 작품을 바로 옆의 회사에 내다팔 수 있고 이런 점들이 매력적인 것 같다”고 전했다.

이윽고 매니저를 만나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바깥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각 스튜디오에서 작업 중인 청년들의 모습은 진중했고, 여러 개의 방을 나눠 입주해 있는 업체 직원들은 업무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어 매니저의 제안에 따라 건물 옥상에 올라가니 공장 일대가 한 눈에 들어왔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낡은 벽돌과 100여년 전 만들어진 굴뚝 그리고 유리창으로 지어진 현대식 건물이 한데 어우려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옥상 한 쪽에서는 입주작가가 도시 양봉을 진행 중이었는데, 여기서 나온 밀랍으로 제품을 생산한다고 했다. 이곳 카페, 갤러리, 댄스 스튜디오, 무대, 극장까지 각종 생활시설은 긴밀한 파트너십을 맺으며 거대한 청년커뮤니티를 이루고 있었다.

딕베드 지구 관계자는 “커스터드 팩토리의 프로젝트가 최종 완료되고 나면, 산업혁명 당시 수천 명의 근로자가 이 지역에 몰렸던 것처럼 당장 1,000여개의 청년일자리가 새롭게 창출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 앤드류 박 커스터드팩토리 온라인홍보팀 매니저
 

독특함 무장한 ‘커스터드팩토리’
지역사회 힘 모아 레지던시 구축
버밍엄 지역 청년일자리 창출 큰 성과
앤드류 박 커스터드팩토리 온라인홍보팀 매니저. 박수지 기자 suzi0611@iusm.co.kr

“지역사회 각계각층의 힘을 모으는 것이 중요합니다. 독특함으로 무장한 커스터드팩토리는 그 덕분에 탄탄한 레지던시 구축은 물론 지역 전체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커스터드팩토리 소속 앤드류 박(사진) 매니저는 커스터드팩토리의 핵심 운영방안과 아티스던시 시티로 거듭나기 위한 조언을 해달라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커스터드팩토리는 계속 확장해 나가고 있고, 그 가운데 구성원들 모두 지역성과 혼합된 이 공간만의 특색을 가장 중요시한다”며 “이 때문에 이 곳의 가장 큰 원동력은 독특하고 별나다는 뜻의 ‘퀄키’(Quirky)라는 한 단어로 축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커스터드팩토리는 현재 버밍엄 지역청년일자리 창출에 큰 효과를 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곳은 문화예술뿐만 아니라 마이크로머신을 만드는 게임프로그래밍 회사, 통신앱을 개발하는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등 창조기업이 다수 입주해서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지역대학생들은 업체들과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거나 교육프로그램 등에 참여하면서 졸업 후 바로 취업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공업도시였던 버밍엄과 울산의 모습이 흡사하다는 취재진의 설명에 깊이 공감하며 “짧은 시간 내에 눈에 보이는 것을 만들어 내려고 한다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트레지던시를 통해 도시를 성공적으로 재생시키기 위해서는 의회, 기업, 비영리단체 등 각계각층의 적극적 펀드 활동이 가장 중요하고, 장기적 안목을 갖는 것과 다양한 사람들을 모을 수 있도록 대내외적으로 공간을 참신하게 알리는 방안도 구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영국 런던 / 이다예 기자 yeda0408@iusm.co.kr
사진=박수지 기자 suzi0611@iu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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