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다시, 울산‧사람‧바다
`무인화(無人化)' 과도기에 선 노년층

 최저임금 인상으로 패스트푸드점‧편의점 등 오프라인 매장 무인화 가속도
 스마트폰 사용 신세대 어르신도 너무 많은 메뉴‧복잡한 선택 방식에 당황
`고령화시대' 안내직원 배치 등 배려‧맞춤형 정책 마련 공존 방안 찾아야

어느 날 등장한 ‘주인 없는 가게’는 우리사회의 양심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됐다. 껌 값 500원을 제값대로 지불할지는 손님의 선택이었고, 가게에는 “양심을 받겠다”는 현금바구니만 덩그러니 있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의 무인점포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모습과 방향성을 가진 채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특히,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되면서 오프라인 매장의 ‘무인화’(無人化)는 더욱 앞당겨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패스트푸드점, 편의점 등은 무인화 서비스를 빠르게 도입하며 과도기적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변화에 지금의 노년층은 당황스럽다. 초고령화 시대 진입을 앞두고, 무인계산대를 통해 ‘불고기버거 세트’를 주문해야하는 상황은 난처하기만 하다. 노년층의 디지털 소외를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령자들이 만난 ‘무인화’, 이들이 친해지기 위해서는 우리사회의 적극적 상생방안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편집자 주        

지난달 31일 오후 울산 남구의 한 패스트푸드 무거점에서 60대 고객이 무인주문계산대로 주문을 넣고 있다. 이다예 기자 yeda0408@iusm.co.kr

#낯선 ‘키오스크’ 앞에서 까막눈 되자 ‘당황’= “거 참 헷갈리네. 복잡해서 뭐가 뭔지 하나로 모르겠어. 젊은 사람들이야 한번만 해봐도 알지, 나이 든 사람들은 할 때마다 새롭지. 큰 화면을 터치하는 것도 어색해.” 

지난달 31일 오후 울산 남구의 한 패스트푸드 무거점에서 만난 이모(남·62) 씨는 난처한 얼굴로 ‘키오스크’(Kiosk, 무인주문계산대) 앞에 섰다. ‘와퍼세트’에 ‘치즈스틱’을 추가해보라는 기자의 주문에 이 씨는 무인주문계산대 화면을 이리저리 손대봤다. 눈치껏 첫 화면의 ‘주문하기’를 눌러 전체 세트메뉴를 불러낸 이 씨는 햄버거 세트 메뉴판을 찾아내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평소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그가 화면터치에는 불편함이 없을 것이라 장담했지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워낙에 메뉴가 다양한 탓도 있고, 이런저런 화면을 계속 넘기다보니 뜻하지 않은 감자튀김과 치킨너겟 등이 추가된 거다. 

원치 않는 상황이 발생하자 당황한 이 씨는 “삭제는 어떻게 하는 거냐”며 중얼거렸다. 그는 기자의 도움을 받으며 ‘뒤로가기’에 해당하는 화살표를 찾은 뒤, 불필요한 메뉴들을 삭제했다. 그는 “여기 결제도 셀프주유소처럼 하면 되냐. 식당에서는 사람한테 주문하는 게 훨씬 나은데, 사람이 주문을 안 받는다고 하니 어쩔 수 없다”며 수차례 시도 끝에 카드결제로 주문을 완료했다. 

이날 이 매장은 무인주문계산대 2대와 ‘키오스크로 주문하면 더 빠르게 주문할 수 있습니다’는 실내입간판을 설치, ‘셀프오더’(Self Order)를 기본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매장에는 노년층 손님들도 몇몇 있었지만 대부분 직접 대면주문을 이용했다. 

세븐일레븐 시그니처 롯데시티호텔 울산점 매장. 로봇 `브니'가 고객들을 응대하는 신개념 무인 편의점이다. 울산매일 포토뱅크

#최저임금 인상, ‘무인화’를 앞당기다= ‘키오스크’로 대표되는 무인화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키오스크 도입이 활발한 업종은 버거킹, 롯데리아, 맥도날드 등 패스트푸드점인데, 버거킹은 전국 310여 매장 중 210여 곳, 롯데리아는 전국 1,350여 매장 중 780여 곳, 맥도날드는 전국 400여 매장 중 250여 곳에 무인주문계산대를 설치했다. 

특히, 울산에서는 지난해 10월 24일 롯데시티호텔 울산점 1층 로비에 로봇 ‘브니’가 고객들을 응대하는 신개념 무인편의점 세븐일레븐 시그니처 4호점이 문을 열어 눈길을 끌었다. 유통업계는 젊은 세대의 편리함과 온·오프라인 매장의 장점을 고려할 때 키오스크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단언했다. 롯데리아 관계자는 “젊은 고객들은 편안하게 혼자 주문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비대면 서비스가 활발해진지 꽤 오래됐다”며 “덩달아 정보기술까지 발전하면서 롯데리아 역시 매장에 이 같은 추세를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무인화 돌풍은 최저임금 인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지난 2017년 6,470원이었던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2018년 7,530원까지 올랐고, 2019년에는 지난해 대비 10.9% 인상된 8,350원으로 확정된 상태다. 

지난 2년간 29%에 이르는 인상률을 보이면서, 업주들은 인건비 부담을 피할 수 없게 되자 자연스레 무인주문계산대로 눈을 돌렸다. 실제로 소상공인연합회가 발표한 2018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소상공인 영향실태조사’를 살펴보면, 조사대상 사업장 1,204곳 중 17%가 인건비 부담을 느끼며 17% 가까운 곳이 직원을 감축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 따르면 실제 키오스크를 매장에 설치하면 아르바이트생 2명 가까이 줄어 한 대당 300만원의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다. 키오스크 구입비가 1대당 최소 400만원, 대여비가 1대당 최소 20만원임을 감안하면 인건비 10분의 1을 기계 유지비로 운영할 수 있다는 거다. 최저시급 7,530원에 일일 최대 7시간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의 3일치 근무 임금으로 키오스크를 한 달간 쓸 수 있는 셈이다. 한 영세사업자는 “처음에는 꽤나 부담스러운 금액이지만, 초기비용만 마련하면 꾸준히 사용 가능해 장기적으로는 이득을 볼 수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셀프오더’(Self Order)를 권장하는 한 패스트푸드점의 실내입간판. 이다예 기자 yeda0408@iusm.co.kr

#무인화 속 ‘디지털 소외’ 심화에 “공생안 마련 절실”= 하지만 이 같은 변화에 노년층들은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무인화로 인해 이른바 ‘디지털 소외’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거다. 이는 2026년부터 초고령사회(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이 전체인구의 20% 이상인 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는 현재 직면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미 급속한 노인인구 증가에 따라 충남 홍성군(22.8%), 인천 옹진군 대청면(32.9%) 등 전국 농·어촌 지역들은 초고령화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의 `2017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55세 이상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일반 국민 평균수준 100%)은 58.3%에 불과했다. 이중 70대 이상은 25.1%로, 현저히 낮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매장 직원과 직접 대화하지 않고 기계를 통해 주문·결제까지 해야 하는 시스템은 노년층의 소비를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 식품유통공사 등이 발표한 ‘2019 외식소비 시스템’ 키워드로 ‘비대면 서비스화’가 꼽혔을 만큼, 무인화 서비스는 이전보다 더 깊숙이 침투할 전망이다. 실제로 패스트푸드점과 같은 식당뿐만 아니라 영화관, 마트, 기차역 등 업계 곳곳에서 키오스크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며, 디지털 소외 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무인화 과도기에 서 있는 노년층을 위해 배려와 정책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성수 의원은 “정부 차원의 무인 단말 설치 현황, 접근성 보장 여부 등에 관한 전반적인 조사를 실시하고 자세히 분석해 정책에 반영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울산시노인복지관 관계자는 “급속도로 변하는 사회모습에 노인들도 발 빠르게 적응할 필요가 있다. 몇몇 어르신들은 무인화기계 사용을 연습하며 능숙하게 이용하는 분들도 있다”면서도 “이들의 특성을 고려한 무인화 시스템 도입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노인들과 젊은이들이 함께 공존하기 위해서는, 과도기에 선 노인들을 돕기 위한 접근법을 마련하고, 매장별로 키오스크 주문을 도울 수 있는 인력을 배치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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