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애기 농장 박길선 대표

작은 밭에 소 두마리 '소박한 출발'

취미로 하던 '꽃차'에 주목

적은 비용으로 도전한 고가의 취미

건조기 · 전기 팬 하나면 '가공' 가능

울산 울주군 두서면 선필마을의 유일한 30대. 봄에 핀 꽃을 따다 마을 입구 농막에서 사부작사부작 ‘뭔가’를 하는 처자가 있다. 중구의 대표 캐릭터 ‘울산큰애기’의 ‘원조’였다는 ‘큰애기 농장’ 박길선(33·여·사진) 대표다.
박 대표는 그야말로 ‘새내기’ 농부다. 학창시절부터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공연기획 일을 하다 지난해 3월 농업에 발을 들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용문화제에 ‘10대들의 무대’를 꾸몄던 적이 있었어요. 마냥 재미있어서 열정을 쏟아서 일을 했는데, 그러다 어느새 공연기획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직업이 되고 나니, 책임감과 부담감이 너무 커졌어요. 전국 곳곳을 떠돌아다니면서 공연을 기획했고, 무조건 잘돼야 한다,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너무 컸어요.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지쳤어요. 결국 2014년에 그만뒀죠.”
이후 4년여 동안 박 대표는 이른바 ‘백수’ 생활을 했다. 그 기간이 길어질수록 눈치가 보였고, 선필마을의 할머니가 가꾸던 작은 감자밭이 생각났다. 작은 밭에 소 두 마리. ‘큰애기농장’의 소박한 출발이었다.
박 대표는 평소 취미로 하던 ‘꽃차’에 주목했다.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었지만, 건조기와 전기팬 하나만으로 가능한 ‘가공’이었다. 적은 비용으로 ‘도전’해볼 수 있는 것이었다.
“꽃 생화 한봉지에 몇만원씩 하는데, 그렇게 보면 ‘꽃차’는 사실 고가의 취미였죠. 이걸 제가 직접 키우면 훨씬 저렴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기특한 생각에도 현실은 쉽지 않았다. 작은 밭에 팬지와 캐모마일을 심었는데, 두 고랑에 희비가 갈렸다. 손길 한번 주지 않아도 풍성하게 핀 팬지와 달리 캐모마일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고 했다.
“진드기에 엄청 약하더라고요. 식용으로 키우는 거라, 약을 쓰지도 못하는데 하룻밤 사이에 잎이 새까맣게 변할 정도였어요. 어디서 식초를 뿌리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종일 쪼그리고 앉아서 식초를 뿌렸는데, 다음날 애들이 다 녹아(?)버렸더라고요.”

 

1년 동안 30여 품종 '도전'

꽃시장·대중매체 정보입수 한정적

씁쓸한 패배의 '맛' 보기도

꽃만 심었던 것은 아니었다. 농업을 결심한 뒤 박 대표가 지난 1년 동안 시도한 품종은 30여가지에 달한다. 그 중에서는 씁쓸한 실패의 맛을 본 것도 적지 않았다.
“미인고추를 심었던 적이 있는데, 이게 하우스용인지도 모르고 노지에 심었던 거죠. 할머니도, 마을 어르신들도 ‘미인고추’라는 품종 자체를 잘 모르셨고. 이게 잘 될 리가 없었죠. 초당옥수수도 200평정도 심었는데 옥수수 대가 딱 하나 올라오더라고요. 옥수수 3개 수확했어요.”
박 대표는 꽃시장과 대중매체를 보며 시기와 유행을 파악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정보를 얻는 곳이 그만큼 한정적이라는 말이다.

“꽃시장에 모종이 나오면 밭에 그 꽃을 심어요. 다행히 동네가 해발 400m로 시내권보다 지대가 높고, 그만큼 기온도 낮아서 시기적으로 잘 맞더라고요. TV 건강프로그램을 자주 보고, 언급되는 품종을 고르기도 해요. 새싹보리 같은 것들은 찾는 분들이 꽤 많아요.”
그래도 ‘열정’ 만큼은 뒤지지 않는다. 레몬을 키워볼까 싶어 제주도 레몬연구소에 가기도 했다. 하우스를 설치해도 두서면 선필마을의 기온에서 레몬을 재배하는 것은 힘들다는 결론을 얻으면서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최근에는 고구마줄기잎차도 만들어봤는데 호응이 긍정적이다. 수원에서 열린 전국으뜸농산물대회에서 농촌진흥청장상을 받기도 했다.
박 대표는 아직 정식으로 2차 산업을 시작하지 않았다.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청년창업농’으로 주어지는 3억원 융자도 받지 않았다. 재배한 농산물과 가공한 ‘꽃차’는 로컬푸드 판매점이나 지역 장터 등에서 판매하고 있다. 생계를 꾸릴 정도의 매출은 내지 못했다.
“아직 확신이 들지 않았어요.. ‘꽃차’를 계속 하는 게 맞는지, 다른 아이템을 찾아야 하는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하는 게 솔직한 거겠죠. 농사는 짓고 싶지만, 어떤 작물이 선필마을 환경에 맞는지, 어떤 가공 방식을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어요.”

 

전통주·식혜 체험 프로그램 구상 중

올 상반기 꽃 응용한 사업 구체화

반려견 보리밟기 행사도 계획

박 대표는 할머니가 직접 담그는 술을 전통주로 내놓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제사 때마다 빚는 술인데, 이색적인 방식이라 지켜나가고 싶다고 했다. 단술이나 엿기름을 만드는 체험 프로그램도 생각하고 있다. 올해 시도해볼 찹쌀 100㎏도 다른 청년창업농 농가에서 구매했다.
어떤 사업이든 마을의 어르신들과 함께 할 예정이다. 청년창업농을 신청할 때 작성한 5년 계획서에 담긴 내용이기도 하다. 계획서에는 매년 송아지 한마리 증산, 2년간 선필마을 농작 가능 작물 연구, 마을 주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마을 사업 추진 등이 있다. 지난해 송아지 한 마리가 태어났으니 계획은 나름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계속 연구만 할 수 없으니까, 올 상반기 중에는 마을에 잘 맞는 작물을 선택하려고 해요. 꽃을 응용한 사업도 구체화할 계획입니다.”
박 대표의 ‘기획’ 아이디어도 기대해볼만 하다. 최근에는 반려견 보리밭 밟기 행사도 계획하고 있다.
“저는 일손이 부족하고, 강아지가 뛰어놀 곳이 없는 애견인들은 ‘공간’이 부족하잖아요. 보리는 밟아줘야 얼지 않고 잘 큰다더라고요. 우리 밭에 와서 밭에 뛰어놀면 자연스럽게 ‘보리밟기’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다들 우리 밭으로 오세요.”
주성미 기자 jsm3864@iusm.co.kr

 

(인터뷰)“청년창업농, 무작정 뛰어드는 무모한 청년 되진 말아야”

 

"몸은 고되고 실수도 많지만

 ‘청년창업농’이 되면서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라 즐겁기도 해요”
 

“무작정 뛰어들 일은 분명 아니에요. 그동안 뼈 빠지게 벌어둔 돈이 사라지는 게 눈에 빤히 보이거든요. 속상하죠. 통장 잔고의 앞자리가 바뀌었을 때는 눈물이 날 뻔했는걸요.”

큰애기농장 박길선 대표는 ‘청년창업농’이 절대 쉽지 않은 길이라고 솔직히 털어놨다. 경제적인 부담이 큰 것도 사실이다. 젊은 농부들에게도 ‘빈부격차’가 있다. 

박 대표는 이른바 ‘가난한’ 청년창업농이다. 할머니 감자밭과 마을 어르신들이 힘에 부쳐 농작하지 못하는 밭을 빌려 농사를 짓고 있다.

“소를 100마리씩 키우고, 밭이 몇만평씩 있는 사람들도 있어요. 부모 세대가 농사를 짓고, 이를 물려받는 게 아니면 불가능한 이야기죠. 출발선이 다른 사람들이에요. 청년창업농은 꼭 그런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에요. 저는 별로 가진 게 없지만,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박 대표에게 ‘성취감’은 아직 먼 이야기다. 겨우 첫발을 뗀 청년창업농의 현실은 냉담하기만 하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세계를 마주한 ‘설렘’은 있다.

“저는 그렇게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잠도 많았어요. 새벽 5시마다 배고프다고 우는 소한테 밥을 주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죠.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어요. 몸은 고되고 낯선 일이라 실수도 많지만, ‘청년창업농’이 되면서 그동안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라 즐겁기도 해요.”

박 대표에게 절실한 것은 ‘교육’이다. 작물별 특성이나 농사를 짓는 법,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수업 중에 가장 유용했던 게 면사무소에서 진행했던 ‘고추 심는 법’이었어요. 그런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교육을 가까운 곳에서 자주 들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 같은 초보 농부에게 절실한 거죠.” 

저작권자 © 울산매일 - 울산최초, 최고의 조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