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영상편집 수고 줄이자” 취지로 시작한 생중계
웅촌 산불현장 발품 취재에 “후원계좌 열어달라” 응원
가성비 추구하다 저널리즘 마주하니 부끄러워져
‘대체 뭘 만들어야 봐줄까?’
영상콘텐츠를 제작하는 UTV 팀장으로 재직한 2019년 1월부터 매일같이 해 온 고민이다.
뉴미디어 플랫폼인 유튜브의 생리가 그렇지 않나. 구독자수와 조회수가 오픈되니 매순간 공개 평가를 받는 격이고, 조회수는 수익과 직결된다. 내 입맛 보다는 구독자들의 구미를 당기는 콘텐츠를 제작해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조회수와 수익만 따질 수도 없다. 언론 환경이 상전벽해를 이뤘을지라도 저널리즘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래서 시작한 게 실시간 스트리밍, 즉 생방송이다.
UTV는 올들어 코로나19 브리핑과 웅촌 산불화재, 산불 진화도중 추락한 헬기 부기장 수색, 대우버스 울산공장 폐쇄 철회 촉구 집회 등 다양한 재난급 사건사고 현장을 생중계했다.
이실직고하자면 처음 실시간 방송을 시도한 건, 저널리즘도 저널리즘이지만 가성비를 염두에 둔 처방이었다.
정통 뉴스 콘텐츠는 가성비가 떨어진다. 많은 시간과 인력, 제작비를 투입해도 수익이 나지 않는다. 조회수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가성비 대신 가심비’(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도)란 말이 있긴 하지만 공개 평가를 받아야 하는 처지에 가성비가 낮은데 마음이라고 편하겠나. 그렇다고 명색이 언론사 채널인데 뉴스를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 ‘영상 편집의 수고라도 줄여보자’ 하고 시작한 게 바로 실시간 방송이었다.
◆ ‘날 것’ 생중계에 과분한 호의
이런 말하긴 뭣하지만, 실시간 방송에 화력을 집중하기에는 올해 여건이 받쳐줬다.
2월 22일 ‘코로나19 청정지역’이라던 울산에도 첫 확진자가 나오자 울산시는 연일 브리핑을 열었고, 울주군 웅촌면 대복리에선 큰 산불이 나 쌍용하나빌리지 1,800세대와 상정·화정마을 주민 4,800명에게 대피령이 떨어졌다. 현대·기아차와 버스 시장을 양분해온 자일대우상용차는 울산공장 폐쇄를 결정해 근로자 600명과 그 식솔들의 밥줄을 끊어 놨다.
치열했던 그 현장을 구석구석 쫓아다니며 ‘날 것’ 그대로를 실시간 생중계했다. 채팅창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며 시청자들이 가봐 달라는 곳을 찾아갔고, 그들이 궁금해 하는 질문에 답했다.
역대급 재난인 코로나19 시국을 맞아 UTV는 울산지역 신문·방송·통신사를 통틀어 처음으로 브리핑을 생중계했다. 첫 확진자가 나오기 하루 전 ‘대시민호소 기자회견’서부터 릴레이로 생중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40여일 뒤 울산시가 코로나19 관련 브리핑은 자신들의 공식 유튜브 채널인 고래TV를 통해서만 온라인으로 진행하기로 방침을 정하면서 더는 이어갈 수 없게 됐다. 우리는 그때까지 34일 동안 쉬지 않고 시민들에게 코로나19 속보를 실시간으로 배달했다.
실시간 방송을 하며 제작진이 시청자들에게 받은 호의는 분에 넘쳤다. 3월 19일 울주군 웅촌면 대복리 산불 당시의 감동은 특히 잊을 수 없다. 쌍용하나빌리지 입주민은 ‘우리 집 베란다에서 찍으면 훨씬 잘 보인다’며 현관문을 열어줬고, 한 운전자는 상정마을로 가다 길을 잃자 ‘내 차 따라오라’며 취재차량을 안내했다. 휴대폰 배터리가 다 닳아 실시간 방송을 중단해야 할 위기의 순간도 있었는데 ‘충전 100%된 보조배터리 가져다줄테니 조금만 더 버텨보라’는 시민이 줄을 이었다. 이것 말고도 ‘기자님들도 도망가야 하는 거 아니냐’, ‘손 시렵겠다. 장갑이라도 끼고 하셔라’, ‘식사도 못한 거 같은데 밥값이라도 보태게 후원계좌 열어 달라’, ‘이제 기자들도 퇴근하게 어디 가봐달라는 요구 좀 그만해라’ 같은 응원 댓글도 쏟아졌다. 가장 큰 감동은 ‘앞으로 울산매일 믿고 보게 될 것 같다’, ‘구독 꾸욱 눌렀다’는 말. 가성비를 좇다 저널리즘을 줍게 된 순간이었다. 어깨가 으쓱해짐과 동시에 가성비를 셈하던 손가락이 몹시 부끄러워졌다.
◆ UTV는 사랑을 싣고
실시간 방송을 하면서 취재원과의 인연도 실타래처럼 길게 이어졌다. 웅촌 산불을 끄러갔다가 사고로 순직한 민간헬기 고(故) 최성호(47) 부기장의 미망인, 이윤경(42)씨와의 인연이 그렇다.
그날은 바람이 엄청 불었다. 최대 순간풍속 초속 20미터, 매뉴얼대로라면 헬기를 띄우면 안 되는 날. 하지만 최 부기장은 건조특보 속에 강풍을 타고 맹렬한 기세로 번지는 불길을 잡기 위해 헬기에 몸을 실었고, 회야댐 쪽으로 물을 보충하러 갔다가 변을 당했다. 강풍 탓이었을까. 헬기는 물속에 쳐박혔고 부기장은 실종 21시간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인양됐다.
이윤경씨를 처음 만난 건 부기장이 사망이 아닌 실종 상태일 때였다. “아내분 인터뷰 할 것”이라는 취재지시에 ‘안 그래도 힘드실텐데 죄송해서 도저히 못 하겠다’던 신섬미 기자가 팀장의 닦달에 조심스레 인터뷰를 시도했고, 이씨는 우려와 달리 인터뷰에 꽤나 호의적이었다.
이씨와의 인연은 그 날 이후 더 깊어졌다. 실시간 방송 종료 후 우리는 ‘부기장님, 당신은 영웅입니다’라는 추모 영상 콘텐츠를 따로 제작했고, 이 영상을 본 미망인은 초상을 다 치룬 뒤 제작진에게 고맙다는 마음을 전해왔다. 모든 매체들이 ‘산불 진압 도중 사망했다’는 식의 짧은 뉴스로만 남편을 언급했는데 UTV 영상을 보면서 아이들이 슬픔 속에서도 아빠를 너무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온 우리 가족에게 ‘영웅’이라는 단어는 낯설지만 추모해주어 감사하다, 이런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남편 죽음이 헛되지 않게 조의금으로 들어온 1,500만원을 기부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 “실종된 남편을 찾기 위해 21시간 동안 밤낮으로 애쓰고, 살아만 있어달라 기도하며,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해준 소방관과 시민들의 마음에 이렇게라도 보답하고 싶다”고도 했다. 우리는 조의금을 어디에 기부하면 좋을지 알아봐 달라는 유가족의 부탁을 받고 송철호 울산시장과의 만남을 주선해주었다. 시는 이 자리에서 부기장에게 추모패를 수여했고, 명예시민증도 주겠다 약속했다.
당시 UTV는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부기장의 자취방을 방문한 유가족을 촬영해 ‘유가족의 의미있는 선택’이라는 또다른 추모영상을 만들었다. 졸지에 남편과 아빠를 잃고 오열하는 유가족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한 달 뒤인 4월 말에는 산불 당시 대피령이 발효됐던 쌍용하나빌리지 입주민들이 “UTV 추모영상을 보고 우리도 울었다. 한순간 가장을 잃어 얼마나 허망하고 막막하겠느냐”며 십시일반 모금한 1,000여만 원을 유가족에게 기부했다. 우리를 돕다 그리 되었는데 모른척할 수 없다는 거였다. 하지만 미망인은 그 돈마저 시에 도로 기부했다. 이 기부금은 코로나19 재난지원금으로 사용됐다.
◆ 걱정은 기우일 뿐 막상 해보니
올초 ‘날 것’ 그대로를 보여주는 실시간 방송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팀원들은 걱정을 태산처럼 했다. “편집마감 따로 안 해도 되니 좀 홀가분해지겠네. 채팅창으로 소통하면 UTV 홍보에 좋을 것 같다. 아 근데 사람들이 안 들어오면 어쩌지”, “생방송인데 진행이 어설프면 어쩌나. 수위 조절 없이 날 것 그대로 노출되는데 시비 붙는 일 생기면 어쩌냐.”
그 생각들이 지금은 이렇게 바뀌었다. “누구보다 빠르게 생생한 현장을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이 뿌듯하다. 키가 한 뼘 더 자란 느낌이 든다.”
◆ 인터렉티브 뉴스 첫 선뵐 준비도
산불 생중계 이후 사람들을 만나면 “실시간 방송 잘 봤다”는 인사를 제법 듣는다. 타사 기자들도 “현장 나갈 시간 없었는데 UTV 보면서 기사 썼다”고 하고, 제작진이 시청에 뜨면 공무원들은 으레 “실시간 하러 오셨냐”고 묻는다. 이만하면 실시간 스트리밍은 UTV 대표 콘텐츠로 자리 잡은 분위기다.
7월 20일, 필자는 1년 7개월간의 UTV 팀장 역할을 놓고 사회부 취재기자로 돌아가 신문을 만들게 된다. 1년 전, 창간 28주년 기획기사에서 “인터렉티브 뉴스와 인포그래픽으로 신문 독자들 눈을 즐겁게 할 비주얼 콘텐츠의 볼륨감을 높이겠다”고 썼는데, 그 약속은 취재부 발령을 받고서야 지킬 수 있게 됐다. 올 초 언론진흥재단이 공모한 기획취재(디지털 인터렉티브)에 ‘당신은 부모입니까, 양육비 채무자입니까’, ‘성(性)을 조기 교육하는 나라’ 두 아이템을 냈고 모두 선정됐다. 8,000만 원의 예산을 따놓고도 코로나 시국 탓에 해외출장 일정을 잡지 못한 채 3~4개월을 허비할 수밖에 없었다. 올 하반기엔 어떻게든 취재를 시작해볼 작정이다.
Lenny Kravitz가 부른 노래 가사처럼 it ain't over till it's over, 끝나기 전까진 끝난 게 아니다. 울산매일신문의 도전은 계속된다.
글=뉴미디어부 조혜정 부장
편집=뉴미디어부 김지은 기자
인포그래픽=뉴미디어부 이남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