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매일로 돌아보는‘울산의 30년 정치사'
총선 8회
14대 통일국민당 돌풍…15대 야권 강세 과시
16·17대 보수텃밭속 기업·노동자 도시 정체성 보여줘
18·19대 한나라·새누리계 석권하며 독주
20대 진보성향 무소속 약진…재보선서 민주 첫 금배지
21대 문재인 정부 지지 업었지만 미래통합당 5석 압승
대선 6회
14대 ‘노풍’ 진원지 역할…15·16·17·18대 보수 다수 지지
19대 ‘문풍’으로 박 대통령 탄핵 심판…지방선거에도 이어져

울산매일이 창간 된 1992년은 지방자치가 부활된 해다. 당시 울산은 국가공업지구로 지정돼 정부로부터 가장 많은 혜택을 받은 지역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태생적인 반골에 야당 도시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보수텃밭 이면서도 야성이 살아있는 노동자의 도시 울산, 진보의 바람이 거세게 분 선거 등 매 선거는 울산 시민들의 요동치는 민심을 대변했고 정치인들을 채찍질하며 울산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울산 유권자들은 검증 받은 일꾼을 원했고, 전국적인 흐름을 타고 표를 몰아주다가도 심판을 내릴땐 가차 없었다. 경남 변방의 도시에서 울산광역시로, 국회의석수는 1석에서 6석까지 늘며 울산 지역정가는 많은 변화를 겪었고, 진통과 성장을 거듭 반복한 지역 정치는 현재의 더욱 성숙해진 모습으로 변모했다. 정치의 변화는 선거를 통해 읽을 수 있다고 한다. 그동안 치러낸 각종 선거를 통해 울산의 독특한 정치 변화를 되짚어 보며 울산 정치가 가야 할 길을 살펴본다.
#변화무쌍 울산 총선, 울산 민심의 장
울산에서 지난 30년 동안 치러진 8번의 총선은 지역정가의 변화를 그대로 담고 있다. 여전히 ‘보수정당’의 강세가 돋보이지만 야당 국회의원의 ‘씨’는 말리지 못했다. 특히 ‘산업수도’라는 울산의 특성을 토대로 지역의 대표인 국회의원은 CEO가 되기도 하고 노동자가 되기도 하는 등 지역 민심의 다채로운 특성을 그대로 반영했다.
본보가 창간한 1992년 치러진 14대 총선의 통일국민당 ‘돌풍’이 주목할만하다.
당시 울산은 4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했는데 중구 차화준, 남구 차수명, 동구 정몽준이 모두 통일국민당 소속으로 당선됐다. 통일국민당은 현대그룹 창업주 고(故) 정주영 회장이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하기 위해 창당한 정당이다.
여당인 민자당 소속 당선인은 울산군 김채겸 한명 뿐으로, 울산 야당의 전통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겠다.
울산 정치의 야당 전통의 역사는 더 앞으로 거슬러 올라 9, 10, 11, 12대에도 울산시민들은 야성을 지켜왔고 이는 1996년 15대 총선에서도 이어진다.
15대 총선에서는 남구의 선거인 수가 늘어나 총 5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했는데, 여당인 현 국민의힘의 전신인 신한국당은 중구 김태호, 남구갑 차수명을 당선시키는데 그쳤다. 남구을, 동구, 울주구는 각각 민주당 이규정, 무소속 정주영, 민주당 권기술이 당선돼 여전한 야권 강세를 과시했다.

보수 텃밭으로 분류되는 PK(부산, 경남)와 TK(대구, 경북) 사이에 있지만 산업수도인 울산의 경우 타 지역 주민들의 인구 유입의 급격한 증가 등 다양한 변수를 가지고 있는 만큼 특수한 정치 환경이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다만 1997년 광역시 승격 후 치러진 첫 총선(16대)에선 보수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치며 이후 선거에서부터 울산이 보수 텃밭으로써 위치를 공고히 해간다.
남구가 다시 통합되고 북구가 신설된 가운데 진행된 16대(2000년) 선거에선 동구 무소속 정몽준 의원을 제외하고 4석을 당시 한나라당(국민의힘)에서 차지하며 지역의 보수 성향을 다시금 확인했다.
2004년 17대 총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결의에 대한 국민 비판이 높아지며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급등했지만 울산에선 1석 당선에 그쳤다. 한나라당이 3석을 차지하며 선전했고 동구와 북구에서 각각 무소속 정몽준, 민주노동당 조승수 후보가 당선되면서 울산의 뿌리 깊은 보수세와 지역 기업의 영향력, 노동자 도시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줬다.
이어 2008년 18대 총선에선 한나라당의 공천에 불복해 탈당, 무소속 출마한 강길부 의원을 제외하고 한나라당이 5개 선거구를 휩쓸었다.
이 같은 흐름을 타고 결국 19대 총선에선 울산정치사 최초로 집권여당인 새누리당 이 6개 지역구 전석을 석권하며 독주하지만 바로 다음 20대 총선에선 동구와 북구에 진보 성향의 무소속 김종훈, 윤종오 후보가 각각 당선에 성공하며 유권자들의 새로운 평가를 이끌어 낸다.
다만 2년 후 윤 의원이 선거법 위반으로 낙마하자 북구에서 최초로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이상헌 의원이 금배지를 달게 된다.
가장 최근 치러진 2019년 21대 총선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 상승에 힘입어 더불어민주당이 과반석 이상을 차지하며 거여로 자리잡지만, 울산에서만은 국민의힘이 5석으로 다시 세를 넓혀 압승을 거뒀다.

#노풍?문풍? 대선 바람 거세게 불지만 빠르게 사그라든 울산
울산은 전체적인 보수 분위기 속에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이 위치한 북구와 동구를 중심으로 노동계 기반 정당이 정치적 영향력을 끼치며 더불어민주당이 입지를 다지기는 쉽지 않은 지역으로 불리웠다.
보수정당이 강세를 보여온 울산의 특성상 14대 대선을 시작으로 15대, 16대, 17대 ,18대 까지는 울산에서는 당시 신한국당 김영삼 후보부터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이명박 후보, 박근혜 후보까지 보수 정당의 후보가 다수의 지지를 얻었다.
다만 국가 지도자를 뽑는 대선에서만큼은 울산에서도 호남지역을 근거지로 한 거센 민주당의 바람이 몇 차례 불었고, 울산 시민들은 전향적으로 이들에게 표를 행사했다.
14대 대선, 바로 노무현의 바람 ‘노풍(盧風)’이 그 첫 번째 사례인데 울산이 주도적으로 초반 판세를 좌우했다고 볼 수 있다. 약한 조직세에도 불구하고 노 후보는 대선 경선 때 울산에서 청중을 압도하는 연설 솜씨를 보여주며 처음으로 1위를 차지했다. 울산이 노풍의 진원지가 된 셈이다.
특히 울산 투표 결과 노 후보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26만7,737)를 17만8,584표(35.27%)로 추격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기록된다.
이후 노풍은 탄핵 정국 하에 치러진 2004년 17대 총선에서도 미미하게나마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그렇게 사그러들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진 19대 대선에선 울산에서도 민주당의 거센 돌풍이 불었다. 문재인 후보가 28만2794표(38.14%)를 받아 자유한국당 홍준표(20만3602표) 후보를 이기며 대통령이 된다. 울산 시민들이 박 전 대통령 탄핵과 자유한국당을 심판한 셈이다.
울산의 ‘문풍’ 1년 후 치러진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거세 지방자치제 도입 이후 울산에서 처음으로 민주당이 푸른 깃발을 꼽게했다. 울산 시민들은 집권여당인 문재인 정부에 힘을 실어 줬고, 그 결과 민주당은 울산시장과 5개 기초단체장에서 당선인을 배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문풍’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어 치러진 2020 총선에선 민주당은 울산시민들에게 냉혹한 평가를 받았다. 전국 선거 결과 민주당은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차지했지만 울산에선 가까스로 현상 유지에 그쳐, 북구를 제외한 5개 지역구는 미래통합당의 차지가 됐다.
#울산 정치인 육성 학교 지방의회, 풀뿌리 정치부터 시작해 중앙정치로
울산의 경우 기초단체장이나 광역·기초의원을 지낸 후보들의 약진이 눈에 띈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시작인 지방의회가 지역 정치인 육성을 위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광역의원들 역시 지방의회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며 기초단체장과 국회의원으로 가는 발판을 착실히 닦아 나갔고, 이에 울산 유권자들이 중앙관료나 ‘낙하산’ 공천을 받은 유명인사들 대신 지역정치활동을 통해 검증된 인물을 선택해 중앙의 통로로 활용하는 길을 선택했다.
21대 국회의원 현역 중 절반이 ‘풀뿌리 민주주의’를 경험했다.
3선의 이채익 의원은 울산시의원과 남구청장을 역임했고, 초선의 박성민·권명호 의원 역시 구의원과 구청장을 지냈다.
광역 의원 출신으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정갑윤 전 의원이다. 경남도 의원을 시작으로 정치에 입문한 정 전 의원은 국회에서 내리 5선을 달성했으며 울산 최초로 국가 의전서열 9위 ‘국회 부의장’을 지냈다.
조승수 전 의원 역시 시의원을 거쳐 초대 북구청장에 이어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며, 윤두환 전 국회의원도 광역의원을 거쳐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노동자 국회의원’을 내걸고 무소속으로 당선된 김종훈, 윤종오 의원도 각각 동구청장과 북구청장으로 활동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