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항쟁의 결과물인 1987년 ‘6.29선언’은 지방 신문 양산의 계기가 됐다. ‘6.29선언’은 제 5항을 통해 “언론 자유의 창달을 위해 관련된 제도와 관행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며 언론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고 명시했다. 언론통제의 기본이 됐던 ‘언론기본법’이 폐지되었고, 언론의 자율성 확대를 기반으로 한 ‘정기 간행물 등록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다. 이를 계기로 민주화와 지방화를 기치로 내걸고 새로운 지방지들이 창간되거나 복간되면서 ‘1도1사’의 독과점이 무너지고 무한 자율 경쟁시대를 맞게 된다. 이즈음 울산에서도 지역 신문 발행 논의가 본격화 된다. 그 결실로 1989년 석간신문인 경상일보가 창간되었고. 1991년 울산매일이 조간신문으로 창간의 기치를 올린다. 그리고 이듬해 1월30일 울산매일신문이 첫 고성을 울린다. 이후 울산매일의 보도는 곧 울산의 역사가 된다. 숨가빴던 30년을 되돌아 본다. <편집자주>
<울산 30년, 울산매일 30년>
‛울산의 새벽을 여는' 조간 신문 발행에 지역 사회 큰 기대
‛일본 속 울산'‛신 역사 시대'‛장생포와 한국포경사' 호평
‛호외'까지 발행하며 울산 직할시 승격 당위성 부각시켜
IMF 외환 위기 극복 ‛금 모으기'‛외화 절약' 캠페인 주도
고속철도 울산역 유치‧국립대 설립 시민 여망 실현에 한 몫
SK에너지·현대중공업 등 지역 기업 위기 극복에 힘 보태
화재‧태풍‧코로나 팬데믹 상황 실시간 방송 ‘뉴미디어' 안착
뉴스레터 형식 ‛빠삭뉴스'로 온라인 구독자들과 쌍방향 소통

# 울산의 뿌리 찾기 창간 연재물 - ‘독자들 환호’
울산매일신문은 ‘밤이 없는 신문’ ‘울산의 아침을 여는 신문’ ‘울산을 가장 잘 아는 신문’을 슬로건으로 창간한다.
신병열 사장은 창간사를 통해 ‘정보의 지방화’를 선언했다. 중앙에서 지방으로 일방적으로 유통되고 전파된 정보 체계를 단호히 거부하고, 우리 지역 뉴스의 우리 지역화에 앞장선다는 각오였다.
울산매일신문은 창간과 함께 울산의 정체성을 고양시키기 위한 ‘뿌리 찾기’ 기획물을 대거 선보여 지역사회의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노성환 교수(울산대 일어일문학과), 김수용 씨(소설가·울산매일 객원기자), 김운산 시진부장 등이 일본 현지 취재를 통해 보도한 창간특별 연재물 ‘일본 속의 울산’이 크게 주목을 받았다. 울산매일 독자들은 특파원들과 함께 일본 구석구석을 누비며 우리고장 울산의 흔적을 함께 찾아보고 미처 정리되지 못한 우리나라와 일본의 교류사도 함께 더듬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창간특별기획 ‘공단 시 승격 30년 울산의 재발견’도 독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조용한 해안도시 울산의 1962년은 천지개벽의 해였다.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의 지축을 뒤흔든 폭발음과 함께 조국근대화의 맥박은 쉬지 않고 온 산하를 요동치며 숨 가쁘게 달려왔다. 울산매일신문은 조국 근대화의 첨병이었던 ‘울산’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울산’을 설계하는데 힘을 보탰다.
창간 특별기획 ‘신 역사 시대’도 근대화의 바람과 함께 지역 발전에 한 몫 한 철도와 울산역의 어제와 오늘을 다뤘다. 울산의 철도와 역사는 시대를 따라 부침하면서 도시 발전이나 시민생활과는 떼어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창간특별기획으로 장기간 연재된 ‘실록, 장생포와 한국포경사’ 는 우리나라 포경사와 포경의 핵심 거점이었던 울산 장생포의 역사를 고스란히 되살렸다. 그 자체로도 한국 포경 역사서라고 해도 무방했다.
창간과 함께 ‘긴 여름 짧은 겨울’(김웅) ‘胎土’(김수용) 두 편의 소설을 연재했다. 김웅 씨와 김수용 씨는 당시 울산 지역을 중심으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한 소설가들이다.
창간의 의미를 더하기 위해 기획된 울산매일과 울산산악인들의 히말라야 초오유봉(해발 8,021m) 원정에도 시민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김관준 대장을 비롯한 당시 원정대는 1992년 9월 20일 오전 11시 35분(현지시간) 히말라야 초오유봉 정상에 올라, 울산매일신문의 깃발을 꽂았다. 본지는 원정대의 생생한 등정기를 연재하는 한편 관련 사진 전시회를 개최해 기념했다.

# 직할시 무산 위기 온몸으로 맞서다 – 직할시 유보 반대 주도
1994년 9월 2일, 정부와 당시 여당인 민자당이 당초 95년 예정되어있던 울산직할시 승격을 경상남도와 일부 정치권의 반대여론을 의식해 유보키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들의 분노가 절정에 다다랐다. 지역사회는 이를 울산시민의 패배로 간주하고 ‘유보저지 대책위원회’ 구성하는 등 강력 대응하게 된다.
특히 9월 13일 당정 최종 협의 결과 울산직할시 승격이 사실상 백지화 된 것으로 알려지자 분노는 ‘행정 마비’로 이어지고, 서부 경남 정치권의 반대가 확인되면서 시민들은 경남은행 예금을 대거 인출하는 사태를 빚기도 했다.
울산매일을 9월 3일자 1면 머릿기사 ‘직할시 유보 웬말인가’를 시작으로 한 달 가까이 직할시 승격 유보의 부당함을 알리고 정부에 승격 약속을 지킬 것을 촉구하는 등 총력 대응에 들어갔다. 특히 두 차례의 호외를 발행하면서 직할시 승격과 관련한 소식을 전했다.
9월13일 발행된 호외에서는 전날 밤늦게까지 계속된 청와대 당정회의에서 울산직할시 승격을 유보하는 대신 울산시‧군을 통합해 재정능력을 높이자는 취지의 절충안이 만들어진 것을 한발 앞서 전하면서 이에 분노하는 시민들의 반응을 전했다. 두 번째 호외(10월1일자)는 시민들의 요구가 일부 관철돼 직할시 승격을 전제로 한 시‧군통합에 대한 시‧군민들의 의견 조사결과 내용과 시민들의 바람을 발빠르게 전했다. 울산의 단계적 직할시 승격을 위해 실시한 시‧군민 의견조사 결과 시‧군지역 모두 압도적인 통합지지를 표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울산매일신문은 한 달 넘게 신문의 논조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설’을 전격 1면에 배치해 청와대와 정부기관은 물론 국회와 경남도의회에 시민들의 직할시 승격에 대한 염원과 당위성 등을 강조해 지역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이같은 울산매일신문과 시민들의 열망으로 95년 1월 역사적인 통합 울산시가 출범할 수 있었고, 1997년 7월 15일 마침내 울산이 국내 여섯번째 광역시로 승격할 수 있었다.

# 절체절명의 위기 ‘나보다 공동체부터’ - 외환위기 극복 캠페인
1997년 12월 11일 퇴임을 불과 두 달여 앞둔 김영삼 대통령이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 체제 하에 들어간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는 특별담화를 발표하며 국민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국제통회기금(IMF)과의 협상으로 정부의 긴축재정이 이뤄지면서 국가보조 및 대규모 국책사업들의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부실여신 회수가 본격화되면서 울산에서도 중견사업체인 청구조선이 부도 처리되는 등 울산경제가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울산매일은 1998년 신년기획으로 ‘외화 어디로 새 나가나’ 등의 캠페인성 연속 보도를 통해 지역사회에 만연한 과소비 풍토를 지적하는 등 위기 극복을 위한 시민들의 지혜를 모아나갔다. 특히 범국가적으로 이뤄진 ‘금모으기’ ‘외화모으기’ 운동 등과 관련한 기획물도 집중 보도했다.
# 달콤했던 축구의 열기 생생하게 – 2002년 월드컵 호회 발행
1997년 12월 29일 서울에서 열린 월드컵조직위원회 의원총회에서 울산이 2002한일월드컵 개최도시로 최종 확정됐다. 울산시는 곧바로 월드컵유치위원회를 준비위원회로 전환하고 경기장신축 등 준비에 돌입했다. 울산매일은 2001년 연초부터 울산광역시와 함께 ‘선진 시민이 됩시다’라는 캠페인에 돌입했다. 월드컵이라는 국제행사를 준비하는 시민들의 마음가짐을 다잡아 선진시민으로 나아가자는 의지를 담아 다양한 기획물을 선보였다.
2002년 6월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울산에서는 덴마크와 우루과이의 예선전을 시작으로 브라질과 터키의 예선, 독일과 미국의 8강 경기가 진행됐다. 비록 국가대표의 경기가 열리지 않았지만 경기 때 마다 시민들은 높은 질서의식을 보여 주었다. 특히 우리나라가 4강까지 오르면서 문수경기장 등 울산지역 곳곳에서 길거리응원이 이뤄졌다.
울산매일은 우리나라와 전차군단 독일과의 4강전이 열린 9월25일 오후 4면으로 구성된 ‘대한민국 국민임이 자랑스럽습니다’라는 머리기사의 호외를 발행해 거리응원전이 펼쳐지는 문수축구경기장, 동천체육관, 울산역 등에 배부했다. 시민들은 경기결과에 관계없이 시민들의 단합된 열망을 담은 호외 발행에 호평을 쏟아냈다.

# 한 곳에 모인 시민 열망 현실이 되다 - 고속철 울산역‧울산국립대 유치
2003년 3월, 천성산 구간의 생태 환경 파괴를 주장한 환경단체의 의견을 받아들인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로 경부고속철 경주~울산~부산 노선의 재검토를 위한 위원회가 구성됐다. 이로인해 울산 지역에서는 기존 노선의 고수와 함께 ‘울산역 설치’를 주장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거세졌다.
울산시와 구‧군의회는 한 목소리로 결의문을 내고 “정부가 국민적 합의로 이끌어낸 국책사업을 일부 시민단체와 특정 지역의 이익을 위해 아무렇지 않게 사업을 중단시키는 것은 국력을 소모시키고 지역 갈등을 부추기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지역 시민 사회 단체들도 범시민 비상대책기구를 구성해 서명운동과 각종 청원 등 강력 대응했다.
이런 각고의 노력 끝에 4월 11일 ‘울산 인근의 노선 변화는 없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입장을 이끌어 냈고, 14일 건설교통부가 경주 건천~울주 천전리 구간의 실시계획 변경을 승인함으로써 울산 통과 노선은 확정됐다.
울산시도 8월 25일 울주군 삼남면 신화리에 울산역을 건설하는 경부고속철도 울산역 역세권 개발 기본 구상안을 내놓는 등 울산역 유치를 위한 발빠른 행보를 보였다. 시민들의 염원이었던 고속철 울산역은 11월 14일 울산과 충북 오송, 경북 김천·구미 등 3곳에 중간역을 설치하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확정됐다. KTX울산역은 지난 2010년 10월 28일 개통식을 갖고, 11월 1일 오전 5시31분 첫차가 출발하면서 울산의 고속철시대를 열었다.
이 과정에서 울산매일신문은 시민들의 염원을 담은 다양한 기획기사는 물론 시민 사화단체 상공계 등의 목소리를 보도하는 한편 사설 등을 통해 고속철도의 울산 노선 유지와 울산역 설치의 필요성을 알렸다.
울산매일신문은 울산국립대 설립이라는 시민들의 열망에도 적극 호응해 당위성 등을 연속 보도했다. 울산과학기술대는 2007년 11월 기공식을 가진 후, 2009년 3월 2일 역사적인 첫 입학식을 갖고 본격적인 대학 운영에 들어갔다. 입학식에서 조무제 총장은 “창의 융합 글로벌의 학교 이념을 통해 10년 이내 포스텍 수준의 대학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민국 최초의 법인화 국립대학으로 출발한 울산과학기술대는 2015년 9월 28일 울산과학기술원으로 전환되었다. 과학기술 분야에 특화된 연구중심대학교이자 국가 과학기술 발전에 이바지할 싱크탱크의 역할을 하고 있다.

# 향토 기업 위기 극복 시민의 힘으로 – SK 주식 사주기 운동
울산대공원 조성 등 지역사회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해온 SK그룹이 SK글로벌의 분식회계 충격으로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갖가지 루머가 시장에 떠돌았다. 이에 울산지역 상공계를 비롯 정계, 문화계 등 각계가 SK돕기에 적극 나섰다. 울산상의는 2003년 3월17일 회장단회의 의제로 긴급 논의했으며, 울산시와 시의회도 SK의 주력사업장이 위치한 울산지역 경제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며 관련대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시민들도 향토기업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주식사주기 운동을 펼쳤고, 경남은행과 울산대 총학생회, 애울청년단 등 시민 단체들도 캠페인에 동참하는 등 SK돕기가 전국으로 확산됐다.
울산매일은 2003년 3월부터 ‘SK돕기’와 관련된 지역의 움직임을 1면 주요기사로 보도하는 한편, 사설과 전문가 칼럼 등의 보도를 통해 시민들과 뜻을 함께했다. 특히 2003년 4월부터 SK그룹 최종현 회장의 추모 일대기 ‘나는 한없이 살았다 – 홍사중이 본 인간 최종현’ 코너를 신설해 SK의 창업 정신을 소개하기도 했다.
다행히 SK그룹과 채권단이 6월 3일 SK글로벌의 회생안에 합의하고, 17일 주요 채무조정안을 통과시킴에 따라 정상화 절차를 밟게 되고, 큰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에 당시 SK울산 콤플렉스 조재수 사장은 울산지역사회가 보여준 뜨거운 격려와 성원에 보답하겠다는 감사의 서신을 보내기도 했다.
# 울산의 위기 불러온 조선산업 지키자 - 현대중공업 수주절벽
2015년부터 가시화된 글로벌 수주 절벽은 지역 주력산업 중의 하나인 조선 산업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2016년 4월 26일 정부는 심각한 경영위기에 빠진 현대중공업의 조기정상화를 위해 고강도 자구 노력을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발맞춰 현대중공업은 직원들을 상대로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첫 단계로 명퇴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현대중공업은 우선 조선‧해양 ‧플랜트 등 7개 본부 388개 부서중 100여개를 정리하고, 서울의 설계부서도 울산 본사 등으로 옮기기로 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 추진했다. 2015년 5월에는 사무직에 이어 창사 이래 처음으로 기장 이상의 희망 퇴직원을 받기도 했다. 울산매일은 현대중공업이 다시 울산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기획기사를 내보냈다. 특히 2019년 한국해양조선 서울 본사 설립과 관련해 현대중공업 본사가 계속 울산에 남아 있도록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관련 보도에 집중했다.

# 태풍‧폭우‧화재 재난 보도의 새 지평 - 뉴미디어 선도
울산매일신문은 지난 2017년 9월 인터넷방송 UTV를 개국했다. 이는 지면 제작 중심의 뉴스 전달 체계를 디지털로 전환하는 일대 계기였다. UTV는 개국 특집으로 오염된 용연공단 저수지의 침출수가 울산연안으로 무분별하게 흘러드는 ‘울산연안오염’ 실태를 탐사보도 해 지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에도 ‘지역주택조합 탈불법’‘울산공공병원의 바람직한 미래’등을 집중 보도하고, 울산을 넘어 전국적인 이슈가 되는 갖가지 ‘기획영상’을 선보이면서 지면과 영상이 융합된 새로운 형태의 지역 언론 가능성을 열었다.
특히 지난 2019년부터는 웅촌 산불현장, 태풍 내습, 주상복합 화재, 코로나19 상황 등 지역 주요 재난 상황을 실시간 스트리밍 생방송 해 시민들의 호평을 받았다. 울산매일UTV는 7월 초 현재 4만2,800여명이 구독하고 있으며, 인스타그램(팔로워 2만1,000), 트위터(팔로워 1만2,000), 페이스북(5,200), 네이버TV, 카카오TV 등 사회적관계망을 통해 10만에 육박하는 구독자와 소통하고 있다. 이들 구독자들에겐 ‘빠삭뉴스’라는 이름으로 뉴스레터 형식의 지면기사도 매일 제공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