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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30주년 기획] 울산 밥벌이 30년차에게 듣는 직장생활
1992년에 첫 직장 입사해 지금까지…회사가 곧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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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섬미 기자
  • 승인 2021.07.18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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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도전이 두렵지 않은 2030세대들은 변화가 빠르다. 바늘구멍만한 취업의 문턱을 넘어 직장에 입사한다 해도 가슴에는 늘 사직서를 품고 다닌다. 이직은 잦고 근속기간은 점점 짧아진다. 2030세대는 더이상 첫 직장에서 정년을 꿈꾸지 않는다. ‘평생 직장’이라는 말이 옛말이 된지 오래라는 반증이다.이렇듯 워라밸(Work-life balance), 욜로(‘You Only Live Once'의 앞 글자를 딴 용어) 등 삶과 일을 분리는 2030세대들과 달리 회사가 곧 인생인 사람들이 있다.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울산매일신문이 창간하던 1992년, 첫 직장에 입사해 지금까지 한 자리를 지켜온 이들을 만나 인생과 울산을 이야기해본다.<편집자주>

 


“훗날 ‘열심히 살았다’ 칭찬이 목표
  월급 받는데 쪽팔리면 안되니까”

◆김창남(52) 기장(1992년 현대중공업 입사)
김창남 기장의 고향은 강원도 원주지만 초등학교 1학년 때 부모님과 8남매 모두 울산으로 이사를 왔다. 울산에서 초·중·고를 졸업한 그는 “울산이 고향이나 마찬가지”라며 웃어 보였다.
울산공업고등학교 재학 시절 어려운 가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 3년 내내 하루 2시간씩 신문 배달을 했다. 마침 배달처가 현대중공업 전체였고, 배달 일을 하며 선박 건조 현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1992년 그 꿈을 이룬 김 기장은 어느새 현대중공업 기계설비 분야에서 30년 세월을 보냈다. 이 과정에서 동료들을 빼놓을 수 없다.
여러 명이 한 팀이 되어 일을 하다 보니 언쟁이 높아지는 경우도 생겼지만 퇴근 후 술 한잔 기울이며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감정이 다 풀려 다음날 일이 더 잘됐다고.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이던 포장마차는 울산의 변화를 실감하게 한다.
“과거 태화교 밑에 포장마차가 있어 퇴근하고 동료들하고 자주 갔다. 그때는 정말 더러웠던 태화강이었는데 지금은 1급수로 살아난 게 울산 역사에서 가장 대단한 것 같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사이 결혼도 하고 두 아들도 얻었지만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걸린다.
“1년에 한 두 번은 꼭 가족과 여행을 갔는데, 일이 바쁠 때는 또 일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다시 회사로 돌아온 적도 많다. 주말에도 일을 참 많이 했다. 그렇다 보니 집사람도 불만을 가졌던 적이 있었지만 이해하고 잘 넘어갔다. 그런 면에서 요즘 세대들의 열정이 아쉽다. 젊은 사람들이 똑똑한 건 알지만 일에 대한 열정에서는 과거 우리와 큰 온도차가 느껴진다.”
김 기장의 1차 목표는 남은 정년까지 다치지 않고 맡은 일을 잘 수행하는 것이다.
“훗날 ‘김창남이 열심히 살아왔구나’ 스스로도 인정할만큼 잘해서 셀프 칭찬을 하는 게 목표다. 월급 받는 사람이 쪽팔리면 안되니까. 그때까지 다치지 않고 맡은 일을 잘 수행하고 싶다. 그리고 퇴임 후엔 좋아하는 산에 집 하나 지어 농사 짓고 산 다니며 살고 싶다.”

“힘들었던 세월 동료와 함께 버텨
  후배들 잘 이끌어 지식 전수해야”

◆이병희(54) 과장(1992년 8월 SK에너지 입사)
이병희 과장은 1990년대 울산에 대해 ‘도전과 기회의 땅’이라고 표현했다.
자동차, 조선업, 석유화학 등의 주력산업이 활발하게 돌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울산으로 모여들었고 이 과장도 그 중 한 명이었다.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30년의 세월을 버티게 해줬던 것은 동료들과의 교감이었다.
“힘들만 하면 조원들과 틈틈이 여행을 다녔다. 남자 11명이서 맛집, 관광지, 등산 등을 다니며 저녁에 소주 한잔 기울였고, 그렇게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들이 참 소중했다. “2011년께 한여름, 공정 정기 보수 작업으로 폭염과 열기에 모두 지쳤을 때였다. 평균 150도가 넘는 스팀 작업을 해야 하는 정기 보수 작업은 무더위에 쥐약이었다. 잠시라도 더위를 식혀보려 수박이며 얼음물을 가져다 놓고 일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관리자의 전폭적인 지원과 동료들의 따뜻한 배려로 작업을 마무리 할 수 있었는데 그 기억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30년의 세월 동안 이 과장은 회사와 함께 성장, 발전을 거듭했다. 패기 넘치던 청년은 이제 어느덧 딸 둘의 어엿한 장년의 모습이 됐다.

그렇다 보니 앞으로 회사를 끌어갈 젊은 친구들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젊은 친구들이 꾸준하게 업무를 배우고 익혀가야 공장을 잘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세대 공감을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 회사 내부적으로도 문화와 세대차이 극복을 위한 프로그램을 많이 마련하고 있다. 앞으로 이 친구들을 잘 이끌어서 업무 지식을 전수하는 것이 중요한 남은 과제라고 생각한다.”

“힘없는 사람 배려·도움 주라 시던
  아버지 말씀이 경찰생활의 주춧돌”


◆김동융(52) 경위(1992년 10월 경찰입문)
울산이 고향인 김동융 경위가 경찰의 꿈을 키우게 된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어느 날 막내인 내게 ‘너는 꼭 경찰이 되라’고 말씀하셨다. 경찰이 된 후에도 한결같이 ‘너 자신보다 힘없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그 사람들에게 항상 많은 도움을 줘라’고 강조하셨다. 그 말씀이 경찰생활의 주춧돌이 됐다.”
장생포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 경위의 첫 발령지는 동부경찰서 수사과였다. 
“그때는 아산로나 울산대교가 없어 남구에서 동구까지 출근만 1시간 가까이 걸렸다. 그야말로 출근과의 전쟁이었다. 지금은 남구에서 동구까지 울산대교 타면 20분이면 가는데, 그 당시는 왜 그리 오래 걸렸는지…”
가장 기억나는 사건으로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2017년 8월을 떠올렸다. 
울산대공원 동문 근처에서 바바리맨이 출몰했다는 신고에 남산을 뛰어 오르내리며 50분간의 수색을 벌였고, 용의자를 발견하자마자 300m를 전력질주해 직접 검거에 성공했다. 이후 4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공업탑 근처에서 바바리맨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18년 10월께 야간근무를 서다 출동한 곳에서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한 남성이 정중히 인사를 하길래 쳐다보니 그때 그 바바리맨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나누면서 “이제는 그런 거 안 하지요?” 라고 했더니 “절대 안해요~~”라며 지금은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짓던 미소를 잊을 수 없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김 경위는 8년 남은 정년을 무탈하게 마치고 제 2의 직업으로 택시 기사를 꿈꾸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한다. 택시기사 돼서 매일매일 다른 승객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부지런히 살아왔는지’, ‘내 마지막 인생을 어떻게 마감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맞는 답을 찾아가고 싶다.”

“언양 불고기·소고기·미나리·배 등
  울산 농업 발전 위해 차근차근 실천”


◆박해병(55) 지부장(1992년 8월 농협중앙회 입사)
고향이 김천인 박해병 지부장은 부산에서 대학교를 나온 후 장교 특채로 농협중앙회에 입사, 울주군으로 첫 발령을 받았다. 
낯선 울산에 첫 발을 디뎠을 때만 해도 지금의 가장 번화가인 삼산동은 뻘을 매립하는 단계라 허허벌판이었고, 시외버스터미널은 우정동에, 고속버스터미널은 태화로터리에 위치해 있었다.
당시 조선업, 자동차, 석유화학 등 공업도시로 전성기를 누리던 울산이라 ‘농협에서 뭘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언양 불고기, 소고기, 미나리, 배, 단감 등 생각보다 지역 농산물이 많았다. 박 지부장은 울산 농업에 대한 가능성을 봤고 발전을 위해 차근차근 나아갔다.
2003년에는 농산물 홍보관, 직거래장터 활성화로 능가소득증대에 기여했는데, 초기 농산물직거래 장터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농산물 판매에 순기능을 발휘해보려 직거래장터를 열었는데, 울산 배 하나만 갖고 장사를 할 수 없었다. 구색을 맞추기 위해 다른 과일을 섞어 팔면 좋겠다는 생각에 직원들이 직접 다른 지역을 돌아 다니면서 농산물을 가져와 품평회도 하고 장터 구성까지 했다. 명절 때 시민들 호응이 굉장히 좋아 요새 말로 대박이 났다. 여러 가지 농산물을 같이 판매하면서 울산 농산물도 덩달아 판매량이 느는 긍정적인 효과를 거뒀다.”
박 지부장은 미래에는 젊은 사람들이 농업에 많이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젊은 세대들한테 묻고 싶다. 왜 농업을 기피하느냐고.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이 많은데 농업 분야도 충분히 확장, 발전 가능성이 높다. 농협에서도 청년 창업농을 발굴하고 육성하는데 지원하려고 노력 중이다. 농촌에 청년들의 활력과 아이디어가 더해져 쇠퇴해가는 울산 농업을 더욱 발전시켰으면 좋겠다.”
박 지부장은 정년 퇴직 후는 소규모 농사를 지으며 농업에 대한 열정을 이어 나갈 계획이다.
그는 “은퇴 후엔 울산의 빈땅을 임대해서 조그맣게 농사를 지어보고 싶다. 현업에서 농산물 판매만 해 보고 생산, 기술적인 부분들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많아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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