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30주년을 맞은 본지는 지난해 울산여성가족개발원이 연구조사한 성과물을 바탕으로 올 1월부터 매달 한차례씩 ‘울산여성독립운동 톺아보기’라는 타이틀로 울산여성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재조명하고 있다. 울산여성독립운동가로는 이순금, 이효정, 손응교가 대표적이다. 이들의 흔적을 담아 울산여성가족개발원이 스토리텔링으로 구성한 ‘울산여성독립운동의 길’을 최근 둘러봤다. 기행길에는 울산 울주군 범서읍 입암마을 출신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학암 이관술(1892~1950)의 외손녀 손옥희(61)여사가 함께했다.

 

언양 남천1교 인근 ‘언양 독립운동 사적비·표지석’에
‘언양 만세운동’ 주도자·부상자·옥고 치른 분들 명단

옛 울산초등 뒤 삼일회관, ‘울산청년회관’ 있던 곳
1928년 신간회 지회·1930년 근우회 지부 창립대회 열려

동구 일산동에 울산항일운동의 중심 ‘보성학교’ 기념관
일제강점기 일본인 이주 이어지면서 ‘일본인 거리’조성돼

 

 

동구 일산진 보성학교 터.(보성학교 전시관)

 

◆독립운동가 후손과 여성독립운동가들 발자취를 더듬다
이순금(1912~?)은 1930년대 학생·노동자로, 항일운동을 펼쳐 4차례나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 손응교(1917~2016)는 울주군 범서읍 입암 출신으로, 17세 새댁으로 아이를 업은 채 일제의 감시망을 뚫고 비밀연락책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또 이효정(1913~2010)은 경북 봉화 출신이지만 울산에 와 보성학교 교사로 항일 교육을 했고 일제강점기 말 여운형이 주도한 비밀결사 ‘건국동맹’의 울산 연락책을 맡았다. 
이 세 분의 울산여성독립운동가들의 중심에는 학암 이관술이 있다. 그는 이순금의 오빠이자, 이효정이 다닌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 역사 선생님이었다. 손응교와는 이웃에 살면서 부친간의 학맥을 비롯해 신학문을 전파한 인물로 조사되고 있다. 
이관술 외손녀 손옥희여사는 지난 2019년 경주 안강여고를 정년퇴임하고 현재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이관술의 막내딸 이경환(87)여사를 대신해 울산과 경주, 포항을 오가며 학암선생의 독립운동을 재조명하는 작업에 나서고 있다.

 

옛 울산초등학교 바로 뒤 삼일회관.

 

◆울산여성독립운동의 길1 
<백양사-김남이의 무덤-손응교의 집-언양3·1운동사적비와 표지석-옛 언양초등학교 터>
“내가 시집올 때 17살이었는데 내가 20살이 넘을 때까지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내가 하는 일은 주로 시아버지가 독립군들에게 전하는 문서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시아버지는 백양사에 계실 때 나에게 이것은 누구한테 전해라, 또 저것은 누구한테 전해라면서 그 동안 써 놓은 사찰을 주곤 했다”
 

울주군 입암리 김남이의 무덤.
보성학교 전시관 내부.

울산여성독립운동의 길은 신라시대 사찰인 울산 중구 함월산에 있는 △백양사에서 시작된다.
손응교의 시아버지인 김창숙은 대구에서 오랫동안 형을 산 후 요양을 위해 1936년 3월 백양사에 3년 정도 머물렀다. 이어지는 곳은 이순금의 어머니인 △김남이의 무덤이다. 위치는 울주군 입암리 선바위 쪽으로 가다가 선암사 가는 언덕에 있다. 김남이는 1928년 4월 이순금이 서울 실천여학교에 진학하면서 언양의 가게를 정리하고 서울로 이사했다. 
울산 울주군 범서읍 입암리에 위치한 △손응교의 집은 손응교가 1928년 7살부터 결혼 전까지 살던 곳이다. 바로 옆에는 이순금의 이복오빠인 이관술의 생가가 있다.
범서에서 언양으로 발길을 돌렸다.
언양 남천1교 인근에 있는 △언양독립운동사적비와 표지석에서 울산여성독립운동가의 흔적을 만난다. 표지석에는 1919년 4월 2일 언양 만세 운동 때 옥고자, 부상자, 거사를 주도한 사람들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당시 가슴에 총탄을 맞고 순국했다고 알려진 손입분과 다리에 총상을 입은 김길천 두 여성독립 운동가의 이름도 확인할 수 있다.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정계향교수에 따르면, 여성독립운동관련 문헌에서 손입분과 김길천의 이름이 거론된 것은 이 표지석이 유일하다. 
발길을 이순금이 다닌 △옛 언양초등학교(14회 졸업생)의 터로 옮겼다. 언양공립보통학교는 언양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뀌었고, 지난 2015년에 인근으로 학교를 이전했다. 원래 언양초등학교의 위치는 언양읍성 북문지 동헌 객사터 앞이다.

 

이효정선생의 울산 마지막 거주지.

 

◆ 울산여성의 독립운동 길2
<태화공립보통학교(현, 울산초등학교) 터-부녀동맹회관 자리와 양사초등 앞-삼일회관-보성학교 터(현, 보성학교 전시관)-방어진 일본인거리(청루)>
이효정은 해방 이후 부녀동맹에서 활동하고 태화공립보통학교(현 울산초등학교)의 교사로도 재직했다. 울산초등학교는 지난 2014년 우정혁신지구로 이전했는데 원래 △울산초등학교 터에는 울산시립미술관이 건립되고 있다. 인근 △부녀동맹회관 자리와 양사초등학교 앞은 이효정이 해방 소식을 듣고 울산 동면 번덕마을에서 울산시내로 거처를 옮겼을 때 살았던 곳이다. 
 

언양독립운동사적비 표지석.

부녀동맹회관에서 잠시 기거하다 현 양사초등학교 앞 일본인 병원이 있던 곳으로 옮겼다고 그의 아들 박진수씨는 기억하고 있다. 이곳이 이효정선생의 울산 마지막 거주지였다.
옛 울산초등학교 바로 뒤 △삼일회관은 울산청년회관이 있던 자리다. 울산청년회는 1928년 신간회 울산지회 창립행사를 이 장소에서 열었으며, 근우회 울산지부도 1930년 이 곳에서 창립대회를 개최했다.
기행발길은 좀 떨어진 동구 일산진으로 옮겨진다. △보성학교 터에는 2020년부터 보성학교 전시관이 들어서 있다. 성세빈의 주도로 설립된 당시 유일한 사립학교로, 울산 항일운동의 중심 역할을 한 보성학교는 1년 정도 이효정이 교사로 재직한 학교다. 전시관에는 보성학교 관련 자료, 설립자 고 성세빈 선생의 항일운동 관련활동 외에도 이효정의 독립운동기록들도 눈에 띈다. 울산여성의 독립운동 길 두 번째 코스는 일제강점기 방어진에 일본인 이주어촌이 형성되면서 조성된 △방어진 일본인거리(청루)에서 마무리됐다.
 

울산 울주군 범서읍 입암리에 위치한 손응교의 집.

울산여성독립운동의 길은 울산여성가족개발원과 정계향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배문석 노동역사관 사무국장 등이 머리를 맞대고 만든 답사코스다.
울산여성가족개발원 이미영 원장은 “이 길은 울산 여성독립운동가들의 불굴의 의지와 애환이 오롯이 배어 있어 울산의 여성독립운동가를 기억하고, 그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약 100년 남짓이 지나 독립운동가 후손과 울산여성독립운동가들의 그 길에 다시 섰다. 그 길에는 지금의 울산을, 대한민국을 만든, 불굴의 울산여성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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