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를 통해서도 활동하고 있는 해치(유튜브 채널 '해치TV' 캡쳐)
1997년부터 2009년까지 서울시 캐릭터로 사용됐던 왕범이의 모습(리뉴얼 전)

 

호랑이를 귀엽고 친근하게 표현한 ‘왕범이’는 1998년 수억원의 예산을 들여 서울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10년 만에 ‘비운의 캐릭터’로 추락했다. 2008년 서울시가 ‘왕범이’에서 ‘해치’로 대표 캐릭터를 전격 교체하면서부터다. ‘해치’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재임하던 시절 싱가포르 ‘머라이언’ 같은 상징물처럼 서울의 대표 이미지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갖고 야심차게 만든 캐릭터다. 오 시장은 해치에게 수십억원의 예산을 아끼지 않았는데 이 또한 박원순 시장으로 바뀌면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결국 ‘해치’ 역시 ‘왕범이’의 전철을 밟는가 싶더니 올해 4.7 재보궐 선거에서 오 시장이 당선되면서 ‘해치‘가 재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내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앞두고 있어 다시 돌아온 ‘해치’가 마냥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 이처럼 캐릭터의 존폐가 정치적으로 좌지우지되는 상황에, 수십억원의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서울시가 1997년 왕범이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참고한 타 지자체 캐릭터
왕범이에 대한 자료가 서울기록원에 보존돼 있다.

# 비운의 서울시 대표 캐릭터 ‘왕범이’?
1991년 지방선거를 통해 지방의회가 구성되고, 1995년 6월 동시지방선거로 지방자치단체장 주민 직선으로 지방자치가 본격적으로 부활됐다.
이후 시대 상황에 맞게 일방적인 선전 활동이 아닌 시민에 귀 기울이는 열린 시정으로의 변화 의지가 느껴졌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서울시 캐릭터 왕범이다.
서울시는 1997년 시민, 시의원, 공무원, 기자 등 600여명이 참여한 시민여론조사와 자문위원회의 의견을 수렴해 호랑이를 캐릭터로 선정하기로 결정했고, 고건 서울시장 때인 1998년 2월부터 공식적인 서울시 캐릭터로 사용했다.
호랑이가 선정된 배경에는 88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의 인기가 컸는데, 그렇다 보니 왕범이는 호돌이와 호순이의 아들이라는 설정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름 역시 1997년 12월 서울시에서 공모전을 추진해 정해졌다. 당시 전국 각지에서 4,242여건이 접수됐고 호울이, 범울이, 서호야 등 호랑이야 서울을 함께 담은 이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 가운데 ‘왕범이’가 최우수상을 받으며 채택됐다.
왕(王)은 으뜸 수도로서의 서울을, 범은 호랑이의 순우리말이다. 한국 호랑이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호랑이를 귀엽고 친근하게 표현한 것이다.
왕범이는 과천 서울대공원에 있는 서울랜드 퍼레이드에 참가하는가 하면 각종 상품들을 만들어 판매하면서 시민들에게 인지도를 쌓아갔다.
특히 2006년에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리뉴얼을 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꿈꾸기도 했지만 그로부터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왕범이는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됐다.
오세훈 시장이 캐릭터 전격 교체를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왕범이는 10년 넘게 서울 대표 캐릭터로 활동하다 2008년을 끝으로 사라졌고, 같은 해 5월 ‘해치’가 새로운 서울시 캐릭터로 탄생했다.
10년 간 진행된 왕범이의 개발과 홍보 등에는 7억여원 이상이 투입됐다. 왕범이에 쓰인 사업비는 98년부터 교체되기 전까지 약 5억8,000여만원. 이 중 오세훈 시장 재임 시절에 쓰인 돈만해도 1억4,300여만원에 달했다고 한다.
이처럼 수억원의 예산을 들여 키웠지만 결국 ‘비운의 캐릭터’가 된 왕범이는 13년 만에 서울기록원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서울시 홍보를 주제로 전시를 계획하던 서울기록원은 자체 보유한 기록물을 살펴보던 중 왕범이 캐릭터를 발견했고, 올해 1월 26일부터 4월 13일까지 3개월간 전시를 통해 왕범이를 시민들에게 소개한 것이다.
비록 일회성이었지만 레트로 느낌으로 재탄생한 왕범이를 만난 서울시민들은 서울시 캐릭터의 역사를 접하고 “이런 캐릭터가 있었는 줄 몰랐다”, “사라져서 아쉽다”는 반응들을 보이기도 했다.

서울시청 도시브랜드담당관에 서울시 캐릭터 '해치'의 자리가 마련돼 있다.

 

해치를 이용한 굿즈

#수십억 들인 새 서울시 캐릭터 ‘해치’, 왕범이 전철 밟나?
왕범이 이후 서울시 대표 캐릭터가 된 해치는 서울의 600년 문화역사와 함께한 상상의 동물 ‘해치’를 형상화한 것으로 사전적 의미는 '시비와 선악을 판단하여 안다고 하는 상상의 동물'이다. 현재 우리가 흔히 쓰는 해태의 원말이기도 하다.
정의와 안전을 지켜주고 꿈과 희망, 행복을 가져다주는 해치의 전통적 의미와 맑고 매력 있는 세계도시 서울의 비전을 전달하는 새로운 상징으로 탄생됐다.
오세훈 시장이 2008년 임기 당시 뉴욕 ‘자유의 여신상’, 파리 ‘에펠탑’, 싱가포르 ‘머라이언’같은 세계 도시의 상징물처럼 서울의 대표 이미지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갖고 야심차게 만든 캐릭터다.
오 시장은 자신이 공을 들인 만큼 서울시가 관여하는 모든 홍보물과 축제와 이벤트 등에 해치를 활용하라고 주문하는가 하면 29억원을 투입해 SBS와 합작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 로고송 등 마케팅에 수십억원의 예산을 쏟았다.
하지만 억대 예산을 쏟아 부은 지원 정책에도 해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은 서울 시장이 바뀌면서부터다.
2011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당선되면서 ‘서울해치' 홈페이지와 온라인 쇼핑몰이 연이어 문을 닫는 등 해치는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박 전 시장은 해치보다 자신의 재임 시절이던 시민과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새롭게 만든 서울시 브랜드인 ‘아이·서울·유(I·SEOUL·U)’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너와 나의 서울’이라는 의미의 ‘아이·서울·유(I·SEOUL·U)’는 2015년부터 5년 넘게 서울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활용되어 왔고, 그 결과 인지도도 상당히 높아졌다.
서울시가 지난해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서울브랜드 설문조사에서 I·SEOUL·U에 대한 인지도는 △2016년 63.0% △2017년 66.3% △2018년 84.0% △2019년 86.6% △2020년 88.3%으로 높아졌고 호감도 역시 △2016년 52.8% 2017년 57.1% △2018년 70.7% △2019년 73.3% △2020년 75.1%로 나타났다.
그렇게 왕범이의 전철을 밟는가 싶었던 해치가 다시 시민들 앞에 나타난 건 지난 4.7 재보궐 선거 때였다.
선거 결과가 발표되던 8일 새벽 오 시장의 당선이 확정되자 꽃다발을 든 노란 인형탈이 등장했는데, 바로 해치였다.
당시 이준석 국민의힘 뉴미디어본부장은 해치가 오 시장에게 꽃다발과 인형을 전달하는 사진을 올리며 “집에서 쫓겨났던 해치를 다시 품에”라고 적기도 해 해치가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이에 관한 여러 가지 해석들이 쏟아졌었다.
해치는 EBS 펭수처럼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캐릭터로 변신해 돌아왔다. 1년 전 만들어진 단독 유튜브 채널 ‘해치 TV’를 통한 시정홍보를 비롯해 서울시의 공식행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기자가 직접 찾은 서울시 시민소통기획관에는 해치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멀리서 봐도 눈에 띄는 크고 노란 해치가 외부 일정이 없을 때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지자체 캐릭터 존폐가 정치적으로 좌지우지 된다는 점에서 수십억원의 예산 낭비 지적을 피해갈 수 없었다. 특히 내년 6월 치러질 제8회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해치가 또다시 왕범이의 전철을 밟지 않을지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오 시장이 바뀌면서 언론에서 해치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갖고 있지만 사실 해치는 유튜브, SNS 등으로 이전부터 쭉 활동을 하고 있었다”며 “해치를 만들 때 많은 노력과 예산이 들었기 때문에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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