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주군 상북면 양등마을에 있는 송석하 선생의 은진 송 씨 재실 ‘영모재’. 정면 각 방문에는 보기 흉하게 대각선으로 긴 나무가 덧대져 있는 등 사실상 폐가로 방치돼 있다.  
 
   
 
  ▲ 울주군 상북면 양등마을에 있는 송석하 선생의 은진 송 씨 재실 ‘영모재’ 뒤편에는 서까래가 무너지고 지붕과 툇마루가 썩어 내려앉아 무너지기 일보직전이었다.  
 
   
 
  ▲ 송석하의 아버지, 송태관의 재실 또는 별장으로 알려진 울주군 삼남면 가천리 건물. 입구대문은 자물쇠로 잠겨 있었고, 대문 틈사이로 들여다보니, 현판은 사라졌고, 내부가 부서져 거의 방치돼 있었다.  
 
   
 
  ▲ 송석하선생의 할아버지 무덤에는 역사학자들이 높은 가치를 내세우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 송석하 할아버지의 무덤 비석에는 상단(전문)에 의친왕(고종의 다섯 번째 아들)의 글씨를 받아 ‘계전유후’라고 새겨놓아 높은 가치를 평가받는다.  
 

울산 울주군에 있는 민속학자, 석남 송석하(1904∼1948)관련 유적들이 방치되고 있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지역향토사학계에서는 역사자료로 활용, 지역 역사와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석남 송석하는 1904년 울주군에서 태어나 1932년 ‘조선민속학회’를 창립하고 민속학 동인연구지 <조선민속>을 발행했으며, 1946년 국립민족박물관(국립민속박물관의 전신)을 개관하는 등 민속학연구의 선구자로 평가되고 있다.
1996년 정부로부터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됐으며, 1997년 문체부의 1월의 문화의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다만 송석하의 부친, 송태관은 이토 히로부미 통역관, 고종의 시종원부경(侍從院副卿)을 지낸 친일파로 알려져 있다.
지난 25일 기자가 울주군 상북면 양등마을에 있는 송석하 선생의 은진 송 씨 재실 ‘영모재’를 찾았다. 첫눈에도 폐가나 다름없었는데 정면 각 방문에는 보기 흉하게 대각선으로 긴 나무가 덧대져 있었고 뒤편에는 서까래가 무너지고 지붕과 툇마루가 썩어 내려앉아 무너지기 일보직전이었다.
현판글씨는 명필 석촌 윤용구의 필체인데 기둥에 새겨진 글씨는 희미해져 알아보기 어려웠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 전 모 씨는 “약 10년 전 인근에 있던 조상 묘를 옮기고부터 소유인은 아예 오지 않고 있다”며 “소유인은 주춧돌만 남아 있어도 괜찮다고 했다”고 말해 사실상 방치상황이었다.
인근에는 송석하 선생의 생가가 있는데 울주군이 설치했던 ‘석남 송석하 생가’, ‘영모재·국수송 가는 길’이라고 적힌 안내판은 사라지고 없었다.
울주군은 지난 2011년 영모재-노거수 국수송-생가에 이르는 약 600m 구간을 총 2,000만원의 사업비를 투입, 문화탐방로로 정비했다.
당시 안내표지판, 국수송 주변 쉼터 등이 조성됐고, 영모재는 후손들이 원하지 않아 복원하지 않았다.
언양읍지에 송석하의 아버지, 송태관의 재실 또는 별장으로 기록된 울주군 삼남면 가천리 건물도 방치돼 있긴 마찬가지였다.
붉은 벽돌 담장, 솟을삼문, 정면 5칸 팔각지붕을 갖추고 왜성 같은 축대벽 위에 세운 한옥은 멀리서 봐도 매우 웅장해 당시 송태관의 권세를 짐작케 했다. 인근 주민에 따르면, 이 건물의 완공식에 삼남면 주민 전체가 초대될 정도였다고 한다. 가까이 가보니 입구대문은 자물쇠로 잠겨 있었고, 대문 틈사이로 들여다보니, 현판은 사라졌고, 내부가 부서져 거의 방치돼 있었다.
특히 이 건물 뒷산에 자리한 송석하 할아버지의 무덤에는 역사학자들이 높은 가치를 내세우는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상단(전문)에 의친왕(고종의 다섯 번째 아들)의 글씨를 받아 ‘계전유후’(繼前裕後·선조를 계승하면 후손이 복 받는다)라고 새겨놓았다.
서진길 전 울산문화원장은 “울산에 일제강점기 건물이 몇이나 있겠는가?”라며 “사유재산이라 하지만 관리가 되지 않아 건물은 갈수록 위태롭다. 울산이 낳은 민속학자 석남 송석하 선생의 얼을 기리고,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손 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남알프스 탐방가 배성동 씨는 “송석하선생은 우리민족의 격동기에 자신의 삶을 바쳐 전통 민속을 발굴하고 보존했던 진정한 민속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라며 “후손들이 이들을 취득만 하고 관리는 전혀 안 하고 있는 것은 조상의 친일행각이 알려질까 두려운 것도 있을 것이다. 차라리 국가에 헌납해 관리를 한다면 좋은 역사적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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