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호 울산과학대학교  화학공학과 교수
서정호 울산과학대학교  화학공학과 교수

 세계 무역의 판도가 조용히, 그러나 급격히 바뀌고 있다. 2026년 1월 1일, 유럽연합(EU)은 새로운 통상 규범을 시행한다. 이름하여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CBAM).

 이 제도는 한마디로 말해 「탄소에 가격을 매긴 관세」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제품을 유럽으로 수출할 경우, 그 제품이 생산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량만큼의 환경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뜻이다.

 EU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Fit for 55」와 「Green Deal」을 추진해왔다. 그 핵심이 바로 CBAM이다. CBAM은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력, 수소 등 에너지 다소비 산업을 1차 대상으로 삼는다. 

 2차 대상에는 석유화학이나 플라스틱이 포함되고 품목이 확대될 예정이다. 한국의 주요 수출 품목이 대부분 이 범주에 속하기 때문에 우리 기업이 받을 영향은 막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3년부터 2025년까지는 ‘전환기’로, 수출 기업은 제품별 탄소배출량을 보고하는 의무만 있다. 그러나 2026년부터는 매년 ‘CBAM 신고서’를 제출하고, 탄소배출량에 비례한 비용을 납부해야 한다. 예컨대 한국산 열연강판은 t당 117~174유로, 수출가의 10~15%에 달하는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단순한 행정절차가 아닌, 실질적인 수출장벽인 셈이다.

 우리 정부도 서둘러 대응에 나섰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에너지공단,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등이 중심이 돼 관련 연구와 지원 사업을 추진 중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탄소감축 기반 수출전략’을 수립했고, 생산기술연구원은 탄소국경세 대응을 위한 배출계수 표준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한국에너지공단은 CBAM 영향 기업을 대상으로 MRV(측정·보고·검증) 시스템 구축 지원을 추진 중이다. 

 이러한 흐름은 CBAM이 단순한 환경정책이 아니라, 산업 경쟁력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EU의 CBAM 도입이 확정되자, 각국의 대응도 빨라지고 있다. 영국(UK) 은 2027년 1월부터 자국형 CBAM을 시행하기로 확정했다. 노르웨이 또한 2027년 도입을 예고했고, 미국은 ‘외국오염부담금법(FPFA)’을 의회에 상정했다. 호주는 탄소국경세의 타당성을 검토 중이며, 캐나다와 대만도 제도 시행을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 중이다. 이 흐름은 명백하다. 탄소에 대한 ‘가격표’는 이제 세계 무역의 새로운 언어가 됐다. 더 이상 탄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오염이 아니라, 거래의 기준이자 수출의 통행세로 작용하고 있다. 

 울산은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이다.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SK에너지 등으로 대표되는 울산의 주력 산업은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바로 이 구조가 CBAM 시대에는 「고탄소 리스크」가 될 수 있다. 철강·석유화학 산업은 대부분 석탄, 코크스, LNG 등 화석연료 기반 공정에 의존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비중은 낮고, 전력 믹스의 탄소배출계수는 EU보다 불리하다. 결국 같은 제품을 생산해도 ‘탄소발자국’이 더 크기 때문에, 수출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

 또한 국내 배출권거래제(K-ETS)의 한계도 문제다. 우리 제도는 무상할당 비중이 높아 실제 기업이 부담하는 탄소가격이 낮다. EU는 실질 납부분만 인정하므로, 우리 제도가 있어도 감면 효과는 거의 없다. 이 구조적 한계는 곧 수출 경쟁력의 불리함으로 이어진다.

 CBAM은 EU의 배출권거래제(EU ETS)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 EU는 ETS 내에서 무상할당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있으며, CBAM 인증서의 가격도 ETS 배출권 가격에 연동된다. 

 이는 EU 산업을 보호하고 외부 국가의 탄소누출을 막기 위한 정책적 장치다. 결국 CBAM은 탄소를 무역의 새로운 통화로 삼는 제도로 자리 잡고 있다.

 탄소국경세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울산이 현명하게 대응한다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 CBAM은 제품별 실제 배출값(Actual Emission)을 요구한다. 따라서 울산 산업단지는 공정 단위의 탄소데이터 관리 시스템을 강화하고, LCA(전과정평가) 기반 MRV(Measurement, Reporting, Verification)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또한, 산업단지 내 RE100 전력공급 체계를 확대하고, 탄소배출계수(Emission Factor)를 낮춰야 한다. 이는 곧 CBAM 비용 절감으로 직결된다.

 국가 단위의 K-ETS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울산형 Local Carbon Offset 제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역 기업이 자발적으로 감축한 탄소량을 인증받고, 국제 표준 방식으로 상계할 수 있다면 CBAM 대응의 실질적 수단이 될 수 있다.

 탄소국경세는 단순한 세금이 아니다. 그것은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무역질서이자 산업혁신의 압박이다. 탄소를 줄이지 않으면 수출이 줄고, 감축하지 않으면 시장을 잃는다. 

 그러나 이 위기는 곧 새로운 기회이기도 하다. 울산이 한국 최대 산업도시의 저력을 살려 저탄소 기술 혁신의 선도 도시 전환한다면, 탄소국경세는 장벽이 아니라 울산형 산업재편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이제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탄소를 비용으로만 볼 것인가, 아니면 미래 산업의 자산으로 만들 것인가. 2026년의 시계는 이미 똑딱거리고 있다. 서정호 울산과학대학교  화학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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