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에게 숲길을 걷는 것이 하루의 노동을 내려놓는 유일한 수단이 되던 때가 있었다. 눈을 들어 바라보면 항시 높푸른 산은 의연히 솟아 있고, 해와 달이 바뀌어도 언제나 침묵으로 인간을 품어주는 산은 삶의 지혜를 주는 경전이었다.
억만년의 세월을 이고 서서 언제나 푸른 산, 흰 구름이 쉬어가고 골짜기 가득 흐르는 솔바람이 연신 손짓해 부르는 산, 새들은 온종일 노래하고 저마다 꽃들도 아름답게 피어 기쁨과 웃음 맑은 샘으로 솟았다.
숲길을 걸으면 살아온 생을 되돌아보게 되고 발자국마다 뉘우침을 하나 하나 내려놓는 숲길은 나의 고해성소였다.
내가 침묵하며 산길을 걸어도 내 마음을 씻어 쉼 없이 흘러가는 물소리에 마음이 늘 깨끗해진 느낌을 받곤 했다.
억새꽃은 하얗게 피어서 손을 비비며 간절한 기도를 하는 듯하고, 향기를 짜내며 시드는 풀잎에 남은 씨앗을 툭툭 털며 새들은 날아올랐다. 산을 오르며 내려 놓아야할 뉘우침이 남아 있다는 것은 넉넉함일까, 아니면 통곡보다 더 깊은 참회를 요하는 것일까. 내려 놓아야할 뉘우침은 끝이 없다.
숲길을 걷다보면 하루가 골짜기의 바람소리, 물소리로 다 흘러가 버리면 노을도 하루를 말아 쥐고 하늘을 붉게 태웠다.
산 아래 이화마을 가로등도 서둘러 등불을 걸어 산불감시원이었던 내 하루의 마침표를 찍고 하루의 노동을 끝낸 새도 귀소해 둥지에 날개를 접고 길들은 숲속으로 비스듬히 누웠다.
바로 서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산에 가보면 안다. 햇살도 미끄러지는 산비알을 기어오르다가 몇 번이고 넘어져 무릎이며 손에 상처를 입은 적이 있다.
산을 올라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산비알을 오르며 휘어잡은 나뭇가지 놓치곤 사정없이 후려치는 회초리를 한 두 번은 맞아 보았으리. 또한 미끄러지지 않으려 뿌리와 뿌리를 얽어맨 채 팽팽한 긴장으로 서 있는 나무를 만났을 것이다.
무임승차한 긴 장마가 근 한달째 떠날줄을 모르더니 매일 뉴스엔 폭우와 태풍의 피해소식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아파트 정원에 나무도 뿌리채 뽑혀 넘어지고, 지주목에 링겔병까지 목에 걸고 있던 가로수도 넘어지고 부러지곤 했다. 그러나 숲속의 나무들은 별다른 상처없이 버티고 있지 않는가.
숲의 나무들은 태풍에도 견디어내는 지혜를 갖고 있었다. 서로의 뿌리를 얽어 동여매고 서로의 어깨를 받쳐주고 손을 뻗어 잡아주며 견뎌냈던 것이다. 숲은 쓸쓸했던 시간들을 단단히 움켜쥐고 태풍이 오고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나 보다. 숲의 나무들은 푸른 날개짓으로 산을 일으켜 세웠다. 산은 어떤 시련이 와도 쓰러지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갖고 있다. 그렇다. 산은 뜨거운 불씨로 우리 눈을 뜨게 하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쳐 주고 있다.
입추지나 처서지나 투명한 햇살이 한잔의 향기로운 과즙으로 흘러넘치고, 누이의 수틀 속을 날던 새도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는 가을이다. 산을 오르기에 좋은 절기다. 사는 일에 바뻐 산을 오를 기회를 얻지 못한다면 추석 성묘길이라도 좋으니 산비알 나무들이 바로서기위해 서로의 뿌리를 얽어 동여매고 어깨를 받쳐주는 모습을 보고오라.
풀벌레 울음 밤잠을 설치도록 젖고, 뜨락의 화상 입은 칸나꽃은 가을을 붉게 태우고 있다. 가을이다. 이 가을에 한번쯤 숲길을 걸어보라. 걸으면서 뉘우칠 일들은 내려놓고 산비알에 바로 서 있는 숲을 보고 오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