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재훈 편집이사

한 장의 그림이나 이미지가 열 마디 말보다 나을 때가 있다. 가히 열풍이라 할 만한 애니메이션 캐릭터 '뽀로로'가 그 중 하나다. 이제 비행기 조종사용 모자와 고글만 봐도 왠만한 사람은 '뽀로로'로 인식할 정도다. 풀 3D 애니메이션 '뽀롱뽀롱 뽀로로'의 주인공인 꼬마 펭귄 '뽀로로'는 2003년 11월 27일 EBS에서 첫 방송을 탄 이래 출판 및 완구, DVD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전 세계 110여개국에 수출되었는가 하면 우정사업본부에서는 올해 첫 우표로 뽀로로 우표를 발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인기를 등에 업고 최근에는 '뽀통령(뽀로로+대통령)', '뽀느님(뽀로로+하느님)'이란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얼마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직후 '뽀로로를 마스코트로 삼자'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니 그 인기를 실감케 한다. 혹자는 뽀로로의 브랜드가치를 3,893억원으로, 또 관련제품 시장 규모를 5,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물론 이러한 열풍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일부 전문가들은 뽀로로 띄우기가 도를 넘어 거품으로까지 비춰진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하지만 뽀로로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순수 토종 캐릭터임은 틀림없다.

'2011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창의성 아이콘'에 뽀로로가 1등을 차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립중앙도서관이 9월 독서의 달을 맞아 지난 5일부터 14일까지 열흘간 네티즌 5만7,23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터넷 설문조사에서 무려 23.8%의 지지를 얻었다. 신한류 붐을 선도하고 있는 케이팝(18.9%)과 가입자 2,000만 명을 돌파한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18.2%)에 이어 비빔밥 기내식(6.8%), 부산국제영화제(3.2%), 굿네이버스(3.2%), V3(3.1%), 난타(2.4%), 김치냉장고(2.4%), 대장금(2.4%) 등에 비하면 압도적인 선택이다. 문화예술과 과학기술이 융합한 결과물이 결국 글로벌 경쟁력을 담아내고 있음을 입증한 셈이다. 그러고 보면 1위를 한 뽀로로를 비롯해서 10위권에 든 대부분의 아이콘들이 모두 우리 일상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다. 우리의 감성과 문화와 기술이 만나는 접점에서 창의적 결과물들이 하나하나 산출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생활 속에서 창의적 아이디어 하나가 글로벌 경쟁력으로 이어진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그 와중에서 자칭 '광고쟁이'라 여기는 이제석씨가 떠오른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원쇼 칼리지 페스티벌' 최고상을 비롯해 미국생활 1년만에 국제 공모전에서만 50여 차례나 상을 받아 그 마당에서 '광고천재'로 불리기 때문이다. 명성에 걸맞게 그의 작품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창의성이 돋보인다. 광고에 문외한 나조차 무릎을 탁 치게 할만큼 이미지의 여운이 오래 남는다. 공장 굴뚝을 총열로 바꿔 '굴뚝 총'에서 연기가 흘러나오는 장면과 함께 하단의 '대기오염으로 한 해 6만명이 사망합니다'라는 카피는 환경파괴의 핵심을 찌른다. '누군가에게 이 계단은 에베레스트산입니다'라며 지하철의 높은 계단에 에베레스트산을 그려놓은 작품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배려를 촉구한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그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반인들의 감회는 남다를게 분명하다. 창의성이란 게 이런거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머릿속에 맴돌게 한다. 적을 겨냥하는 총과 탱크, 폭격기가 자신을 쏘게 된다는 역설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시리즈 작품은 압권이다. 평면의 그림을 전봇대의 원통에 감쌌더니 총알과 폭탄과 유도탄이 자신의 뒤통수를 향한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What goes around comes around)'는 카피도 절묘하다. NGO(비정부기구)를 위한 캠페인용으로 제작했다는 이 포스터는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에 맞춰 뉴욕과 워싱턴의 전봇대에 붙였다고 한다. 길 가던 시민들이 '뭐하는 짓거리냐'는 표정으로 다가왔다가는 이내 "도와줘도 되겠냐?"며 공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흔하디 흔한 이미지를 조합해 쉽고 단순하고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한 그의 창의성은 과연 '콜럼부스의 달걀'이다.

아이러니 한 것은 그가 미국에 가기 전에 지방대 미술대학 '수석 졸업'이라는 타이틀이 국내에서는 철저히 버림받았다는 점이다. 어떤 기업도 그것을 평가해 면접에 오라는 데가 없었다고 한다. '불편한 진실'이다. 그래서 얻은 교훈이 '판이 불리하면 뒤집어라!'는 것이라 했다. 그 판에 억지로 적응하느니 판을 바꾸려고 노력하자는 의미란다. 판이 더럽다고 욕할 시간에 새 판을 어떻게 짜고 그 판에서 살아남기 위해 뭘 해야 하는 지 죽어라 고민해 보란다. 그가 뉴욕으로 간 까닭이기도 하다. 창의성도, 경쟁력도, 화려한 스펙에 배신 당하기 일쑤인 요즘, '생각을 뒤집으면 세상이 바뀐다'는 말이 그 어떤 철학서보다 훨씬 가슴에 와닿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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