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가 지난 반세기 동안 경이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포항제철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모지에서 이뤄낸 포항제철의 신화가 있었기에 조선과 가전, 자동차산업이 가능했다. 만약 우수한 품질의 철강재를 우리 손으로 만들지 못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상상할 수도 없다. 그 주인공이 13일 영면한 고(故) 박태준 전 총리다. 고인은 평생, 조국에 진 빚을 갚는다는 신념으로 일관했다. 포항 영일만에서 자본도 기술력도 없이 뛰어든 제철공장 건설이 벽에 부딪힐 때마다 "우향우"를 외치며 직원들을 독려했다. "혈세로 짓고 있는 제철소 건설이 실패하면 역사와 국민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만큼 모두가 우향우를 해 영일만에 빠져 죽어야 한다"며 스스로 입술을 깨물었던 고인이다. 첫 쇳물이 시뻘건 용광로에서 토해낼 때 고인과 직원들은 한 덩어리가 되어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무수하게 맞닥뜨려야 했던 좌절과 눈물이 쇳물이 쏟아지는 순간, 한꺼번에 봄눈 녹듯이 녹았다. 이후 포항제철은 공사금액과 공기, 생산물량 등에서 기록을 갈아치우며 승승장구했다. 이 모든 역사에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과 리더십으로 무장한 박태준이란 인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중국을 세계2대 강국으로 키워낸 덩샤오핑이 박태준을 영입하려다 실패하자 "인구 10억의 중국에 왜 박태준이 같은 사람 하나가 없느냐"고 개탄했다는 일화가 말해주듯이 그는 세계적인 철강왕으로 우뚝 섰다. 연간 조강능력이 수만 톤에 불과하던 우리나라가 연간 3370만톤으로, 국내소비를 넘어 수출까지 하게 됐다는 것은 기적이라는 말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고인은 매사를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게으름과 부패, 청탁을 일체 용납하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고 스스로에게도 가혹하리만큼 엄격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 군사혁명을 일으키기 전날 밤 그를 찾아가 "혁명에 실패하면 가족을 맡아달라"고 했을 정도로 평생 그를 신뢰했다.

포항제철을 맡았던 것도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적어도 박태준이라면 해 낼 수 있을 것으로 본 것이다. 한때 정치에 몸을 담기도 했으면서 시류에 편승하지 않았던 고인이다. 4선 국회의원에 집권여당 대표최고위원, 국무총리까지 역임했으면서도 정치를 떠날 때는 일체의 미련을 두지 않았다. 지금처럼 국내외적으로 시련이 중첩될 때일수록 고인과 같은 큰 그릇이 더욱 간절해진다. 84세를 일기로 영면하신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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