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선한 말과 선한 글과 선한 행동으로 아름답고 행복한 사회를 이룩하는데 앞장 서 나갈 것을 다짐합니다.’
되새겨 볼수록 참 좋은 문구다. 이는 지난 6월 29일 울산지방경찰청이 울산광역시교육청, (사)선플국민운동본부와 함께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선플운동 협약식을 맺으면서 행사에 참석한 학생, 학부모, 교사, 경찰 모두가 다짐한 선언문이다.
악의적 댓글로 인한 연예인의 자살 사건 등 악플이라는 말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을 때, 그 반대말인 선플에 대해 우리 모두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기껏해야 “악플을 달지 말자.”라며 악(惡)이 선(善)을 지배하는 사이버 공간을 정화하려고 했다. 방송통신위원회, 인터넷진흥원, 아시아경제신문에서는 ‘굿바이 악플’ 캠페인에서 매달 말일을 ‘악플 지우는 날’로 정해 혹시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나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 노력 또한 악플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스스로 자성하자는 취지였으나 선플운동이 갖는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 아쉬운 측면이 있었다.
선플운동은 나쁜 것을 하지 말자는 운동이 아니다. 선플이라는 좋은 경험을 스스로 체험함으로써 개인 스스로 나쁜 악플을 달지 않게 만드는 매우 우수한 교육 방법이다.
내가 어릴 적 이웃에 장애우가 전학을 온 적이 있었다. 물론 지금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나와는 다소 다른 모습에 적잖이 놀랬고 다른 친구들과 그 장애우를 따돌리고 멀리하곤 했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우연히 그 사실을 아시고는 중증 장애인들이 모여 있는 시설에 나를 데리고 가셔서는 그들에게 밥을 먹여주고 같이 놀아줄 것을 권유하셨다. 그날 하루의 경험에 나는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악의를 가지고 그 장애우 친구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대수롭지 않은 나의 행동 하나하나로 그 친구는 많은 상처를 받았음이 분명했다. 그 이후 어머니께서 특별한 말씀이 없으셨음에도 나는 나보다 약하고 어려운 처지에 놓인 친구들을 보면 그들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했고 마음으로 그들을 위로했다.
이처럼 서로 응원하고 격려해주는 선플운동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청소년이라면 악플로 누군가를 괴롭히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미 그의 내면에는 좋은 경험에서 우려져 나온 긍정의 힘이 악(惡)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선플운동국민본부가 집계한 이달의 시도별 선플랭킹에 울산이 4위에 올랐다. 울산지방경찰청에서 시작된 작은 다짐이 울산의 많은 학교 학생들의 자정 노력과 울산광역시교육청의 지원으로 그 결실을 맺고 있는 것 같아 매우 뿌듯하다. 선플랭킹의 순위가 아닌 그 이면의 아름다운 노력에 우리 모두가 박수를 보냈으면 한다.
최근 헌법재판소에서는 인터넷 실명제를 규정한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 제44조의5 제1항 제2호 등에 대해 재판관 8명 전원 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참여연대 등과 일부 언론에서는 환영의 입장을 나타내고 있지만, 인터넷 실명제 폐지 이후 부작용을 생각해 본다면 마냥 반길 일만은 아닌 듯하다. 그나마 인터넷상 악성댓글을 막는 보호막이었던 인터넷 실명제가 없어진다면 각종 악성댓글, 비방, 욕설, 유언비어 등은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 뻔해 보이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접수한 사이버 명예훼손 관련 상담 건수가 1년 전보다 22%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통계만 보아도 그 우려가 기우(杞憂)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헌재의 결정은 존중해야 하겠지만, 표현의 자유 못지않게 책임 또한 중요함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번 헌재 결정이 우리 사회에 미칠 부작용을 살피고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법과 제도적으로 많은 방법이 이미 논의되고 있으며 방통위에서도 “사업자 자율규제 활성화와 헌법재판소에서 이미 합헌 선고된 임시조치제도를 잘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보겠다.”며 보완 대책에 분주해하고 있다. 그러나 법과 제도 이전에 사회·문화·교육적 의식의 전환이 없다면 그 실효성도 담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의 의식 전환이 반드시 필요해 보이나 그 해법이 묘연하기만 하다. 우리의 가슴의 따뜻하게 했던 ‘선플운동’, 그 속에 해법이 숨어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