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길 주필

미국의 인기 팝가수 마돈나는 최근 공연중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흑인 무슬림(이슬람 교도)”이며 “그에게 투표하라”고 말했다. 마돈나는 종교에 관계없이 누구나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풍자하기 위해 기독교인 오바마를 무슬림이라고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일부 보수 진영에서 퍼뜨리는 ‘오바마는 무슬림’이라는 소문에 더욱 힘을 실어주고 말았다.
유명 배우 로버트 드니로는 오바마 지지 행사에서 부인 미셀 여사를 띄워주기 위해 “과연 미국이 백인 영부인을 맞을 준비가 돼 있느냐”고 했다가 오히려 ‘인종 역차별 발언’이라는 비난만 받았다. 이처럼 유명 연예인들의 지지발언이 오히려 후보의 약점을 부각시키는 마이너스 효과를 불러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대선후보 캠프에 연예인들이 속속 합류하고 있다. 선거철마다 정치판에 감초처럼 얼굴을 내미는 이른바 ‘폴리테이너’( Politainer·정치인과 연예인의 합성어)들이다. 연예인의 대중적 이미지가 후보의 정책과 공약 등을 전달하는데 효과적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선거를 이미지 싸움과 흥행몰이 판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서울 여의도에는 ‘큰 장’이 섰다. 대선을 앞두고 연예인들 뿐만 아니라 교수, 전직관료, 기업인 할 것 없이 너도나도 불나방처럼 몰려들면서 거대 인재 블랙홀이 됐다. 어느 대선후보 캠프 관계자는 “캠프로 들어오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다”고 했다. 그 중 가장 적극적으로 캠프에 가담하는 직업군은 대학교수다. 이른바 정치(politics)와 교수(profesor) 즉 현실정치에 직접 뛰어들거나 자문활동 등을 통해 정·관계로 진출하려는 폴리페서(Polifessor)들이 어느 때 보다도 넘쳐나고 있다.

대학교수들이 이처럼 정치권으로 몰리는 것은 치열한 대선 판도와 무관치 않다. 각 후보가 경쟁적으로 유명대학교수들을 캠프로 끌어 들이면서 교수 사회전치가 흔들리는 형국이다. 유명 교수들을 캠프에 합류시키면 세몰이에 도움이 되고 이미지 쇄신에도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공화당과 민주당을 지지하는 싱크탱크 활동이 활발해 대학교수를 비롯한 전문가 집단과 정당 간 교류가 일상화 돼 ‘폴리페서’가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지 정당에 정책 자문에 응하고 일부는 지지정당이 집권할 경우 국정에 참여 했다가 정권이 끝나면 대학이나 연구소로 돌아간다. 이같은 교류를 통해 정당은 관련 분야 최고의 연구결과를 정책에 흡수할 수 있고, 전문가들은 이론을 현실에 적용해보고 그 이론을 수정·보완 발전시킬 기회를 갖게 된다.

한국 정치가 정책 경쟁으로 중심을 이동하려면 전문가의 정치 참여가 활발해져야 한다. 그러나 현재 각 대선 캠프가 경쟁하듯 교수들을 빨아 들이는 양상은 정치 발전 과정으로만 보기힘든 측면이 있다. 우선 대선 캠프를 맴도는 교수들이 너무 많다. 교수 중에는 선거 때마다 여야와 후보를 옮겨다닌 인사들이 적잖다.
이러다간 대선 캠프에 발을 딛지 않은 교수들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판이다. 후보들은 그 교수가 자신과 정책적 노선을 같이할 사람인가를 따지기 보다 대중적 지명도(知名度)가 높은 사람을 우선 끌어들이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다보니 한 사람을 놓고 서로 끌고 가려는 일까지 벌어졌다.

교수들 뿐만 아니라 멘토를 자처하는 이들까지 넘쳐나고 있다. 옛날 ‘멘토’ 즉 책사(策士)들은 자기를 써주는 사람을 찾아 다녔다. 맹자는 추나라 사람이지만 위나라에서 혜왕의 멘토 역할을 하다가 그 아들 양왕이 도무지 임금답지 못하자 제나라로 떠나 선왕의 멘토 역할을 했다. 그전엔 공자도 노나라 사람이지만 제나라로 가서 자리를 구했다. 그러나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와 제자를 키우는 일에 여생을 바쳤다. 이를 본 노자의 눈에는 공맹의 무리가 자리에 연연하는 해바라기 지식인으로 비치기도 했다.
지금 우리 대선판에서도 지지 유권자의 확장을 위해서라면 반대 진영의 책사까지 끌어오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 정체성 없는 ‘묻지마 영입’으로 정당정치를 훼손한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러니 모두가 정치에 중독되고 정신을 잃은 채 돌아간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연예인인지 교수인지 멘토인지, 책사인지, 모사꾼인지 분간도 안되는 정치 불나방과 해바라기들이 대통령선거판을 혼탁으로 몰아가고 있다.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고 갈길을 제시하는 큰 스승은 보이지 않고 있다. 호랑이 굴에 여우들만 설치고 있는 형국이다. 너 나 없이 정치참여 문제에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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