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지근 편집국장

구미의 ‘불산 누출' 참사를 접하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울산이다. 위험시설물이나 유해화학물질이 구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산재된 울산에서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은 “기름 부어 축복된 울산”의 행운이라고밖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었다. 울산은 명실공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산업수도다. 특히 지난해 수출 1천억 달러를 돌파하면서 울산의 성가(聲價)는 가히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반농반어로 먹고 살았던 궁벽한 시골마을이 반세기 만에 산업기적을 만들어냈다. 생산성과 소득 부문에서 울산은 국내 어느 도시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멀찌감치 앞서 있다. 여기다 울산의 대기·수질환경도 놀라보게 변신, 산업수도를 넘어 생태환경도시로 우뚝 섰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으로는 이런 평가를 한다고 해도 결코 후하다고 할 수 없다.

환경부가 발표하는 각종 통계지표가 아니더라도 시민들이 이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그러나 울산의 속살, 수출 1천억 달러를 넘어서기까지 울산공단 내부에는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전제되지 않고는 한순간 물거품이 될 수 있는 사상누각이다. 더욱이 울산은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의 메카다. 석유화학은 그 산업 성격상 거의 모든 공정에 화재, 폭발 위험성이 잠복하고 있다. 구미에서와 같은 가스누출 사고는 화학공단 어디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불소와 불화수소, 불산으로 분류하는 것은 어떤 물질과 결합하느냐에 따른 차이일 뿐 원래는 동일한 화학원소다.

특히 울산에는 고농축성 위험물을 저장하는 탱크가 수천 개나 있다. 유해화학물질의 종류만도 1만개에 이른다. 환경부가 공개한 유해화학물질 배출량울 보면 울산은 단연 전국 으뜸이다. 공개 대상에 포함된 울산지역의 14개 사업장 기준으로만 총 2천6백만 톤의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하고 있다. 이 가운데 1천8백 톤을 배출하고 이동량은 3천6백 톤으로 집계됐다. 취급과 배출, 이동에서 잠시도 안전사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울산은 장치산업의 저수지이자 화약고라 할 수 있다. 성장 과정에서 중대 산재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설비노후화 등으로 사고유형도 갈수록 대형화되고 있다.

최근 5년간의 통계에서 총 188건의 화재·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평균 9.7일에 한번 꼴로 사고가 터진 셈이다. 지난해 8월 울산석유화학공단 내 현대EP 울산공장에서 '쾅'하는 굉음을 동반한 유증기 폭발로 근로자 3명이 숨지고 5명이 중상을 입었다. 그런데 유증기 누출을 탐지할만한 장비나 경보장치, 안전장비조차 갖춰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공장장을 포함한 안전책임자 3명이 구속됐다. 이 사고 직후 한국산업안전공단이 울산석유화학공단 내 131개 업체의 안전도를 조사한 결과, 10곳 중 2곳 꼴로 폭발·화재사고 위험이 큰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의 조사결과는 더 충격적이다.

감사원은 지난 4월 대형화재 취약시설 74곳의 화재안전관리실태점검 결과 68.9%인 51곳에서 하자(瑕疵)를 발견했다. 이처럼 우리나라, 특히 사고위험이 높은 화학공장 등에서의 안전불감증은 가히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다. 이웃 일본에서 발생한 대지진이 울산에서 일어난다면 울산은 흔적조차 남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나 지방단체, 관련 기업들은 임기응변식 대처만 하고 있지 근본적인 대책은 내놓지 않고 있다. 더욱이 석유화학단지의 재난안전관리는 관련 개별법을 근거로 3원화되어 있다. 유해화학물은 유독성과 환경오염성을 기준으로 환경부에서, 독성가스는 고압가스법 등을 적용해 자치단체가 맡고 있다.

반면 위험물은 위험물안전관리법에 따라 소방서가 관할한다. 석유화학공장 1곳에서 유해화학물질과 독성가스, 위험물을 모두 취급하고 있는데 이처럼 안전관리체계가 제각각으로 나눠져 있어 유사시 효율적인 대응 자체를 불가능하게 한다. 어디 그뿐인가. 위험시설물에 대한 정보공개에도 더 없이 인색하다. 걸핏하면 영업기밀을 내세워 주민들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도 친(親)기업마인드에서인지 몰라도 적극성을 띠지 않았다. 그 결과가 구미 사고에서처럼 제2, 제3의 피해로 이어지게 하고 있다. 때문에 울산환경운동연합이 11일 제기한 '화학물질사고 예방, 대비, 대응을 위한 법률제정'을 지체 없이 단행해야 한다.

이 단체는 “OECD에 가입하면서 화학사고 관련 권고를 수락했으나 아직 관련 법률은 제정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화학업체는 위험성이 있는 물질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고,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는 개별 매뉴얼을 주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안전관리체제의 일원화와 함께 화학업체 정보공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대 과제가 되고 있다. 그렇지 않고는 천지신명에게 “울산을 굽어 살펴주소서”라고 하는 불쌍한 주문(呪文)이나 외우고 있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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