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길 주필
움직이지마! 꼼짝마! 라고 경찰이 범죄자를 잡기위해 소리칠때 영어로는 Freeze!(얼어붙어라!)라고 한다.
올겨울 추위가 모질었다. 꼼짝마! 추위다. 북쪽의 대한이 남쪽 소한네 집에 왔다가 얼어 죽을뻔했다는 소한과 대한을 다 넘겼다. 추위가 끈덕져도 입춘이 코앞에서 서성거린다. 예년에는 웬만큼 추워도 삼한사온의 리듬을 타는 바람에 텃밭에는 겨울배추가 자랐다.

하지만 1950~1970년대 겨울 추위는 지금보다 혹독했다. 휘몰아치는 찬바람에 전깃줄이 자지러지듯 소리내 울었다. 문고리를 쥐면 손가락이 쩍쩍 달라 붙었다. 문풍지 틈으로는 황소바람이 쏟아져 들어왔다. 밤사이 머리맡의 자리끼는 꽁꽁 얼어붙었다. 그런데도 날이 밝으면 얼음판에서 팽이치고 썰매 타느라 바빴다. 손등이 터서 쩍쩍 갈라지고 피가 나기도 했다. 1950~60년대 유·소년기를 난 이들에겐 참 모질게도 춥던 겨울의 기억이 있다.

나폴레옹은 1812년 6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 공격에 나섰다. 처음에는 프랑스군이 승승장구 하는듯 했다. 그러나 겨울이 닥치자 추위에 익숙하지 않은 프랑스군은 무려 40만명의 전사자를 내며 패퇴해야만 했다. 러시아는 병력과 군수품 열세를 혹독한 추위 덕분에 감당할 수 있었다. 이를 두고 영국의 한 신문기자가 ‘general frost’라고 표현하며 맹추위에 ‘장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혹한(酷寒)을 보통 ‘Jack Frost’라고 의인화해 표현하는 데 착안한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을 ‘동장군(冬將軍)’이라고 번역한 것은 일본에서 였다. 독일 유학 경험이 있는 군의관 출신 작가 모리 오가이(森鴎外)가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를 번역하면서 ‘general frost’를 동장군으로 번역했다.

올 겨울 ‘동장군’은 북극 지역의 기온 상승으로 진작 예고됐다. 북극에서 증발된 수증기 때문에 많은 눈이 대륙을 덮으면서 태양빛을 반사해 지표면 온도를 끌어 내렸다.
또 북극의 찬 기운을 가두는 제트기류의 힘이 약해지면서 찬 기운이 한반도 등 아래쪽까지 내려왔다. 다만 제트기류 약화의 영향이 예년보다 덜해 한파가 지역에 따라 주기적으로 몰아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지난해 여름 한반도에는 이례적으로 장기간 폭염이 이어지면서 한때 적도지역 보다 더운 날씨에 시달려야 했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세계적인 기후변화 속에서 특히 우리나라 기상이 요동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1년 평균기온은 점차 올라가고 있는데 겨울 추위는 유독 강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최근 30년(1981~2010)의 평균기온과 그 보다 10년 전인 1971~2000년의 평균 기온을 비교하면 전 지구 평균기온이 14.1도에서 14.3도, 우리나라 평균기온은 12.3도에서 12.5도로 각각 0.2도씩 올랐다. 반면 겨울철 평균 기온은 최근 10년간 계속 내려가는 추세다. 작년 12월 평균기온은 평년보다 4도이상 떨어져 1973년 이래 두 번째로 낮았다.

요즘처럼 갑자기 한파가 불어 닥쳤다가 다시 포근한 날씨가 반복되면 우리 몸은 36.5℃라는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쉴 틈이 없이 바쁘다. 기온의 오르내림이 크고 또 반복될수록 우리 몸이 감당해야 할 스트레스는 그만큼 커지는 법이다.

바이러스는 북극곰처럼 기온이 떨어지면 활개를 친다.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늘고 운동이 부족한 데다 체온이 1도 내려가면 면역력이 30%나 떨어진다. 선봉장은 독감(인플루엔자) 바이러스다. 이미 유행 주의보가 내려졌다. 추위 자체가 독감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면역력이 떨어진데다 독감 바이러스의 생존 기간이 연장돼 걸릴 위험이 커진다.

이처럼 한파(寒波)와 사람사는 일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인류의 조상이 바로 마지막 빙하기를 이겨낸 ‘크로마뇽인’인 것만 봐도 그렇다. 경쟁관계 였던 ‘네안데르탈인’은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지 못하고 끝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크로마뇽인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추위와 맞섰다. 영국 고고학자 브라이언 페이건은 그의 책<크로마뇽(Cro-Magnon)>에서 “추위와 맞서는 끊임없는 혁신능력이 운명을 갈랐다”고 했다.

1월(January)은 ‘야누스의 달’이다.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Janus)처럼 지난해의 잘잘못을 돌아보고 새로운 각오로 시작한다는 1월이 혹독한 추위에 쫓기듯 어느새 다갔다. 그 새로운 각오도 어느새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났다.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는 이를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간단하게 요약했다. 작심삼일도 나름대로 효용이 있는 셈이다. 크로마뇽인의 겨울은 물러가도 야누스의 작심삼일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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