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에서 가장 오래되고, 마지막 남은 미술전문화방 ‘울산미술상사’의 내부 모습.

35년간 공업탑 지킨 미술화방
    
김현숙 대표, 세번째 주인으로 들어와 
두번째 주인은 유명조각가 이채국씨
  
당시 화방 인근 울산갤러리· 윤화랑도
문 닫으면서 로터리 문화소외지역 돼
  
화방마저 사라지면 울산지역 미술인들
초창기 역사 사라질수도 ‘씁쓸’ 
 

의외로 공업탑 로터리 일대에는 공업탑과 함께 젊은 청춘을 보낸 인물들이 많다. 30여 년 전 성남동 다음으로 번화한 곳이라 공업탑에 자리를 잡았다는 사람도 있고, 상권과 상관없이 자신이 하는 일이 좋아 그 자리를 지키다 보니 어느새 공업탑 터줏대감이 됐다는 이도 있다. 울산에서 가장 오래되고, 마지막 남은 미술전문화방 ‘울산미술상사’를 20년간 운영하고 있는 김현숙 대표도 그렇다.

◆울산 유일의 미술전문 화방
울산미술상사는 공업탑 로터리 버스정류소에서 울산여고 방향으로 100미터쯤 올라가다보면 오른쪽에 있다. 울산 시민들에게 크게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그림깨나 그린다는 사람들에게 있어 이곳은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현재 울산에는 미술전문 화방은 이곳이 유일하다. 4~5년 전 중구 성남동에 ‘유일 화방’이 있었지만, 경영난을 견디다 못해 문을 닫았고 현재 수제초콜릿 전문 카페로 변신해 있다. 그래서 울산미술상사는 울산에서 마지막 남은 미술전문 화방이 돼버렸다.

김 대표는 “이곳은 그저 단순히 미술 도구, 재료만 파는 곳이 아니다. 1,2대 사장이 운영할 때만해도 이곳에는 갤러리가 있었고, 옆 건물에 액자공장도 있고, 미술인들에게는 아지트였다”면서 “얼마 전 시내 유일화방이 문을 닫았는데, 나도 문을 닫고 싶지만 뭔가 모를 책임감에 아직도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 35년간 공업탑 지킨 '울산미술상사' 전경.

◆울산미술인들의 아지트
지금도 이곳에는 울산의 미술인들이 재료를 사러 자주 들른다고 한다. 단골 중에는 신화마을 대표로 유명한 곽영화 미술가도 있다.
김 대표는 20년 전 3번째 주인으로 들어왔다. 전문 미술인은 아니지만 평소 시와 그림을 좋아해 이곳에 발을 들여놓았다. 2번째 주인은 울산에서도 유명한 조각가 이채국 씨 부부였다.

화방이 처음 생긴 지는 35년 정도 되는데, 당시 화방 옆에는 ‘울산갤러리’가 함께 운영되고 있었다. 울산에서 가장 오래된 미술인 모임인 ‘울산일요화가회’ 회원들도 당시 이곳이 아지트였는데, 지금도 역대 일요화가회 회장과 회원들이 이곳을 들러 그때를 회상하곤 한단다.

◆화방 옆 액자공장

김 대표에 따르면 본인이 화방을 인수하기 전에는 화방 옆 건물에 액자공장도 함께 운영되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액자를 대량생산하지만, 당시만 해도 모두 수작업으로 나무를 깎아 액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액자를 만드는데 몇날 며칠이 걸렸고, 화가들은 액자 기사들과 함께 막걸리를 마시고 밤을 새며 작업을 마무리하는 경우도 허다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는 액자기사들이 울산화가와 친분이 가장 두터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또, 김 대표가 20년 전 화방을 운영할 때는 ‘시화’를 그리는 것이 대유행이었는데, 그래서 울산지역 젊은 화가와 학생들에게 시화 그리는 아르바이트를 연결해준 곳도 화방이었다고 한다.
당시 여러 작가들이 시화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하기도 했다. 시화 작업은 5년 전까지도 계속됐지만, 지금은 거의 주문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

◆화방 맞은 편 ‘윤 화랑’
울산미술상사에 ‘울산 갤러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바로 맞은 편 ‘윤화랑’도 기억한다. 윤화랑은 10년 전 문을 닫았는데, 시의원을 지낸 윤명희 씨가 화랑대표였다.
당시 대관료 없이 작가들에게 갤러리를 내줘 울산의 예술가들은 그를 자주 거론한다. 미술인들을 위한 장학회를 만들어 지원하기도 했단다.

김 대표는 “만약 화방에 딸린 ‘울산갤러리’와 바로 앞 ‘윤화랑’이 계속 있었다면 공업탑 로터리도 문화소외지역은 아니었을 것”이라면서 “이곳마저 문을 닫으면 울산 미술인들의 초창기 역사가 없어지는 것 같아 문을 못 닫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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