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권장안에 따르면 이름이 ‘홍길동’일 경우 로마자로는 ‘Gildong Hong’이 아니라 ‘Hong Gildong’이나 ‘Hong Gil-dong’로 표기하는 것이 맞다. 현재 혼용되고 있는 ‘Hong, Gild ong’, ‘Gil Dong Hong’, ‘Hong, Gil-do ng’ 등의 표기방식은 원칙에 어긋난다.
위와 같은 인명의 영문표기 적격성 판단은 고유명사는 첫 글자를 대문자로 적고, 인명은 성과 이름 순서로 띄어 쓰며 이름은 붙여 쓰거나 음절 사이에 붙임표(-) 사용을 허용하는 현행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의 성명 표기 규정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이번 ‘성 이름’ 순서의 영문 표기 지침이 과연 세계화에 걸맞은 조치인지 의문이 생긴다. 비록 세계의 많은 언론이 준용하고 있는 AP 통신의 지침에 한국인 등의 성명 표기 방식을 ‘성 이름’ 순으로 쓰고 있다고 명문화하고 있지만 국제 표준 성명 표기 방식이라 할 수 있는 ‘Gildong Hong’을 바람직하지 않은 표기라 말할 수 있을까?
만일 ‘홍길동’이란 사람이 ‘Hong Gildong’으로 명함을 만들어 이들에게 줄 때 과연 이들 중 몇 명이 ‘Hong’을 성으로 간주할까? 김연아와 박세리 선수도 자신의 이름을 각각 Yuna Kim과 Seri Park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지금부터 이 두 선수는 자신의 이름을 Kim Yuna와 Park Seri로 정정해서 사용해야 하는가?
이번 지침은 2012년 런던올림픽 선수 성명을 ‘성 이름’ 순서로 통일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장미란 선수는 ‘Jang Mi-Ran’으로, 봉중근 선수는 ‘J K Bong’으로 각자의 이름을 표기했는데 이는 이 두 사람이 마치 다른 나라 사람으로 오인할 정도로 혼란을 야기시킬 소지가 있었다. 그래서 국립국어원과 대한체육회는 2012년 런던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의 성과 이름을 완전하게 표기할 때 HONG Gildong이나 HONG Gil-dong으로 통일하는 것을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이름은 첫 자를 제외하고 소문자를 쓰고 성은 잘 식별되게 모두 대문자로 표기하는 방식은 어느 나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즉, 국제적 표준을 벗어난 한국식 영문 성명 표기라 말할 수 있다. ‘성 이름’ 순서에 더해서 위와 같은 한국만의 로마자 표기법은 우리나라의 정체성은 살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국제화에는 역행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지명 로마자 표기도 원래의 의도와는 달리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정부는 2000년에 1984년부터 써오던 메퀸-라이샤워(MR) 방식을 개정해 종전의 고유지명 표기를 바꾸었다.
이러한 조치도 실질적으로 혼란만 초래해 국제화의 걸림돌이 된다. 메퀸-라이샤워 방식은 외국인이 구분해 쓰는 유성음과 무성음을 달리 표기하고 영어에는 없는 한국어의 ‘ㅓ’와 ‘ㅡ’를 특수 부호를 사용해 o와 u로 표기했는데 한국인이 어렵고 불편하다는 지적에 따라 새로운 로마자 표기방식이 도입돼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한국어의 ‘ㅂ’, ‘ㄷ’, ‘ㄱ’을 유·무성 관계없이 b, d, g로 표기하고 ‘ㅍ’, ‘ㅌ’, ‘ㅋ’를 p, t, k로 표기하는 것이다. 부산을 Pusan에서 Busan으로, 김포를 Kimpo에서 Gimpo로 표기해 현재 사용하게 됐다. 고유명사에 관한한 이런 표기방식의 변화는 국제화를 염두에 두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수많은 외국인들은 Busan과 Pusan, Gimpo와 Kimpo를 다른 도시라고 생각하거나 Gimpo를 ‘김포’가 아닌 ‘짐포’로 발음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혼란을 우려해 부산대학교도 Busan이 아닌 기존의 Pusan을 사용하고 있다. Pusan을 Busan으로 표기하는 정부의 시책에 따라 부산국제영화제를 뜻하는 PIFF도 BIFF로 표기를 변경해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도 초창기에는 많은 혼란을 야기했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사실 외국인이 로마자 표기법에 따라 한국의 지명을 어떻게 발음하든지 무관하게 한번 정해진 고유명사의 표기는 그대로 두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즉, 로마자 표기의 연속성이 무엇보다 선행돼야 한다.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는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들의 편의성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표기 방식이 연속적으로 유지되지 않고 기존 방식과 다른 새로운 표기법이 제안되고 이를 수용한 결과 인명의 순서를 비롯한 인명이나 지명의 표기가 달라져 외국인에게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번 한글 이름의 ‘성 이름’ 순서의 로마자 표기도 우리의 정체성과 통일성을 위한 것이지만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고 국제화에 부응하지도 않은 것 같다. 앞으로는 그 이유가 무엇이든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의 변화로 고유명사의 표기가 달라지는 일이 없어야할 것이며 국제 규범을 준수해 세계화에 동참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