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규홍 동아대학교 대외협력처장

올해 초 국내에서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SAT)의 문제 유출이 공식 확인되면서 이 시험을 주관하는 칼리지보드는 5월에 실시 예정이었던 한국의 SAT 시험을 전면 취소했고, 6월에도 이 시험을 부분적으로 취소했다. 이러한 조치는 SAT가 실시되는 수많은 나라 중 오로지 우리나라에만 내려진 결정이라는 점에서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고 국제적 망신을 초래했다.
과연 무엇이 대한민국을 영어시험 부정 국가로 만들었을까? 이번 사태의 원인과 부정적 결과를 살펴보고 그 해결책을 면밀히 검토해 보자.

사실 국내 SAT 문제유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2007년에도 있었다. 그러나 그 처리 방식은 지금과는 달랐다. 지금은 예정된 시험을 취소했지만 2007년에는 SAT 출제 및 성적 처리기관인 ETS가 해당 시험을 치른 한국인 수험생의 성적을 전면 취소했다. 문제은행식의 SAT 출제방식을 고려할 때 이러한 결정은 불가피해 보인다. 즉, 국내에서 연 6회 실시되는 SAT는 기출문제가 그대로 출제될 수 있는 시험이기에 유출된 문제를 이미 접한 수험생은 접하지 않은 수험생보다 훨씬 유리할 뿐만 아니라 단순히 기출문제의 답을 외워서 성적을 잘 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과거의 SAT 시험이나 성적 취소는 공정성을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조치였다고 생각된다.

문제유출은 기본적으로 이에 대한 수요가 있기 때문에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녀들을 명문대에 입학시키려는 몰지각한 학부모들이 주된 수요자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수요를 충족시켜 돈을 벌고자하는 사설 어학원이 가세해 온갖 꼼수를 사용, 문제를 유출 시킨다. 문제유출에 가담한 어학원이나 강사들은 불법으로 유출한 문제를 다시 공공연하게 노출시켜 수강생 미끼 상품으로 활용하고 자신을 족집게 명강사로 포장한다. 그 결과 방학이면 심지어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있는 중·고등학교 학생도 족집게 강사로부터 SAT 강의를 수강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오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생긴다.
문제는 이런 비뚤어진 교육관을 가진 학부모와 어학원 때문에 대한민국이 영어시험 부정 국가로 각인되고, 국가의 국제적 신뢰도도 추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교육열을 칭송하고 있는 실정이고, 이 우수한 교육열이 현재의 대한민국을 만든 원동력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번 사태는 우리에게 치욕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이번 시험 취소 결정은 선량한 수험생들의 시험 응시 기회를 박탈해 그들을 부정 시험의 희생양으로 만들었으며, 이미 자신의 노력으로 SAT 점수를 획득해 미국의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의 명예에도 먹칠을 했고, 나아가 외국에서 각자의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의 입지를 좁게 만들었다.

우리 사회를 더욱 경악스럽게 만드는 것은 SAT 뿐만 아니라 토플, 토익, 텝스 같은 영어시험에서도 부정행위가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취업이나 법학전문대학원 혹은 의학전문대학원 등과 같은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는 젊은 사람들이 각 영어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취득하기 위해 돈을 주고 대리시험을 의뢰하는 것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또한 명문대 출신 학생들도 대리시험을 통해 얻은 영어시험 성적으로 심지어는 대기업, 언론사, 방송사 등에 취업하거나 전문대학원에 진학하는 사례도 많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영어시험 성적표나 대학성적표 등의 위조도 성행하고 있고, 이를 취업이나 진학에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이 젊은 지성인들의 도덕성 타락과 시험부정 행위에 대한 불감증은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 따라서 이들에게 불법적 행위 그 자체에 대한 책임을 묻고, 정부가 주도적으로 이러한 행위를 근절시키려는 다양한 노력을 다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가 영어시험 부정 국가라는 오명을 얻는 데는 비뚤어진 교육열과 양심에 대한 불감증이외에도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성과주의, 스펙주의, 점수주의, 학벌지상주의 등도 큰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취업이나 상급학교 진학 시 학생들의 잠재력, 능력, 인성 보다는 입증된 성적, 출신교의 서열화된 순위나 인지도 등에 근거해서 평가하는 현실을 반드시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수험생 개개인도 자신의 노력에 상응하는 시험 결과에 수긍하고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도덕성을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이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영어시험 부정과 같은 불미스런 일은 지속될 것이며,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길은 멀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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